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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혁신위의 시간’이 끝났다. 지난해 초, 우리 사회를 충격과 분노로 몰아넣은 스포츠계 성폭력 사건 이후 이를 구조적 차원에서 해결하기 위해 발족된 스포츠혁신위원회 활동이 7차례의 권고와 각 권고의 제도적 이행을 확실히 점검하고 마무리되었다. 

스포츠윤리센터 설립, 스포츠기본법 추진, ‘학생 선수’를 포함한 엘리트체육 문화 혁신, 국민의 건강한 삶을 위한 다양한 제도 권고 등은 향후 한국 스포츠 문화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지금부터는 ‘문체부의 시간’이다. 장기적으로는 스포츠계 전체가 실질적인 주체이지만, 현재로서는 혁신위의 권고에 따른 법적이고 제도적인 정비 및 인력, 재정, 문화 등에 대한 시스템의 변화를 도모할 단계이고, 이는 당연히 문화체육관광부의 공적 의무에 해당한다. 그래서, 어떤 권한의 측면이 아니라 의무의 차원에서 ‘문체부의 시간’이라고 한 것이다.

물론 각 권고를 제도화하는 과정은 쉽지 않다. 스포츠계와 지속적으로 협의하고 설득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인력이나 재원에 관련해서는 관계 부처 및 국회와의 밀도 있는 공적 대화가 필요하다. 그렇기는 해도 대통령의 명에 따라 장관이 직접 스포츠계 혁신을 천명하고 차관이 공식 회의에 대부분 참여하여 결정한 7차례의 권고는, 그저 민간 전문가들의 의견문이 아니라, 스포츠인의 인권 향상과 국민의 활기찬 삶을 위한 국가적 결정 사항이다. 따라서 사안에 따른 완급과 경중은 있을 수 있어도 장기적인 유보나 변형은 있을 수 없다. 속도는 조절할 수 있지만 방향은 흔들려서는 안된다.

혁신위의 공식적인 권고안과는 무관하게, 개인적인 차원에서 ‘권고’하고 싶은 게 있다. 

무엇보다 스포츠계의 ‘칸막이’를 없애야 한다. 이로써 스포츠가 ‘사회 속으로’ 들어가도록 해야 한다. 이 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는 현재의 참여 구성원 구조, 장기적인 인구학적 재생산 구조, 해당 분야와 다른 분야의 결합 구조 등을 면밀히 분석한다. 아니, 동네에 치킨집 하나 개업하려 해도 유동 인구며 그 나이와 성별을 다 살펴본다. 그런데 스포츠계는 사회 전반의 구조 변화 및 문화적 감수성의 변화와 유리된 채 좁디좁은 칸막이 안에 폐쇄적으로 웅크리고 있다.

이 칸막이를 해체해야 한다. 지금처럼 스포츠계가 장벽을 치고 칸막이를 쳐서 스스로 협소하고 폐쇄적인 ‘이익집단’처럼 머물러서는 곤란하다. 스포츠 산업, 과학, 운영, 교육, 국제 관계 등에 지금보다 더 많은 전문가들이 참여해야 하고 그를 바탕으로 궁극적으로는 스포츠인들이 각 분야의 세상 속으로 늠름하게 참여해야 한다. 그렇게 존중받아야 하고 그렇게 사회적 삶을 살아야 한다.

이를 위하여 30, 40대 젊은 스포츠 지도자들을 선진적인 관점에서 양성하고 지원해야 한다. 

이 세대는 20세기 스포츠의 막차를 타고 각 종목에서 성취를 이룬 세대이자 동시에 21세기의 선진적인 스포츠 문화를 경험한 첫 세대다. 해외 진출이나 지도자 유학 또는 단기적인 해외 대회 참가 등을 통해 이른바 ‘스포츠 선진국’에서 스포츠인들이 어떻게 성장하여 그 지역 사회에서 존중받는 직업인으로 살아가는지를 생생하게 체험한 세대다. 

이 젊은 지도자들에게, 혁신위의 권고대로, 최소한의 안정적인 생계 조건을 마련해주고 이들이 선진적인 스포츠 교육과 문화를 체계적으로 배워서 우리의 스포츠 문화를 저변에서부터 개선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국제 외교, 분쟁, 환경, 성, 과학, 도시 재생 등 스포츠가 세상 속에서 수많은 가치들과 결합하고 이로써 더 많은 산업과 직업으로 무한히 확장해 나가는 첫 세대가 되어야 한다. 

끝으로 현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어야 한다. 이른바 ‘체육계 현장’이라고 해서 기존의 ‘칸막이’에 따라 견고하게 조직되어 과잉 대표되는 목소리만 들을 게 아니라 그 바깥으로 밀려난 지도자들, 방치된 선수들, 위계질서의 밑바닥에 있는 학생 선수와 학부모들, 이 ‘수많은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스스로 말할 수 없는 자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리하여 그들이 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국가의 의무다. ‘혁신위의 시간’은 그것을 재확인하고 강화하는 시간이었다. 

이제 ‘문체부의 시간’이다.

<정윤수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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