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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정치학이 우리나라의 정치현상을 잘 분석하고 설명해 줄 수 있을까? 강의실에서 농담처럼 던지곤 했던 말이지만, 선거철의 우리나라 정치는 정치학보다 대중문화이론으로 더 잘 설명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정치인은 ‘스타’, 시민·유권자는 ‘팬’으로 간주하는 것이 단순 비유 이상의 설명력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이상이 되었다. 이제는 종교학이 필요한 지경에 이르렀다. 정치인은 ‘신’이 되었고 시민·유권자는 ‘(맹)신도’가 되었다.

소위 ‘애국교’ 신도들은 사실상 탄핵의 원인 제공자지만, 지금도 박근혜 전 대통령을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로 믿고 계속 추앙한다. 최근 다섯 달 동안의 ‘일베’와 ‘박사모’ 게시글 17만건을 대상으로 한 ‘시사인’의 분석 결과는 매우 흥미롭다. 그들이 내세우는 ‘자유민주주의’는 아무 의미가 없다. ‘언론’과 ‘북한’을 주적으로 삼는 믿음체계만이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믿음, 행동, 소속감이라는 견고한 세 축을 가진 시민종교이다. 현대사회의 종교를 연구한 뒤르켐과 벨라의 논리를 빌린다면, 애국교 신도들은 단지 박근혜라는 개인에 대한 숭배와 동정심을 갖는 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텅 빈 기표를 핵심 가치로 삼아 능동적 행동을 감행하는 소속감 높은 종교집단이다.

‘문재인교’와 ‘안철수교’도 있다. 대중문화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팬덤의 범주를 벗어난 지도 오래다. 예를 들어 ‘트와이스’와 ‘아이오아이’의 팬들은 이 정도로 서로를 조롱하고 비하하고 증오하진 않는다. 문재인 후보가 3D프린터를 “삼디 프린터”로 읽은 일이 있었다.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해프닝이지만, 그렇다고 첨단 과학기술 세계에 익숙하지 못하다거나 써준 원고만 읽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못할 말은 아니었다. 그런데 왜 지지자들은 G20 같은 엉뚱한 예를 들면서 국어사랑을 이야기하는가? 안철수 후보 부인의 서울대 교수 임용 논란도 마찬가지다. 학교에 있는 입장에서 보자면 서울대의 일처리가 일견 이해되기도 하지만, 그 과정이 아주 정상적이지 않았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왜 지지자들은 김미경 교수의 ‘스펙’이 훌륭하다는 핀트 엇나간 주장만 반복하는가? 이들에게 다른 우상을 섬기는 이들은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 증오의 대상이 된다.

8일 오후 서울광장 및 덕수궁 대한문 일대에서 제5차 탄핵무효 국민저항총궐기 국민대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대통령 후보들이 정책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없이 상대방 흠결을 찾는 데만 몰두한다고들 비판하지만, 그 이유는 너무나 자명하다. 이 정치판에는 이해해서 믿는 시민보다 믿기 때문에 이해하는 신도가 더 많다. 그러니 상대 후보를 비난하는 창의적 방법을 찾는 데에 골몰하는 각 후보 캠프들을 딱히 욕할 수만도 없다. 지지자들은 자기가 믿는 바와 일치하는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수용하는 확증편향을 가진 신자들이다. 이들은 자신이 믿지 않는 경쟁 후보의 문제점이 드러날 때마다 귀를 세우고 눈을 반짝이며 기사를 읽을 것이다. 종교는 합리적 설득으로 포교를 하지 않는다.

공약보다는 ‘검증’이 더 중요하다는 정치학자도 있는 판이다. 공약은 안 지킬 수도 있으니 후보의 과거 행적에 문제가 없는지 따지는 편이 더 중요하단다. 아니다. 공약이야말로 각 후보의 차별성이 드러나는 단서이고 지지 여부가 결정되는 지점이다. 사드 배치를 완강하게 반대해온 안철수 지지자라면, 그가 배치 찬성으로 입장을 바꾸는 모습을 보고 지지 여부를 다시 고민해봐야 정상이다. 소수자 인권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해온 문재인 지지자라면, 그가 차별금지법 입법을 반대하며 보수적 기독교인들에게 염려 마시라 말했을 때 지지의 마음이 크게 흔들렸어야 정상이다. 자기 생각을 바꾸거나 이 주제를 무시함으로써 인지 부조화를 극복했다면, 종교적 신념이 앞섬을 인정하는 것이다.

‘박사모’가 그랬듯, 두 후보 지지집단도 핵심 가치는 비워둔 채 오로지 상대를 주적으로 삼아 유지된다. 믿음, 행동, 소속감 모두 강건한 시민종교의 모습이다. 하지만 선거는 신을 뽑는 작업이 아니다. 심부름꾼을 뽑는 거라는 격언이 그저 립서비스에 그쳐서는 안된다. 강준만은 언론이 왜 정치의 ‘공급’ 분야에만 주목하고 ‘수요’ 측면을 무시하는지 물은 바 있다. 정치 소비자들의 기호를 황제처럼 떠받들지만 말고, 최소한의 윤리와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쉬운 일은 아니다. 시민·유권자들은 기사의 독자·소비자이기도 하고, 언론의 책무는 종종 클릭 장사의 유혹과 부딪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문재인 아들과 안철수 딸 이야기만 반복하고 지지율 그래프만 끊임없이 보여주는 보도는 시대착오적이다. 언론은 정치적 의제와 종교적 의제를 구분할 의무가 있다. 그 정도의 능력은 있다고 믿는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신자의 정체성 대신 시민의 옷을 입을 의무가 있다. 앞으로 4주 동안만이라도.

윤태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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