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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시한이 이달 말로 다가왔다. 매년 이맘때 결정되는 최저임금은 여론의 집중적 주목을 받는 연례행사이지만 올해는 특히 더 사회적 관심이 높다. 왜냐하면 노동계에서 요구해온 시간당 1만원이라는 상징적 최저임금 목표를 언제 달성하느냐 하는 문제의 첫 단추를 끼우는 것이 올해이기 때문이다. 노동계 일각에서는 지금 당장 시간당 1만원의 최저임금을 요구하는데, 그것은 누가 보더라도 너무 급격한 상승이므로 무리이고, 언제쯤 1만원에 도달하느냐 하는 것을 놓고 노사의 입장이 다르고,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다.

올해 대선에서 최저임금도 중요한 쟁점의 하나였는데, 2020년 1만원 달성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다. 갓 출범한 문재인 정부로서는 이 공약을 실천하는 것이 약속을 지키는 정치인의 모습을 보인다는 점에서 자못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현재 6470원인 시간당 최저임금을 3년 만에 1만원으로 올리려면 매년 가파른 상승이 필요한데, 지금 그렇지 않아도 장사가 안돼서 울상인 영세 자영업자들, 골목상권, 중소 상공인들로서는 울고 싶은데 뺨 맞는 격이다. 최저임금제는 1인 이상을 고용하는 모든 사업체에 적용되므로 그 적용 범위가 실로 광범위하고, 그중 압도적 다수는 중소기업, 영세 상공인들이다. 대기업은 원래 고임금이므로 최저임금제와 별 상관이 없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몇 년 전부터 소득주도성장을 주장해왔는데, 그중 중요한 부분은 최저임금 인상이다. 그런데 소득주도성장의 다른 부분으로서는 중소기업, 영세 상공인의 소득을 늘리는 것도 포함되는데, 최저임금 상승은 노동자의 소득을 증가시키지만 다른 한편 노동자를 고용하는 중소기업, 영세 상공인들의 비용을 늘림으로써 소득을 낮추게 되니 말하자면 양날의 칼인 셈이다. 여기에 최저임금 문제의 딜레마가 있다. 임금은 원래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소득이고, 기업가의 입장에서는 비용이라는 두 개의 측면을 갖는데, 이 모순적 성격이 올해에는 특히 극명하게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로서는 진퇴양난이다. 최저임금을 대폭 올리자니 노동자들은 웃는데, 중소 상공인들은 울상이요, 거꾸로 가면 반대 현상이 생긴다. 짚신 장수와 우산 장수 아들을 둔 어머니의 딜레마와 비슷하다.

이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최저임금은 정권의 성격에 따라 큰 영향을 받는다. 미국을 보면 공화당 대통령 아래에서는 최저임금이 거의 오르지 않는 반면 민주당 정권하에서는 크게 오르는 경향이 있다. 나라의 체제나 이데올로기의 영향도 크게 받는다. 토마 피케티의 책 <21세기 자본>을 보면 2차대전 직후 미국의 최저임금이 프랑스보다 훨씬 높았는데 반세기가 지난 최근에는 대역전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에서도 보수적 정권인 김영삼·이명박 정권 때는 최저임금이 쥐꼬리만큼 오른 반면 진보적 정권인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는 많이 올랐다. 한국의 최저임금은 국제적으로 비교해서 아직 낮은 수준이므로 적극적인 인상이 바람직하다. 물론 최저임금이 지나치게 높아지면 고용에 큰 부담을 주지만 한국은 아직 그런 단계는 아니다. 그래서 올해 최저임금도 적극적인 인상이 요구된다. 문제는 인상의 적정 수준을 찾는 것인데, 이것은 여러 가지 사항을 고려해야 하는 예술의 영역에 가깝다.

3년 만에 최저임금 1만원에 도달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4년 혹은 5년 만에 도달하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4년 만에 도달한다면 연평균 상승률은 11.5%가 되고, 5년 만에 도달한다면 9.1%의 상승률이다. 지금까지 최저임금이 가장 빠르게 상승했던 노무현 정부 때의 연평균 상승률이 10%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4~5년 만에 1만원에 도달하는 것은 큰 무리가 없을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공약을 지켜 3년 만에 1만원 달성을 실현한다면 최저임금 연평균 상승률은 15.6%가 되어 기업에 상당히 큰 부담을 주는 것이 사실이고 ‘일자리 대통령’을 표방하는 문재인 정부에 타격을 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어려운 문제의 답은 둘 중 하나다. 대통령이 약속을 약간 어기는 것이 되지만 4~5년 만에 1만원 달성으로 후퇴하거나, 아니면 원래 약속을 지키되 비용 상승 압박을 크게 받게 될 중소 상공인, 영세 자영업자들을 위해 정부가 임금보조 정책(이것도 원래 문재인 후보의 공약에 들어 있다) 또는 다른 지원책을 병행하는 것이다. 다른 지원책 중에는 카드 수수료 인하라든가 골목 상권 살리기 대책(예를 들면 성남시의 골목상권 전용 지역상품권의 발행) 같은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아무튼 새 정부의 신뢰가 달린 어려운 문제를 노사공익 3자가 예술적으로 풀어내는 지혜를 발휘하기를 기대한다.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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