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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퇴식 때 아버지 품에 안겨
펑펑 울던 차두리 선수를 보며
힘겹고 암담하게 사는 청년들도
누군가에 안겨 울고 싶었을 게다”


한번 흐드러지게 피었다가 차가운 아스팔트로 추락하여 금세 이지러지고 말 운명이건만, 그래도 봄날에는 꽃이 핀다. 어느 시인이 장중하고도 난해한 어느 시에 썼다는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관용적 표현이, 지난해 4월 이후로 우리에게는 그야말로 잔인한 실체적 진실로 굳어져버렸다.

국가는 쓰라린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모욕을 당하도록 방치해왔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저열한 공작으로 비인간적인 수모를 입히는 전략을 1년 내내 구사해왔으니 이런 잔인한 세월이 달리 또 어디 있으랴.

이런 모진 시간에도 우리는 일상을 살아간다. 차가운 겨울이 지나고 새봄이 되어 그라운드와 필드에 프로스포츠가 개막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버거운 도시생활의 활력을 찾고 순간 작렬하는 절묘한 타이밍의 세계를 찾아 경기장으로 몰려든다. 이러한 일상 또한 한 큰술 이상의 무게와 의미는 있는 것이다.

의미 있는 장면들도 꽤 많이 있었다. 당장 기억나는 장면은 2562일 만에 프로축구 K리그 복귀골을 터트린 박주영이다. 12일,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열린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FC 서울의 박주영은 전반 9분 만에 동료들이 획득한 페널티킥을 성공시켰다. 공 한번 제대로 차기 위해 세상 곳곳을 떠돌다가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온 박주영을 위해 동료들은 페널티킥을 차라고 등을 밀었다. 이후 전개된 경기에서 FC 서울과 박주영은 화학적으로 완전히 결합된 경기력을 보이진 못했지만 그 한 장면만큼은 마음속을 울컥하게 한다.

박주영에게 큰 기대를 건 많은 사람들이 그가 유럽의 여러 클럽을 전전하는 과정을 보며 실망했고 또 브라질월드컵을 전후로 분노를 표시하기도 했다. 그렇기는 해도 어느 선수가 벤치에 앉아만 있고 싶었을 것이며 또 어느 선수가 일부러 경기를 망치고자 했을 것인가. 우리의 인생이 그러하듯이 박주영도 경기장 안팎에서 자주 타이밍을 잃고 말았는데, 천신만고 끝에 고향에 돌아왔으니 우선 박수를 치며 격려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 박수는 지금 수고하고 지친 모든 사람에게 보내는 박수 소리와 같다.

3월31일 대표팀 은퇴식을 가진 차두리 선수도 기억할 만하다. 선수로서 그는 기복이 심했다. 공격수에서 수비수로 전환하며 부침을 겪었고 그래서 2006 독일월드컵 때는 독일 분데스리가 경력의 선수임에도 축구화 대신 마이크를 들었다. 그 후, 일취월장하여 2010 남아공월드컵과 2011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괄목상대의 출중한 경기력을 보였으나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는 또 마이크를 잡았다.

그러는 중에도 차두리 선수는 특유의 성실함과 낙천성을 잃지 않았다. 강력한 신체 조건에 더하여 섬세하게 경기 전체를 읽고 조율하는 능력까지 발전했다. 이에 수많은 사람들이 ‘차미네이터’ 같은 별명을 붙여가며 그를 사랑했고 또 부러워했다. 차두리에 대한 부러움과 사랑은 청년 세대의 일그러진 자화상과 겹쳐진 문화 현상이다.


대표팀 은퇴식 때 그의 아버지, 곧 차범근 감독이 그라운드에 등장하여 아들을 끌어안았다. 입술을 굳게 다물고 은퇴식을 치르던 차두리는 끝내 아버지 품에 안겨 펑펑 울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이 나라의 수많은 청년들도 눈시울이 뜨거워졌을 것이다.

누군가의 품에 안겨 저렇게 따스한 위로와 격려를 받아본 적이 언제였던가. 청년들은 기성세대가 일러준 대로 열심히 살아왔는데 바로 그 기성세대가 망쳐놓은 사회 구조 때문에 힘겨운 현실과 암담한 미래 앞에 불안하게 놓여 있다. 진심으로 따스한 위로 대신 사실상 공허한 채찍질에 불과한 이른바 ‘멘토’들의 격려사밖에 들은 게 없다. 그런 청년세대는 지금 이 순간 누군가로부터 진심어린 위로를 받고 싶어 한다. 누군가의 품에 안겨 한번 울어보고 싶다. 차두리에 대한 강렬한 감정은 바로 이러한 집합적 감수성이 응축된 것이다.

그리고 추신수 선수가 있다. 12일, 메이저리그 텍사스 레인저스와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경기에서 추신수는 왼쪽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고 경기장에 나섰다. 텍사스 선수들이 왜 리본을 달았느냐고 물어보고 이에 추신수 선수가 설명하는 듯한 장면도 보였다. 아내 하원미씨가 제안하여 노란 리본을 달았다고 한다.

물론 모든 기호는 맥락에서 작동한다. 어떤 얘기인가 하면 해외에서 활동하는 연예인이나 스포츠 선수들은 비교적 자유롭게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고 유가족을 위로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사회 안에서, 대중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는 스타들이 스스럼없이 이러한 행동을 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게 지금 우리의 자화상이요 비극이다.

끔찍한 재난을 당한 자들을 위로하고 국가의 무책임하고 비인간적 처사에 대해 분노하는 것 자체가 특정한 정치적 행위로 해석되고 더러는 비난까지 받는 현실이다. 마음속에 깊은 슬픔을 가진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들이 자연스럽게 그 슬픔을 표현하고 팬들과 함께 위로의 마음을 드러내는 것조차 꺼려지도록 방치해 놓은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추신수 선수의 가슴에 달린 노란 리본은, 비록 그가 이 현실로부터 조금은 벗어나 자유롭게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다는 점은 있지만,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의미 있는 장면이었던 것이다.

KBO는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오는 16일 벌어지는 여러 경기장에서 시구 행사, 치어리더 응원, 앰프 사용을 하지 않기로 했다. 선수단 전원은 희생자에 대한 애도 묵념을 갖기로 했다. 지난주부터 여러 종목의 경기장에서 선수들이 자연스럽게 삼삼오오 추모와 위로의 뜻을 밝혔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그래도 이렇게 그날의 슬픔과 억울함을 기리는 것은 커다란 의미가 있다.

이 잔인한 달을 모두가 함께 나누어 견디지 않으면 안된다.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한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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