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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초에 히로시마를 처음 가봤다. 유명한 원폭돔과 평화기념관 주변을 걷고 보았다. 절절한 고통은 좋은 기념시설에 잘 정돈돼 있었다. 세계에 이만큼 절도 있고 깔끔한 애도 공간이 또 있을까? 그런데 공간을 온통 감싸 안은 ‘평화’의 의장은 왠지 감동을 덜었다. ‘평화’는 역사의 구체적인 난관과 고통을 추상화하는 듯했다. 만약 제주4·3도 히로시마도 평화, 오키나와도 시리아도 ‘평화’라면, 평화란 뭘까? 원폭으로 히로시마에서 죽고 상한 수십만의 사람들은 그보다 더 복잡하고 불편한,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살아있는 문제들을 지시하고 있었다. 즉 인민에 대한 국가의 폭력과 무책임, 미국 패권과 일본 군국주의, 그리고 미국식 학살 전쟁범죄의 문제다.

히로시마대학 가와구치 도모유키 교수의 도움으로 ‘공익재단법인 방사선영향연구소(RERF)’도 방문했다. 이 ‘일·미공동연구기관’은 애초에 1947년 미국에 의해 설립된 원폭상해조사위원회(ABCC)를 계승한 것이다. 미국은 수십만의 사람을 녹이고 태워 죽인 이후에야 방사능이 인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이 연구소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방사능 피폭 관련 바이오 자료, 즉 피해자 및 피해자 후손들의 신체 샘플 도서관을 갖고 있다 한다. 2015년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 지역을 방문한 후 방사능 피폭과 원전 안전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원폭 방사능 피해는 자연재해가 격발시킨 후쿠시마 원전 폭발의 그것과도 차원이 다르다. 사람이 밀집해 사는 도시에다 의도하고 저지른 학살은 인류가 잊어서는 안되는 범죄다.

알렝 레네 감독의 유명한 <히로시마 내 사랑>(1959)은 로맨스 영화의 외관을 걸친 채 가해와 피해의 난감한 문제를 다뤘다. 2차대전 때 독일에 점령당한 지역에서 자란 프랑스 소녀는 독일 병사를 사랑하게 됐다. 독일 패퇴 후 그녀는 ‘부역자’로 몰려 머리를 깎이고 처벌당한다. 히로시마에서 여인은 적(敵)을 사랑한 대가로 부모와 동족으로부터 고통을 입은 자기의 과거와 대면하고 일본인과 사랑에 빠진다. 그런 그녀에게 히로시마 사람이 묻는다. “프랑스인들에게 히로시마는 무슨 의미지?” 그녀는 답한다. “전쟁의 완벽한 종결”, 그리고 핵전쟁이라는 “새로운 공포의 시작”. 그녀는 한마디 덧붙인다. “그러나 사실은 무관심”. 이 세 항목은 히로시마의 피해에 대한 대부분의 타자들의 태도를 적실히 요약한 것 아닐까? 원자폭탄은 새로운 공포였지만, 사실 타인들은 가해자의 국가에 태어난 히로시마 민간인 피해에 대해 무심하고, 무심은 잔인함에 접속한다.

우리의 경우는 좀 더 복잡한 듯하다. 한국 민족을 일제의 폭압과 학살로부터 벗어나게 한 것은 미국의 힘이었다. 학살로써 학살에서 해방되었기에, 그것은 미국의 승리였을 뿐 한국 민족은 승리도, 진정한 해방도 아닌 또 다른 질곡을 얻었다. 원폭은 절대악으로부터의 벗어남과 동시에 다른 거악에의 종속이었다. 1951년 미군은 네이팜탄 등을 한반도 북부에 하도 쏟아부어 더 이상 가루로 만들 것이 남아있지 않자, 강원도 철원과 만주 지역에 대한 원폭 사용을 검토했다.

방탄소년단(BTS)의 지민이 입은 ‘광복 티셔츠’ 온라인 캡처

방탄소년단(BTS)의 한 멤버가 입었던 티셔츠에 나타난 ‘무관심’과 무지는 젊은 그의 잘못이 아니다. 히로시마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말하고 가르쳐왔나? 티셔츠의 원폭구름 이미지 옆에 쓰인 ‘애국주의, 역사’ 따위의 말들이 아프다. 이는 우리가 얼마나 가난한 마음으로 국가와 역사를 생각하는지를 압축한다. 히로시마의 어린이들, 그리고 4만명에 달하는 조선인 원폭 피해자와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해 우리는 가르치고 배운 적이 없다. 인간과 역사를 생각하는 눈조차 차압당한 것이다. 민간인 밀집 지역에 대한 원폭 투하를 ‘힘의 정의’나 불가피한 전쟁 종결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은 미국의 시각일 뿐이다. 그런 방식의 인식이라면 결국 북한의 핵개발도 정당화될 수 있다. 핵과 미국의 힘에 도착적으로 매달린 것은 물론 우리만이 아니다. BTS에 대한 일본 우익의 횡포는 여전히 일본이 겪는 딜레마와 허위의식을 상징하는 듯하다. 오키나와·히로시마·나가사키·후쿠시마를 겪고도 일본은 위선을 벗어나지도, 과거를 청산하지도 못했다.

한편 BTS 티셔츠 사건은 한류로 표상되는 새로운 한국과 한국 문화의 위상이 감당해야 할 역사 인식과 책임을 일깨운다. BTS세대는 가난한 주변국 국민이었던 6070세대는 물론 민주화세대도 경험하거나 감당하지 못했던 세계사적 보편과 역사에 대한 새 인식을 요청받고 실천 중인 것이다. 한류와 세계적인 한국어 배우기 열풍은 한·미동맹과 일국사의 좁은 시선을 넘어, 남북 화해를, 히로시마를, 다문화와 난민 문제를 다시 사유하고 실행할 것을 요청한다. 새로운 자기인식과 세계상을 공부하고 벼려야 하는 때인 것이다.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1960년을 묻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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