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이게 나라냐?’ 작년 10월24일 JTBC가 최순실 태블릿PC 내용 일부를 보도한 지 이틀 후 벗들과 함께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 내걸었던 현수막 제목이다. 내가 알기론 이것이 박근혜 퇴진 첫 대중촛불집회였다. 11월3일부터 광화문광장에 텐트로 ‘캠핑촌’을 꾸리고 살다 5개월 만에 집에 들어왔다. ‘이게 나라다’라는 약속을 다짐한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하기도 해서 지금은 ‘비정규 노동자의 집 꿀잠’이라는 작은 공간을 만드는 공사장에 나가 잡부로 일하며 산다.
그렇게 촛불의 심장 일부가 되어 촛불만 보며 살았던 터라 나는 새 정부를 ‘문재인 정부’라 하지 않고 ‘촛불시민정부’ 또는 ‘광장의 정부’라고 부른다. 1700만 촛불항쟁이 만들어 놓은 새로운 정치적 시공간에 세워진 공동정부, 공공정부이기 때문이다. 어떤 얼굴과 세력이 들어서든 해야 할 역사적·사회적·공공적 책무가 있다. 박근혜로 대표되던 모든 불공정과 특권, 사유화를 근절하는 일이다. 그들이 추진했던 반민주, 반민생, 반평화, 반생태 정책의 전면 폐기 후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가 정의로운’ 민주주의 국가로 비로소 거듭나는 일이다.
몇몇 인사 사고나 흠결들이 눈에 밟히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잘하는 것 같아 다행이다. 첫 업무로 일자리위원회를 꾸리고, 공공부문부터 전원 정규직화하겠다는 출발도 좋았다. 비정규직 고착화의 다른 이름이었던 자회사로 정규직화를 넘어선 온전한 정규직화의 결과를 얻기 바란다. 세월호 특조위 활동을 연장하고, 기간제 교사의 순직을 인정했을 때는 고맙기도 했다. 국정교과서도 폐기했다. 5·18 추념식에 오랜만에 대통령이 참석해 진심어린 추도사를 하고, ‘님을 위한 행진곡’이 제창되는 눈물겨움도 있었다. 성과연봉제 폐지 소식도 들렸다. 모두 상식적인 일들인데 사람들을 온통 감격시켜놓곤 했다.
그러던 중 지난 14일엔 일제고사를 폐지한다는 기쁜 소식도 들려왔다. 이참에 전교조 법외노조화 철회, 노동3권 보장 역시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이던 지난 4월 ‘임기 초반에 (전교조의) 법외노조를 철회하겠다’고 구체적으로 밝힌 바도 있다. 어렵지도 않다. 그간 ‘사용부’에 다름 아니던 ‘노동부’를 바로 세우고, 그 노동부가 2013년 10월 팩스 한 장으로 달랑 보냈던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함’ 통보를 철회하면 끝이다. 교육부가 그 통보를 근거로 했던 탄압을 중단하고, 대법원에 계류 중인 재판은 원고인 전교조가 철회하면 끝이다. 시행령과 장관 고시를 개정해야 했던 국정교과서 폐지보다 쉽다. 걱정과 달리 부담도 크지 않고 명분도 많다. 오죽했으면 박근혜 공안통치 시기에도 국가인권위원회가 몇 차례에 걸쳐 법외노조 시정 권고안을 냈겠나. 이 같은 국가인권위와 유엔 산하 국제노동기구(ILO) 이사회의 권고안을 받아들이면 된다. 지난해 헌법재판소도 ‘교원이 아닌 사람이 교원노조에 일부 포함돼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이유로 법외노조로 할 것인지 여부는 행정당국의 재량적 판단에 달려 있다’고 했기에 ‘행정당국’의 수장인 대통령과 노동부가 ‘재량적 판단’을 하면 된다.
박근혜 정부에서 일했던 고 김영한 전 민정수석이 2014년 6월20일에 남긴 기록에 의하면 전교조 법외노조화는 ‘긴 프로세스(process) 끝에 얻은 성과’였다. 아홉 명의 동료 해직교사를 빌미로 6만명에 이르는 전교조 교사들의 헌법적 권리와 합법적 지위를 강제로 빼앗은 국가폭력에 다름 아니었다. 대통령과 그 공모자들이 국가권력과 기관들을 사유화해서 불법적인 ‘프로세스’를 실행한 가공할 만한 헌법유린 정치공작이자 범죄행위로 앞으로 조사와 진실규명이 필요한 사항이다. 나아가 해외에선 학교장을 넘어 경찰, 군인, 법관, 장관들까지 노조원인 경우도 있다. 그런 공공노조원들이 있는 나라에서는 어떤 제왕적 대통령도, 특권도 나올 수 없다. 전교조와 공무원노조 등이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을 가지고 건강하게 바로 서는 것이 한국 민주주의의 진정한 진일보이며, 문재인 정부 5년을 넘어 더 오래도록 ‘나라다운 나라’를 세우는 첩경이 될 것이다.
송경동 시인
'주제별 > 노동, 비정규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설]최저임금 7530원, 가난한 사람들의 희망 (0) | 2017.07.17 |
---|---|
[사설]최저임금 1만원 달성하기 위한 여건 조성 필요하다 (0) | 2017.07.14 |
[정동칼럼]최저임금의 딜레마 (0) | 2017.06.16 |
[사설]노동계 최저임금위 복귀, 1만원 실현 위해 매진해야 (0) | 2017.06.15 |
[NGO 발언대]최저임금 논의에 소상공인 처지도 살펴야 (0) | 2017.06.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