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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을 통해 졸문을 기고한 지 이제 스스로에게 약속한 3년이 되었다. 독자들께 이 지면을 빌려 인사의 말씀과 함께 지난 3년간의 회고와 글쓰기 자체에 대해 느낀 소회를 전해 드리고자 한다.

글로써 타인의 마음을 한 치라도 움직일 가능성만큼 매혹적인 것은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신문에 자신의 이름과 사진을 내걸고 무슨 말이든 애써 적어보려 하는 것인지 모른다. 그렇게 ‘쓰는 이’들은 ‘읽는 이’들을 만나고 싶어하고 그들의 마음을 얻고 싶어하며 잘만 하면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다고 스스로를 최면할 것이다.

그러나 글로써 타인의 마음을 한 치라도 움직일 기대는 애초에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사람들은 읽지 않으며, 가끔 읽는다 하더라도 건성으로 훑어볼 것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정보의 바다에서 필수적인 기술은 읽는 기술이 아니라 뉘앙스와 컨텍스트를 건너뛰고 제목과 키워드를 찾아내는 항해술이 아니었던가. 이들은 좋아하는 글을 읽는 것이 아니라 응원할 것이며 싫어하는 글에는 야유와 악플을 달 것이다.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은 애초에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 것이다.

그렇다고 칼럼니스트는 포기할 수 없으며, 여기서 깊은 고민은 시작된다. 칼럼 주제는 아마 최근 누구나 관심이 가장 많은 ‘핫한 주제’, 혹은 반대로 아무도 다룬 적 없는 ‘소외된 주제’가 좋을 것이다. 제목의 중요성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눈에 띄고 자극적이지만 지나치지도 않은, 약간은 생경한 제목을 붙여야 관심을 유발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핵심 독자(audience)들이 누구이며 이들의 해당 이슈에 대한 생각이 어떤지를 명확하게 알아야 타기팅과 마케팅이 가능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칼럼니스트는 팔아도 이문이 남지 않는 물건을 끊임없이 팔려고 고민해야 하는 불행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비단 신문 칼럼이라는 장르만 그러할 것인가. 어차피 글쓰기라는 것은 쓰는 사람이 읽는 사람에게 어떻게 말 걸고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갈 것인지를 고민하면서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런 의미에서 글쓰기에서 테크닉이나 진정성은 오히려 부차적인 것이며 정말 중요한 것은 쓰는 이와 읽는 이의 관계라고 나는 생각한다. 읽는 눈을 매혹시킬 한 점의 화려한 은유나 스스로의 존재를 통째로 내던져 문장을 깎아낼 진솔함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글쓰는 이가 해야 할 일은 왜 하필 오늘의 이야기를 독자들이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정당화가 아닌가.

이를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첫번째 조건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본 지면을 통해 독자들에게 말 걸었던 지난 3년은 그런 정당화가 거의 필요없는 기간이기도 했다. 사실 부정의한 정부와 부적절한 행정이야말로 시공을 초월한 모든 언론·칼럼의 단골 주제일 수밖에 없겠지만, 국회를 무시하고 외교를 폭주하며 교과서 국정화를 일방적으로 진행한 지난 정부의 과오를 제때 지적하고 민주정치의 원칙을 되새겨보는 일은 피할 수 없는 시급한 의무였다고 생각한다. 내가 주제를 택했다기보다는 주제가 나를 택하는 일이 많았다.

독자들에게 읽어야 할 이유를 납득시켰다면, 두번째로 중요한 것은 이들의 공감을 어떻게 구할 것인가 하는 문제일 수밖에 없다.

지난 3, 4년은 어떤 의미에서 대다수 시민들이 서로에게 공감하는 ‘마음의 과반수’가 구성되는 한국현대사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장면이기도 하였다. 아마도 그 시작은 세월호가 우리 모두의 마음에 남긴 마음의 상흔이었을 것이고, 그 진행은 지난 정부의 믿을 수 없는 부정과 무능이 드러나는 경악이었을 것이며, 그 결말은 광화문과 투표소에서 이웃들을 발견하게 된 실천과 연대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이런 마음들을 내가 제대로 서술했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 과정에서 그 마음들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세번째 조건은 큰 이야기가 아닌 보다 구체적이고 경험적인 주변과 이웃에 대한 세심한 관심이 아닌가 생각한다. 학교 선생으로서 나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썼고 구체적인 교육현실에 관해 썼으며 청년 문제와 제자의 죽음에 대해서도 쓸 수밖에 없었다. 구조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현장에서 맞부닥치는 문제들을 생생하게 쓰다보면 언젠가 해법에 닿거나 가까워질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는 잠시 붓을, 혹은 키보드를 걸어두어야 할 시간인 듯하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 마음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새로운 문제들과 의제들을 보다 잘 이해하고 주변과 이웃을 더 세심하게 살피기 위한, 고 정운영 선생이 말하는 “먹을 갈고 촛대를 닦고 책상을 정돈할” 시간이 바로 지금이 아닌가 생각한다.

<박원호 서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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