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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칼럼

[여적]주갤러

opinionX 2016. 12. 12. 11:32

“당신은 천당 가기 쉽지 않을 겁니다.” 그제 국회의 최순실 국정농단 2차 청문회. 김경진 국민의당 의원이 증인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에게 독설을 쏟아냈다. 게이트의 책임자가 모르쇠로 일관하자 참지 못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김 전 실장은 청문회에서 “잘 모르겠다”(60번), “부끄럽고 죄송하다”(24번)란 답만 되풀이했다. 그러나 청문회 후반에 대반전이 일어났다. “최순실 이름도 못 들었다”고 잡아떼던 그를 한 방에 무너뜨린 동영상이 등장한 것이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누리꾼의 제보를 받아 공개한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검증청문회’ 동영상에는 최태민 관련 의혹에 대해 당시 박근혜 후보에게 해명을 요구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최순실의 이름도 여러 차례 언급된다. 박 후보의 법률지원단장이던 김 전 실장이 방청석 맨 앞자리에 앉아 청문회를 지켜보는 모습도 동영상에 나온다. 그때까지 모든 질문을 받아치며 여유를 부리던 김 전 실장은 동영상을 보자 당황하며 “최순실이란 이름은 이제 보니까 내가 못 들었다고 말할 수 없다”고 꼬리를 내렸다.

동영상을 제보한 이는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주식갤러리(주갤러) 이용자다. 한 누리꾼이 온라인 커뮤니티 ‘오늘의 유머’에 게시한 동영상을 민주당 박영선·손혜원 의원에게 퍼나른 것. 손 의원은 자신보다 질의 순서가 앞인 박 의원에게 질의를 양보했다. 잘도 빠져나가던 김 전 실장이 누리꾼수사대와 야당 의원들이 합심해 날린 회심의 일격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각종 주식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주갤러는 뛰어난 정보수집력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그래서 “주식 빼고 다 잘하는 주갤러”란 말도 듣는다.

대통령의 3차 담화 발표 전에는 ‘예상담화문’ 글이 올라왔는데, 이것이 실제 담화와 유사한 대목이 많아 화제를 모았다. 이번 제보글에는 수천개 댓글이 달리고 조회수가 수십만을 넘었다. 인터넷상에서 크게 화제가 된 글을 누리꾼이 찾아가 소원을 비는 이른바 ‘성지순례’도 줄을 잇고 있다. 박 의원은 어제 주갤러에 “여러분의 용기가 세상을 바꿉니다. 이젠 주식도 대박나세요. 감사합니다”란 글을 올렸다. 국회 청문회도 시민이 주도하는 세상이 되고 있다.

조호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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