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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이후 100일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자식을 잃은 부모들은 밥을 굶는다. 친구를 잃은 아이들은 뙤약볕 아래 행진하였다. 그래도 ‘이만하면 됐다’며 ‘일상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돌아온 일상에서 우리를 기다린 악마는 바로 윤 일병 사망사건이 드러낸 군대 내 병폐였다. 세월호의 적폐 앞에 무기력하게 눈물을 흘려야 했던 이 시대의 부모들은 군대 내 병폐의 악마 앞에 다시금 가슴을 쓸어내려야 하는 일상이 전개되고 있다.

민주국가의 군대는 주권을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다. 국민은 군대를 무장시킨다. 국가안보의 최후 수단으로 무력을 사용할 수 있게 허락한다. 국민의 군대는 국가 안보의 처음이자 끝이다. 적대적 봉쇄와 협력적 포용을 해야 하는 야누스적인 북한과 대면하고 있는 우리에게 군대는 소중한 재산이다. 군 복무가 개인의 인생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국민은 군대에 복무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러나 이 군대에서 있어서는 안될 일들이 벌어진다. 선임병들이 후임병을 집단으로 구타하고 때로는 죽음으로 내몬다. 복무기간 내내 집단 따돌림을 당한 병사는 총기를 난사하여 전우들을 사살한다. 술에 취한 상관은 여군에게 성폭력을 행사한다. 그리고 군 지휘부는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하며 폐악을 치부로 여기고 숨기려 한다. 지난 10년간 771명의 장병이 자살하였다. 군대 내 전체 사망자의 61.4%를 차지한다. 이중 군병원 냉동고에 191기의 군인들이 안치되어 있다. 이들 대부분이 길게는 십수년째 사실관계가 규명되지 않은 “억울한 죽음”이라고 한다. 군에 자식을 보낸 부모는 피눈물을 흘린다.

윤 일병의 사망은 군내부의 폭행과 집단 따돌림이라는 적폐만을 고발하는 것이 아니다. “때려도 된다”는 기형의 집단문화와 함께 “입 닫고 있으라”는 군지도부의 축소와 은폐라는 군조직의 못된 생리를 고발한다. 최근 몇 년간 굵직한 군사고를 돌아보면 자명해진다. 2012년 10월 북한군 병사가 철책을 넘어 우리군 초소 막사의 유리창을 두드리며 귀순의사를 밝혔다. 일명 “노크 귀순” 사건이다. 당시 군은 CCTV로 북한군의 귀순을 처음부터 확인했다고 발표했지만 결국 거짓으로 판명되었다. 2013년 여군 오 대위는 상관의 지속적인 성추행을 못 이겨 자살하였으나 가해자는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지난 6월 임 병장 총기난사 사고에서 군은 체포과정 중 교전이 있었다고 발표했으나, 교전은 없었고 오히려 오인사고로 인해 병사가 사망하였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번 윤 일병 사망사건 역시 은폐와 축소의 연속선상에 있다.

임 병장 사건 당시 군 당국의 말바꾸기 행태 (출처 : 경향DB)


병사들간 구타사건의 원인이 인성교육에 실패한 사회 교육에 있다고 한다. 그렇다 치자. 그렇다면 때리고 난 후, 자살 사건이 있고 난 후, 성폭력이 있고 난 후, 군 지휘부가 보여준 은폐와 축소의 못된 관행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군 지휘부의 은폐와 보고 누락은 누구와 무엇 때문에 그런 것인가. 그렇게 중요하다는 국가안보의 수행체인 대한민국의 군대는 너무도 패악스러운 악마의 병에 통증도 모른 채 병들고 있었다.

군은 보안이 생명인 조직이다. 그 보안의 목적이 국가 방위에 연관되어 있을 때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군이 인사과실을 피하기 위해 일단 숨기고 보자는 조직의 악습을 보안과 연결시키는 동안 국민의 신뢰를 잃고 궁극적으로 국가안보는 군에 의해 악화된다. 우리 군이 아무리 세계 최고의 동맹과 최신 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하더라도 신뢰할 수 없는 군을 국민이 지지하겠는가.

안보와 보안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닫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부조리에 의해 우리 병사가 죽고 다치는 것은 왜 그랬는지 공개해야 한다. 그래야 군이 산다. 그러나 군 상부의 보고 누락과 사건 축소는 국민의 신뢰를 침해할 뿐만 아니라 때려도 된다는 악마의 규범을 양성하는 적폐적 관행을 초래한다. 군의 치밀한 조직력이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노력을 보이지 않는다면 임무를 묵묵히 수행하는 장병들의 헌신적 명예를 배신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안보는 위태로워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국민 없이 군은 존재할 수 없다.


최종건 | 연세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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