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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을 훌쩍 넘어 계속되는 촛불집회에서 관심을 모으는 것 중 하나는 청소년의 참여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교복을 입고 집회에 참여하여 당당하게 자기 주장을 펼친다. 이런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미안하다’고 되풀이하거나, ‘기특하다’거나 ‘어른들보다 오히려 낫다’고 격려한다. 그런데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청소년들 중에는 이런 이야기가 별로 기분 좋지 않다는 반응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왜 그런 것일까?

말한 사람이 의도하지는 않았을지라도 청소년들에게는 이런 말들에 ‘너희는 아직 어리다’라는 의미가 깔려 있는 것으로 비쳤을 것이다. 실제로 우리 사회는 청소년이 미성숙한 존재라고 강조해 왔다. 그래서 어른의 ‘지도’를 받아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 것이 청소년이라고 여겨왔다. 촛불집회 참여 학생들이 말하는 것처럼 청소년은 3·1운동, 6·10만세운동, 광주학생운동, 4·19혁명 등 한국 근현대사의 주요 사건들을 확산시키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학교 역사교육은 이 사건들을 비중 있게 다루면서, 이에 참여한 청소년을 불의에 항거한 깨어있는 존재로 자랑스럽게 그린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청소년은 ‘미성숙한 존재’라고 인식되었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정치에 관심을 가져서는 안되며, 사회문제에 자기 의견을 내서는 안되는 존재로 여겼다. 학생들은 학교가 정해주는 교칙에 따르고, 대학 진학을 위해 밤늦게까지 야간자율학습에 열중하는 ‘모범생’이 되도록 요구받았다. 학교의 ‘정치’ 과목은 민주주의의 원리를 가르치고 참여 민주주의의 필요성을 강조하지만, 정작 민주사회를 만드는 데 청소년이 나서는 것은 ‘정치적’이라는 구실로 금기시했다. ‘청소년은 자기 삶의 주인이다. 청소년은 인격체로 존중받을 권리와 시민으로서 미래를 열어갈 권리를 지닌다. 청소년은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며 활동하는 삶의 주체로서 자율과 참여의 기회를 누린다’는 청소년헌장의 내용은 문서 속에만 존재했다.

청소년단체인 ‘중고생연대’ 소속 회원 등 10대 청소년들이 지난 19일 오후 3시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 하야 촉구 집회’를 열고 있다. 정지윤 기자

학교와 사회의 이런 태도는 많은 청소년으로 하여금 그들이 ‘사회적 존재’라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에 고등학생들이 참여했지만 계속 이어지지 못했고, 1987년 6월 민주항쟁에서도 청소년은 잊혀진 존재가 되었다. 2000년대 들어서야 비로소 청소년들은 사회문제에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2002년 미군 장갑차에 두 여중생이 깔려죽은 사건에 촛불을 들었고, 2008년 ‘광우병 파동’ 당시 촛불집회의 기폭제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도 성인들은 이들을 어리다는 이유를 들어 시민사회와 격리시키려고 했다.

청소년은 학생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시민이다. 어른의 지도를 받아야 하는 미성숙한 존재가 아니라 자기 생각을 가지고 행동을 하는 사회 구성원이다. 더 배우고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 사회문제에 참여할 자격이 없는 존재라는 의미는 아니다. 시민으로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자신의 의견을 내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다. 그러기에 오히려 청소년이 사회적 관심을 가지고, 사회적 의사결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는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청소년은 사회의 미래’라는 말은 단지 그들이 연령이 높아져 앞으로 어른이 된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민주주의 훈련을 받은 청소년이 앞으로 합리적이고 비판적 사고를 바탕으로 사회를 이끌어 가리라는 기대감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러한 민주시민 교육을 받은 청소년들이 성장했을 때 한국사회의 진정한 민주주의는 이룩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오늘날 한국사회가 지금과 같은 문제에 부딪힌 원인 가운데 하나는 청소년 시기부터 사회참여를 위한 민주주의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촛불집회에 청소년의 참여가 늘자 새누리당의 일부 국회의원이나 보수우익 인사, 언론 등에서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불순분자’의 개입이나 전교조 관련 단체의 동원을 들먹인다. 오로지 종북이나 좌편향, 전교조 탓으로만 돌리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식의 사고방식은 이제 너무도 식상하다. 더 큰 문제는 청소년을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시민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이다. 촛불집회에 참가한 청소년은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요구를 넘어서서 19세 이상에게만 선거권을 주는 어른들, 그리고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바꾸려고는 하지 않고 무한경쟁에서 이겨야만 살아남는다고 가르치는 사회에 분노를 표한다. 자신을 억압하는 사회와 주변 사람들에게 항의한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존재이며,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함께 만들자고 요구한다. 이념과 좌편향 타령에만 매달리는 일부 어른들에 비하면, 훨씬 더 성숙한 사고이다.

김한종 |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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