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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 | 스포츠칼럼니스트
‘히딩크 효과’라고 했던가? 벌써 10년 전의 일이다. 그때 ‘2002 월드컵 4강 신화’가 있었고 그 신화를 작성한 네덜란드의 히딩크는 감독과 진부한 관성과 낡은 사회 관습에 의미있는 파열음을 낸 주인공으로 기록된 바 있다. 히딩크는 한국 사회의 오랜 서열문화를 잘 몰랐고, 단지 잘 몰랐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중요하게 여길 이유를 찾지 못했고, 그래서 축구장 안팎에서 우선 그것을 없애는 데 노력했다. 군대식 상하관계를 유연하게 흔들었고 적재를 적소에 배치했으며 특정 개인의 재능보다는 시스템이 작동할 수 있도록 했다.
무엇보다 그는 ‘자존심 강한 리더’였다. 원래 그러한 성향이지만 때때로 그는 의도적으로 언론이나 축구계 일부 인사들이 자신과 자신의 아이들(대표팀)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는 자신의 팀이 존중받을 만한 팀이라는 것을 항상 강조했고 그 덕에 그의 팀의 일원이 된 선수들의 정신적 키는 한 뼘쯤 더 자랐다. 몇 가지 변수까지 합해져서, 그 결과가 ‘4강 신화’로 나타났다.
그 후 10년 세월이 지났다. 축구계는 물론 여러 기업이나 기관, 학교 등지에서 히딩크를 직접 초빙하거나 그와 관련한 주제로 크고 작은 강연이 숱하고 열렸는데, 10년이 흐른 지금 우리 사회는, 아니 적어도 한국 축구계는 그 ‘효과’를 어떻게 활용해 변화했는가?
글쎄, 질문을 던지자마자 마땅한 답이 없어 가슴이 무거워진다. 물론 축구장 안에서 벌어진, 매우 특수한 조건에서, 소수의 인원이 일치된 목표를 갖고 치른 과정을 놓고, 그 결과가 찬란하다고 해서 우리 사회의 병리를 진단하고 그 처방까지 구하는, 그 무슨 ‘효과’라고 하는 것이 조금은 호들갑스러운 일이긴 하다. 그러나 사회 전체까지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축구계만이라도 ‘히딩크 효과’의 어떤 요소들이 건강하게 작동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나는 갖고 있다.
그 생생한 사례가 전격적인 조광래 감독 경질이다. 경질 이후 대한축구협회는 ‘한국 축구를 잘 아는 감독’이라는 기준만 제시했을 뿐, 어떤 합리적인 대안이나 장기적인 전망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조광래 감독 | 연합뉴스 | 경향신문 DB
나는 축구협회가 조광래 감독의 임기를 마지막까지 보장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개인에 대한 호불호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기본적으로 그가 추구하는 ‘기술 축구’가 일정한 성과를 나타냈으며 대표팀의 구성원을 20대 초반의 실력파로 재구성한 것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그의 ‘기술 축구’가 좀 더 확실하게 실현되었더라면 대표팀뿐만 아니라 유소년 축구의 체질까지 개선하는 미래지향적인 길로 나아갔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비로소 한국인 지도자에 의해 우격다짐의 특색 없는 축구에서 세련되고 정교한 기술 축구의 지평이 열릴 것이라고 나는 기대했다. 만약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그의 축구가 일정한 성취를 낸다면 이른바 ‘조광래 효과’가 형성되어 상명하복의 서열주의에 길들여진 우리 사회의 오래된 동맥경화증을 개선하는 데도 일정한 기여를 하리라고 나는 생각했다.
이제 그것은 다 무망한 일이 되었다. 이제 뒤집혀진 ‘조광래 효과’만 남았다. 역시 우리 사회는 시스템이 아니라 한두 명의 ‘오너’에 의해 매우 중요한 결정이 손쉽게 이뤄진다는 비극적인 인식만이 남았다. 수많은 의견이 제출되어 건강한 논쟁 속에서 바람직한 전망이 도출되는, 그런 사회란 역시 무망한 일이라는 것을 오히려 강하게 확인시켜준 꼴이 되었다. 기술위원회라는 합법적이며 합리적인 시스템이 아니라 ‘부회장단’이라는 임의적인 모임이 대표팀 감독 경질을 결정하는 현황은 우리 사회의 정계나 재계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낡은 관성이다. 조광래 감독 전격 경질은 오직 그와 같은 적폐가 여전히 막강한 관습으로 남아 있음을 뼈저리게 확인시켜 주었다.
그렇기는 해도 이미 현실은 바뀌었고, 김훈의 표현대로, 축구계는 다시 ‘당면한 문제를 당면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아직 새 감독은 결정되지 않았고 숱한 사람들 이름만 오르내린다. 스벤 고란 에릭손이나 압신 고트비 같은 외국인 감독부터 국내의 김호곤, 최강희, 홍명보 등이 거론된다.
이제라도 기술위원회가 제 역할을 해야 한다. 한국 축구의 기본적인 유전자는 무엇인지, 세계 축구의 흐름은 어떠한지, 현재 대표팀에 참여 가능한 선수들의 구성요소는 어떠한지 충분히 살펴야 한다. 이 큰 흐름 속에서 차기 감독의 가닥이 잡혀야 한다. 그래서 언젠가 또 바뀌게 되더라도 한국 축구의 스타일과 골격과 시스템은 흔들리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히딩크 효과’의 진정한 의미는 바로 이것이다. 특정 개인에 따라 팀이 달라지는 게 아니라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 말이다. 그것을 10년 넘게 유보했으므로 어쩌면 차기 감독도 연봉이나 계약기간이 맞는 사람을 데려오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운 좋게도 그 감독이 쿠웨이트전을 승리로 장식해 최종예선에 진출할 수도 있다. 나는 우선 급한 상황이므로 진실로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그것이 한국 축구의 발전을 기약할지는 의문이다. 합리적인 시스템이 아니라 한두 명의 전횡으로 조직이 굴러가면 언제나 이렇게 임기응변의 미봉책을 구하게 된다. 이 뒤집힌 ‘조광래 효과’를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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