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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스포츠칼럼니스트
처음에는 믿고 싶지 않았다. 선뜻 지지하기 어려운 정당 소속이지만, 낯빛 번지르르한 그 당의 지역 유지들보다는 한국 스포츠의 상징이 되는 늠름한 청년이 국회로 진출한다면 조금이라도 젊고 싱싱한 의정 풍경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한 탓이었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에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이며 현 동아대 태권도학과 교수라는 ‘스펙’이라면 한국 스포츠 위상에 걸맞은 인물임에 틀림없어 보였다.
그런데 표절 시비가 일었다. 살펴보니, 달리 변명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시비나 논란이 아니라 거의 ‘사실 확인’만 남은 처절한 논문이었다. 일각에서는 직접 베껴 쓰는 ‘노력’도 하지 않은 대필이라고도 주장한다. 그 ‘사실 확인’의 책임이 있는 국민대학교는 ‘복사 학위 논문’일 가능성이 짙어 연구윤리위원회를 열어 엄격하게 논문을 점검한다고 하는데, 족히 두세 달은 걸린다고 한다.
문대성 후보의 당락 여부와 무관하게 이번 사태를 계기로 살펴볼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문대성 후보의 ‘복사 학위 논문’은 ‘체육 분야 인사들의 학문적 능력’에 대한 일반인의 편견을 더욱 증폭시키는 꼴이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지식사회 일각에서는 엘리트 선수 출신의 학위 논문에 대해 의심스러워 하는 눈치가 없지 않았다. 굳이 대학원 과정까지 생각할 것도 없이 중·고교 과정이나 대학 과정을 정상적으로 이수했느냐는 시선에 대해 자신있게 항변할 수 있는 체육계 인사는 없을 것이다.
문대성 새누리당 후보의 선거사무소 입구에 누군가 붙여 놓은 패러디물 ㅣ 출처:경향DB
2010년 가을, 당시 고려대 재학 중인 피겨의 김연아 선수가 출석은 물론 리포트 제출도 불성실하게 하여 담당 교수의 지적을 받았을 때 체육계의 일반적인 여론이 ‘월드클래스 선수가 국제 대회 출전이나 연습 대신 강의실에 들어가야 하느냐’는 쪽으로 흘렀던 일이 있다. 국제대회 준비라는 현실을 감안하여 리포트 제출 같은 별도의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어쨌거나 ‘정상적인 수업’에 참여했다고는 볼 수 없다. 게다가 스타 선수들은 ‘학교 홍보’ 차원에서 스카우트 작전까지 벌여가며 입학시키게 되는데, 그런 후에 수업을 제대로 이수하라고 재촉할 대학은 거의 없어 보인다. 그런 까닭에 스타 출신 선수들이 언제 공부를 하며 또 체계적인 공부를 해나갈 소양이라도 닦을 수 있었겠느냐 하는 편견 아닌 편견이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이를 악물고 학문의 길을 걷는 적지 않은 선수들이 존재한다. 선수 출신 학자들은 강의실의 교재로는 도저히 체득하기 어려운 오랜 선수 경험을 살려 체육이라는 학문의 심화에 기여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이제 문대성 후보의 표절 논란으로 인하여 묵묵히, 힘겹게, 익숙지 않은 학문 언어에 매진하고 있는 적지 않은 선수 출신 학자들이 오해와 편견에 시달리게 되었다.
달리 생각해보면, 문대성처럼 세계 최고 수준의 성취를 이룬 선수가 강단에 서기 위하여 박사 학위를 제출해야 하는 것도 문제로 남는다. 물론 현장 경험만 있다고 해서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을 너끈히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인 학과 연구로는 감내하기 어려운 오랜 훈련 과정과 세계 최고 자리에 도달하는 과정의 자기 치유 과정 그리고 그 성과를 통해 획득한 국내외 안팎의 네트워크 등은 어떤 점에서 틀에 박힌 학위 논문보다 더 값진 것이다. 이러한 현장 가치를 존중하지 못하는 진부한 아카데미즘 구조에 의하여 표절이나 대필의 유혹이 발생한다.
물론 모든 선수 출신이 이 유혹에 넘어가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일 표절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문대성은 자신에 의하여 비난 받을 수도 있는, 힘겹게 공부하고 있는 선수 출신 학자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해야 한다. 이것은 당락과 무관한, 양심과 윤리의 문제다.
문대성은 부산의 한 지역구에 출마한 후보이지만 동시에 체육계를 대표하는 정치인이기도 하다. 만약 그가 당선될 경우 거의 유일한 선수 출신 국회의원이 되는데, 표절 논란 이후 그가 보여준 태도로 보건대, 과연 권위적인 엘리트 체육 중심의 현행 구조를 개혁할 만한 소신과 역량을 갖춘 것인지 의심스럽다.
‘국위선양’ 일변도의 국가주의 체육 정책이 얼마나 파행적인지, 소수정예의 엘리트 스포츠가 어떻게 선수와 지도자와 학부모를 괴롭히는 구조인지, 전국체전이나 특기생 제도나 각급 대표 선발제도가 어떻게 한국 스포츠의 풍성한 발전을 저해하는지 등 수많은 난제가 얽혀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작은 방법으로 ‘공부하는 학생 선수’를 위한 체육진흥법 개정의 시도가 있었으나 국가주의와 엘리트 위주로 일관해온 체육계의 저항 때문에 좌초된 적이 있다.
나는, 여야를 막론하고, 정말 이번에는 단지 육체적으로만 젊고 참신한 게 아니라 진실로 한국 스포츠의 고질과 구습을 개혁할 만한 인사의 원내 진출을 바랐고, 그 주역으로 문대성을 주목했다. 나는, 그가 화려한 이력과 위상을 앞세워 스포츠계의 거물로 성장하려는 야심가가 아니길 바랐다. 그런데 표절 논란이 일었고 그에 대응하는 태도는 실망스러웠다. 그는 ‘스포츠 정신’이라는 말로 자신을 변명함으로써 어려운 여건에서도 묵묵히 정도를 걸으며 훈련하고 공부해온 학자들의 ‘스포츠 정신’을 침해했다. 풍부한 현장 경험과 근면한 학문 성과를 바탕으로 정·재계 권력자들이 휘두르는 한국 스포츠를 독립적으로 개혁하고 발전시킬 인재를 갖기가 이토록 어려운가. 안타까운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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