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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에 대선을 치렀으니 다음 대통령을 선출할 때가 돌아왔다. 4월이 될지, 5월이 될지는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소추안 판단 시기와 결과에 달려 있지만 6개월도 채 남지 않았다는 데엔 대체로 공감한다. 대통령이 되려는 이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움직이고 있다. 나흘 전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귀국해 나올 사람은 다 모이게 됐다. 달포 전만 해도 12월 대선에 맞춰 준비했던 이들도 대선 시계가 당겨지면서 바빠졌다. 설 연휴를 앞두고 공식 출마 선언도 잇따른다. 지금 워밍업을 하는 이들 중에 19대 대통령이 있을 것이다. 대선은 흔히 회고적 투표보다 전망적 투표 성향이 강하다고 한다. 지난 대선에선 경제·사회적 양극화에 대한 진단과 해법으로 경제민주화나 보편적 복지 문제가 부각됐다. 결과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사기 공약으로 끝났지만, 큰 주제였다. 이번에는 더 근본적 얘기를 한다.

이미 쏟아진 단어들만 추려봐도 묵직한 말들이 즐비하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적폐 청산’을 통한 ‘국가 대개조’를 얘기한다.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의 경우 헌법 1조1항(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에 있는 ‘공화’를 시대 화두로 내세웠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더는 미룰 수 없는 ‘시대 교체’의 시기라고 했다. 정치, 경제, 사회 등 각 방면에 켜켜이 쌓인 대한민국의 시스템을 한꺼번에 올려놓고 통째로 ‘리셋’ ‘리빌딩’ 하자는 것이다. 비선 실세 국정농단 사태로 근본적 개혁이 불가피하고 그에 따른 방향 설정을 요구받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들 다수가 현직 대통령에게 ‘나가라’고 요구하면서 얘기한 것도 하나다. ‘다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주말 강추위 속에서도 연인원 1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촛불을 든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30년이 지난 낡은 체제를 바꿔야 한다는 시대적 의미도 들어가 있다.

각론으로 들어가면 다뤄야 할 일들이 너무 많다. 하나하나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얘기하기는 어려울 정도다. 후보들이 제시하는 의제와 국민들 생각이 만나는 지점에서 몇 가지로 주제들이 좁혀질 것이다. 치열한 토론에 더해 꼼꼼한 검증은 필수불가결한 과정이다. 각 당의 후보 선출 일정 등까지 감안하면 시간이 빠듯하지만 ‘잘 모르고 뽑았다’거나 ‘그런 사람인 줄 몰랐다’는 뒤늦은 탄식을 또 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국가를 이끌 능력이 없는, 최소한의 상식과 도덕성이 결여된 사람이 대통령이 됐을 때 나라가 어떻게 되는지는 지켜보고 있는 대로다.

현행 대선은 단순다수제여서 한 표라도 더 얻은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 대통령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정치권이, 후보들이 사활을 거는 이유다. 집권여당 후보와 정권을 탈환하려는 여당 대 야당 대결은 한쪽이 무너지면서 그 구도가 분명히 서지는 않게 됐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그 안에서 지지고 볶고 싸울 줄 알았던 새누리당이 깨졌기 때문이다. 유력한 야당 후보에 맞서 승산이 있는 구도를 만들기 위해 주로 여권의 정치세력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그 매개는 개헌일 수도 있고, 인물일 수도 있는데 현재로선 후자 위주가 될 가능성이 많아 보인다. 그 중심에는 등장하면서 대선 의지를 분명히 한 반 전 총장이 있다.

반 전 총장이 귀국날 대선 출정식을 방불케 하는 분위기와 메시지로 ‘정치교체’ ‘대통합’을 주창했지만 ‘반기문 정치’가 무엇인지 알기는 어렵다. 말은 직설적이었으되, 내용은 모호하다. ‘진보적 보수주의자’를 자처하면서 여기저기 걸치는 식이다. 새누리당과 바른정당은 구애를 시작했고, 국민의당은 입장이 뭔지를 분명히 밝히라고 다그치고 있다. 반 전 총장이 어떤 대선 경로를 그리고 있는지가 확인되려면 시간이 좀 필요해 보인다. 제3지대라는 게 후보를 만들기 위한 인위적 연대를 하겠다는 것인데, 하루 이틀 만에 뚝딱 할 수 있는 사안도 아니다. 그 시간이 길어지면 자칫 논의되어야 할 의제들은 뒷전으로 내몰리게 되고, 짧은 시간 안에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극심한 네거티브 공방전으로 치달을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실제 그렇게 된다면 ‘빌어먹을 대선’이라는 말이 나올 것이다. 탄핵 정국에서 정치권이 옆으로 샐 때마다 궤도를 잡아줬던 시민들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1~2월 임시국회는 정치권이 촛불 민심을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하고 있는지를 일부 파악할 수 있는 계기다. 국정농단 사태로 드러났던 문제들을 바로잡을 법안들을 처리해야 할 시간이다. ‘바쁘니 대선 이후에 하자’고 한다면 그건 바꿀 의지가 부족하다는 말로 해석될 것이다. 한국사회의 미래에 대해 논할 수 있는 자가 누구인지, 진짜는 누구이고 가짜는 누구인지 드러날 것이다.

안홍욱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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