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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개구리 엄마는 자신이 죽거든 냇가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는다. 그러면 항상 말 안 듣고 반대로만 행동하던 청개구리가 산에다 갖다 묻어 주리라 믿었던 것이다. 웬걸, 청개구리는 이번만은 소원을 들어드리겠다며 정말로 냇가에 묻고 만다. 그래서 비 오는 날이면 무덤이 떠내려갈까 걱정이 되어 개골개골 청승맞게 운다는, 잘 알려진 청개구리 이야기다. 역설적이게도 장례가 망인의 바람과는 정반대가 되어버린 전형이다.

한편 장례식에 대한 망인의 소망이 그대로 잘 이뤄진 예도 있다. 1997년작 영화 <원 나잇 스탠드>에는 에이즈로 죽어가는 찰리라는 남자가 나온다. 그는 자기가 죽거든 우울한 장례식 대신 신나게 파티를 열어달라는 부탁을 하고 죽는다. 친구들은 유언대로 파티를 열어 함께 춤추고 마신다. 찰리는 자신이 그런 방식으로 기억되길 바랐던 것이리라.

<티벳 사자의 서>는 죽음 후의 여정을 인도하는 밀교의 지침서로서, 사람이 죽으면 망인과 가까웠던 지인들이 그 곁에서 독송할 것을 명한다. 이는 망인의 영혼이 피안으로 가는 길에 잘못된 곳으로 빠지지 않고 해탈에 이르도록 도움을 주는 방법이라고 설명된다. <멋진 신세계>를 쓴 영국작가 올더스 헉슬리는 특이하게도 동양의 서적인 <티벳 사자의 서>에 심취하였다. 그는 자신이 죽거든 독송해줄 것을 청하였고 소원대로 행해진다. 독송의 첫 문구는 이렇게 시작한다. “오, 고귀하게 태어난 이여! 그대의 마음이 미혹되지 않기를.”

자신의 장례식에 대한 사람들의 바람은 정말 다채롭고 다양하다. 아마 저마다 죽음에 대한 개념이 다르고 종교가 다르고 사후세계관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떤 바람을 품고 있을까? 인상적인 자료가 있다. 작년 서울형 장례문화 서비스디자인팀에서 실시한 ‘내가 바라는 나의 장례식’이라는 설문조사이다. 연령대별 대답을 분석하여 상위 랭크된 키워드들을 제시하였다. 먼저 20대에서는 ‘나’ ‘내가’ ‘나를 대변하는’ ‘친구’ ‘독립적인’ 등의 낱말들이 나왔다. 재미있게도 ‘결혼식’이라는 단어도 있었다. 장례식을 묻는데 결혼식을 떠올리다니, 요즘 유행하는 스몰웨딩에서처럼 당사자 중심의 개성을 챙기는 젊은 사람들의 트렌드와 맞닿아있는 듯하다. 30대에서는 ‘쉼’ ‘자연’ ‘정리’ ‘위로’ 같은 낱말들이 나왔다. 업무에 고달픈 일상이 엿보인다. 40대에선 ‘추억’ ‘집’ ‘공감’ ‘편안한’, 50대에선 ‘가족’ ‘종교’ ‘격려’ ‘교통이 편리한’ 등 실질적인 낱말들이 등장한다. 60대 이상에선 ‘남들처럼’ ‘전통’ ‘병원’ ‘한식’ ‘타인에게 번거롭지 않길’ 등의 표현이 나왔다. 행여 폐 될까 염려하는 어르신들의 마음이 읽힌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의 장례문화는 이런 각자의 바람을 과연 잘 담아내고 있는 것일까? 작고하신 화가 김점선 선생이 생전에 남긴 글에는 남편의 장례식에 관한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그는 병원에서 죽었다. 나의 의지나 아들의 뜻과는 관계없이 모든 일이, 장례의식이 자동적으로 처리되었다. 이렇게 야단스럽게… 우글우글… 묘지의 차일 아래서, 급조된 나이롱 치마를 바지 허리춤에 친친 감고, 멍청히 서있는 나 자신… 사람이 죽어서 슬프고… 장례문화가 엿 같아서 슬프고… 그런 엿 같음에 둥둥 떠내려가서 슬프고….”

최근 우리 병원에선 한창 장례식장 리모델링 준비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의 시설은 개원 이래 한 번도 손보지 않았던 터라 구조와 장비, 인테리어 모든 것이 낡고 낙후되어 있다. 장차 어떤 모습으로 거듭나야 할지 자료를 찾고 회의를 거듭하며 진지한 고민들을 이어가고 있다.

우선은 기존의 차갑고 무거운 부위기를 벗어나 따뜻하고 아늑한 곳으로 탈바꿈하고자 한다. 천장에는 채광창을 내어 햇볕이 잘 스며들게 하고 분향소마다 상주실을 만들며 복도에는 근조화환 대신 추모의 메시지를 담은 메모나 스티커, 작은 리본휘장 등을 부착할 수 있게 하여 나중에 모아서 유족에게 전달해 드리자는 색다른 아이디어도 나왔다.

또한 시민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합리적 장례비용을 제시할 예정이고, 무엇보다도 소외계층의 접근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려 한다. 설령 돈이 없어도, 설령 무연고 행려자라도 걱정 없이 제대로 된 존엄한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프로그램과 가족형 분향소를 마련할 계획이다.

어렵지만 즐겁고 설레는 작업이다. 참여자들 표정에 벌써 흐뭇함이 감돈다. 시민들의 바람을 더 많이 더 가깝게 더 잘 담아낼 수 있도록 우리 공공병원 장례식장이 새로운 장례문화의 플랫폼이 되고자 한다. 시민들과 대오를 맞춰 작지만 함께 내딛는 의미 있는 한 걸음이 되기를 고대한다.

김현정 | 서울시 동부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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