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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현장에 답이 있다.’ 자주 쓰이는 말이다. 한 해를 보내고 또 새해를 맞이하는 중에, 불가피하게 일종의 연말결산 같은 몇 군데의 공적 회의에 참가하였는데, 공교롭게도 모든 자리에서 들은 이야기가 ‘현장에 답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네댓 번 들으면서 내내 생각했다. 현장에 답이 있다? 그런데 그 ‘현장’은 어디인가?

우선 문자 그대로 ‘물리적 현장’이 있다. 눈으로 확인이 가능한 현장 말이다. 공연장이라면 무대의 음향이나 조명 시설에서부터 관람객의 동선에 따른 주차장이나 객석 의자를 점검할 수 있다. 스포츠의 경우에는 운동장이나 훈련장의 시설들 그리고 이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행위 패턴을 분석할 수 있다. 이로써 노후 장비를 보수하거나 교체하고 이용자들의 불편 사항을 개선할 수 있으며 더 적극적으로는 첨단 시설이나 장비를 확충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봐서 이러한 물리적 환경에 있어 한국의 스포츠는 일정한 수준에 도달했다. 엘리트 선수들이 올림픽 등 세계 대회를 준비하고 있는 진천선수촌의 훈련 시설 및 숙소나 식당 등 비훈련 시설은 국제적인 수준이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각 지자체가 운영하고 있는 스포츠 시설 역시 당장 전국 대회를 치러도 될 만큼 발전해왔다. 

그렇다면 우리의 ‘스포츠 현장’은 문제가 없는가. 

‘그렇다’고 답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현장’이란 물리적 환경만이 아니라 ‘관계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그 ‘현장’과 연관된 사람들이 어떠한 조건에서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가, 이 점이 중요하다. 조건이란 제도적이고 법률적인 계약 및 고용뿐만 아니라 해당 업무의 권한과 책임까지를 두루 망라한다. 이른바 스포츠 ‘현장’에서 이 부분은 여전히 취약하고 불안하다. 최고 수준의 엘리트 영역에서 학교 체육과 생활 체육에 이르기까지, 그 ‘현장’의 지도자들은 여타의 사회 고용 관계에 비춰볼 때 비합리적인 계약과 불안정한 고용 조건에 놓여 있다. 대체 불가능한 ‘전문직’임에도 말이다. 이 불안정성에 의하여 ‘관계의 현장’에서 종종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한다. 

대개의 지도자들은 당장의 경기 결과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본인은 물론 선수들의 미래에 대해서도 무한 책임을 진다. ‘아버지’ 역할 내지는 ‘형님 리더십’을 요구받는다. 대개의 지도자들은 개인적인 희생까지 감수한다. 취약한 여건에서, 이는 의연한 선택이며 아름다운 희생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제 수준과 사회적 성숙 그리고 무엇보다 스포츠 그 자체의 국제적인 성취에 비춰볼 때 지도자가 무한 책임을 지는 ‘관계의 현장’은 개선되어야 한다. 

이런 ‘현장’에서는 일부 지도자의 ‘형님 리더십’이 자칫 과도하게 발현될 수 있다. 권한 밖의 행위를 하기도 한다. 극히 일부의 고약한 범법자들은 자신의 행위를 취약한 ‘관계의 현장’ 때문이라고 변명한다. 그러니 ‘현장에 답이 있다’고 할 때, 당연하게도 그 ‘답’은 물리적인 시설이 아니라 지도자와 선수들의 생존 조건에 대한 물음을 던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인식의 현장’이 있다. 누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현장’은 달리 없다. 그 분야에서 주력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의 ‘집합적인 인식’이 그 분야의 문화와 행위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현장’이다.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인식을 집합적으로 공유했기 때문에 자칫 이 ‘인식의 현장’은 하나의 견고한 흐름을 주도하면서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요구를 배척하는 경향을 띠기도 한다. 그러니 이 ‘인식의 현장’의 긍정적인 면을 유지하되 끊임없이 새로운 시대의 인식과 새로운 문화를 과감히 접목하여 개선해 가야 한다.

대한민국 스포츠 정책의 총괄적인 집행자이자 책임자로 최윤희 문체부 제2차관이 임명되었다. 최 차관은 “체육인의 한 사람으로서 무엇보다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현장에서 꼭 필요한 것들이 정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겠다는 소감을 피력한 바 있다. 그래서 한번 더 생각해본 것이다. 문체부 제2차관은 엘리트 체육 육성뿐만 아니라 국민 전체의 건강한 삶과 문화를 책임지는 자리다. 따라서 이 ‘현장’은 물리적 공간이나 특정 직업군이 아니라 국민 생활 전체와 넓은 의미의 스포츠 관계자 모두를 위한 더 복합적이며 미래적인 ‘현장’이어야 한다.

<정윤수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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