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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올림픽 직전에 나는 입대를 했는데, 그 뜨거웠던 여름에 수행했던 ‘중요 임무’는 올림픽 성화의 안전을 도모하는 일이었다.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경기 북부의 어느 국도로 올림픽 성화가 지나가는데 혹시라도 모를 ‘불순분자나 간첩’의 소행을 차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막중한 임무’를 띠고 사병들은 보름이 넘도록 야산에 매복해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찬 광활한 산야를 경계했다.

ⓒ 경향신문DB

마침내 올림픽 성화 차량이 국도에 나타난 날, 그래도 임무라고 모두들 바짝 긴장했다. 그런데, 그 차량 행렬은 빠른 속도로 나타나서는 국도 저 너머로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이런 일쯤이야 기나긴 생애의 짤막한 에피소드로 그칠 노릇이지만, 부천시 고강동이라면 사정이 달라진다. 비극의 기원은 상계동이다. 1980년대 상계동은 삶이 아니라 생존조차 어려운 곳이었다. 친척이 살고 있어서 자주 놀러가곤 했는데, 사촌들과 씨름이며 레슬링을 하다가 벽을 밀치기라도 하면 옆집 안방으로 넘어지는 곳이었다.

옆집 아저씨는, 나가 놀아라, 하면서 무덤덤하게 못질을 서너 번 해서 다시 벽을 세워 엄연히 분리되어야 할 양쪽 가족의 사생활을 간신히 보호했다. 수십가구당 공용 화장실 하나가 달랑 붙어 있었기 때문에 아침이면 사람들이 신문지를 손에 말아쥐고 줄을 서던 곳이었다. 그 풍경에 질린 아이들은 집 밖으로 떠돌기 일쑤였고 성년이 되기 전에 대부분 가출했다. 그래도 그곳 또한 생존의 엄숙함이 지배하는 곳이었다. 다들 지옥에서 벗어나고자 열심히 살았다.

그러나 아다시피,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은 지옥에서 벗어나려는 상계동 사람들을 무저갱으로 밀어 넣었다. 과연 그것이 ‘세계인의 잔치’를 위한 것일까. 이제는 고전이 된 다큐멘터리 <상계동 올림픽>의 김동원 감독은 “중동 건설 경기가 끝나자 건설자본들이 올림픽을 명분으로 정부에 로비를 하여 재개발사업을 정책적으로 결정”한 것이라고 분석한다. 재개발, 지하철 개통, 분양 딱지, 투기 광풍이 상계동을 뒤덮었고, 곧 헐거운 삶들을 나락으로 밀어버리는 강제 철거가 시작된다.

이 과정에서 일부는 경기도 포천으로 밀려났다. 90여가구가 끝까지 남았지만 이듬해 4월, 1000여명의 용역, 구청 직원, 진압경찰이 상계동을 초토화시킨다. 주민들은 명동성당에서 300여일을 버티며 지하철을 타고 상계동에 있는 일터나 학교를 다니기도 했다. 그러는 중에 많이들 흩어질 수밖에 없었고 39가구가량이 부천의 고강동 국도변으로 떠밀리게 된다. 그래도 라면이라도 끓여 먹으며 가건물을 지으면서 활로를 모색하는데, 또다시 공권력과 용역의 진압이 시작된다.

이유는? 88올림픽 성화가 지나가는 길목이라는 것이다. 주민들은 움막을 짓거나 땅굴을 파서 그 안에 들어가 간신히 최소한의 안전을 도모했지만 이마저도 올림픽 광풍은 참을 수가 없는 듯 당국은 거대한 가림막을 쳐버렸다. ‘외국인’이 보면 안된다는 이유였다.

리우올림픽이라고 해서 사정이 다르지는 않은 듯하다. 현지에 도착한 언론은 여러 정황들을 타전하고 있다. 지카 바이러스도 걱정이고 테러도 걱정이다. 다양한 질병을 전염시키는 모기를 피해 미국 농구대표팀은 항구에 1만6700t급 크루즈 선을 띄웠고, 영국 대표팀은 모기가 올라오기 어려운 고층에 선수단을 배치하기로 했다. 한국 선수단도 모기향, 모기장, 모기채 등을 준비했다는데, ‘만전’을 기하는 모습이다.

한편 지난 21일 브라질 연방경찰은 테러 모의 혐의로 브라질인 10명을 체포했다. 아울러 브라질 정부는 8만5000명의 경찰과 군인을 올림픽 기간 중 도심 곳곳에 배치할 예정이다. 리우의 치안은 극도로 불안해 지난 5년간 발생한 살인 사건 희생자 수가 무려 1519명에 달한다. 브라질 축구 스타 히바우두는 자신의 SNS를 통해 가급적 리우 방문을 자제해 달라고까지 했다.

이런 풍경은 이제 올림픽이 ‘지구촌의 축제’가 아니라 ‘치안 올림픽’이 되었음을 말해준다. 이를, 세상은 평온한데, 스포츠가 문제라는 식으로 봐서는 안된다. 21세기의 대규모 스포츠 대회는 ‘인류의 화합’이라는 식의 부도난 어음을 내걸고 팽창하는 민족주의(정치)와 정교한 상업주의(자본)의 저글링으로 전락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동시에 경기장 바깥의 불안, 브라질의 심각한 불안정성과 지구 곳곳의 위기가 스포츠 대회를 계기로 강력하게 투영된 결과다. 그 무슨 축제를 치르기 위해 관중의 셀카봉까지 반입 금지시키는 상황인데, 이는 21세기가 최소한의 일상을 위해 최대한의 치안 통치를 승인해야만 하는 시대임을 역설한다.

리우올림픽에 소요되는 400억헤알(약 12조6200억원)의 예산은 최악의 경제 상황에 빠진 브라질을 더욱 더 수렁으로 몰아넣고 있다. 큰 대회 이후 재정 파탄을 겪는다는 ‘올림픽의 저주’가 이미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 탄핵 사태 이후 브라질 정치 상황 또한 극도의 혼란 상태이다. 올림픽을 주관하는 체육부 장관이 지난 두 달 사이에 무려 3명이나 교체됐다.

이런 파국 속에서 가장 먼저 고통받고 최후까지 나락으로 내던져지는 사람들은 물론 브라질의 가난한 이들이다. 이미 리우의 빈민가는 올림픽을 명분으로 초토화됐고 거리는 쫓겨난 사람들의 행렬로 어수선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 ‘축제’는 ‘당신들의 올림픽’일 뿐이다.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한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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