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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가 합의하고 또 우리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민주주의의 ‘어떤 요소’가 한국 스포츠의 ‘어떤 상황’에 불일치하는지, 그것을 살필 필요가 있다.”
인권학자 조효제 성공회대 교수의 말이다. 이 말을 지난달 말, 어느 포럼에서 들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포럼의 주최 측은, 한국 스포츠의 전근대적이며 비인권적인 상황이 비단 스포츠 내부의 상황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의 퇴행적 현상과 맞물려 있다는 전제 아래, 이런 문제라면 응당 경청할 만한 탁견을 지닌 조효제 교수를 초청하였던 것이다. 조효제 교수의 발표와 그에 따른 여러 토론자와 참가자들이 주고받은 내용은 다음과 같다.
경향신문DB
스포츠 내부의 인권적 상황은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해결해나가야 한다. 감독이나 선배들의 지속적인 폭행이나 괴롭힘도 그와 같은 사건이 발생하였을 때 당장의 긴급 구제 차원에서 적발하고 징계하는 것이 급선무이지만, 왜 그와 같은 폭행이 끊이지 않고 있는가 하고 질문을 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우리 사회 일반의 위계서열 문화와 스포츠 내부의 서열 작동 방식의 같거나 다른 맥락을 헤아려 판별해내야 한다.
예리한 질문은, 분명한 답은 주지 못할지라도, 다양한 질문을 낳는다. 문제적 상황은 모습을 달리하여 다른 시공간에 불현듯 출현하기 때문에 언제나 질문은 새롭게 던져져야 하며 그럴 때에 질문은 애초의 질문부터 더 예리하게 본질을 파고들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 스포츠계에 만연해 있는 국가주의, 승리지상주의, 위계서열의 구조와 그에 따라 파생하는 폭력이나 비리는 물론 수업권, 문화권, 사회권의 침해 등에 대해 판별할 때에 ‘사회적 상식과 헌법에 보장된’ 바에 근거해 호소하는 차원이 아니라 우리의 사회적 상식이 건강한 것인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여러 권리들이 사회 일반에 적용되고 있는지를 살피고 그중 무엇이 스포츠계 내부의 전근대성을 더욱 악화시키는 힘으로 작동하는지를 분석해야 하는 것이다.
예컨대 정치학자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2000년 3월10일 어느 칼럼에서 이탈리아의 경제 도약과 사회적 활기의 원인을 분석하면서 이 나라 특유의 가족, 지역, 조합의 역할에 주목한 바 있다. 그러나 2006년에는 바로 그 이유, 즉 이탈리아만의 독특한 가족주의적 사회 연결 관습이 프로축구의 승부 조작은 물론 사회 전반의 부정부패의 원인이 되었다는 칼럼을 썼다. 동일한 공간, 동일한 조건이지만 역사적 시간과 상황의 압력이 이 동일성을 정반대의 사회적 양상으로 낳게 하였음을 간파한 것이다.
최근 발생한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16)의 훌리건 사태 역시 마찬가지다. 축구가 좋아서, TV로 시청하는 것은 성에 차지 않아서 직접 경기장에 찾아가는 사람들을 훌리건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욕설이나 폭력이 수반돼야 한다.
훌리건은 그 다음 단계의 행동을 말한다. 경기 전부터 위압적인 분위기를 형성하고 경기 중에는 경기의 세부 진행 사항과 무관하게 쉼없이 구호를 외치거나 욕설을 하며 경기 후에는 승패에 상관없이 주먹을 쓰려고 우르르 몰려다닌다.
물론 에릭 홉스봄이 1960년대를 분석하면서 썼듯이, 훌리건은 사회복지 축소, 빈부격차 심화, 권리 박탈 등에 따라 비등해진 하위 계층의 불만이 어느 정도 열려 있으되 사실상은 규제와 관습 때문에 차단되어 있는 축구장에서 다소 거칠게 표현되는 정도로 이해되는 때가 있었다.
1980년대 악명 높은 마거릿 대처 정부의 노동자 탄압 때도 축구장에서 터져나오는 불만의 함성과 억하심정의 행동에 대해 존중하고 양해되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양상이 달라졌다. 훌리건들의 좀 더 조직적인 행동 결사체인 울트라스는 축구장에 떼를 지어 나타나되 축구와는 하등 상관없이 행동한다.
지난 6월12일 유럽축구선수권대회가 열리는 프랑스 남부 마르세유에서 잉글랜드와 러시아의 울트라스들이 맞싸워 44명 이상이 다치는 일이 터졌다. 프랑스 정부는 러시아 울트라스 20명을 추방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추방된 자 중에는 극우파 울트라스 리더인 알렉산드르 슈프리긴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극단적인 인종 혐오와 러시아 국가주의를 앞세우는 전(全)러시아축구팬연합(VOB) 회장이자 러시아 하원 의원 이고리 레베데프의 보좌관이다. ‘개인적 일탈 행동’이라고 보기에는 상당히 구조화된 힘이 느껴진다. 프랑스 경찰은 “잘 훈련된 러시아 훌리건 150여명이 아주 빠르게 아주 폭력적으로 행동했다”고 발표했다.
축구팬이 서포터스가 되었다가 훌리건이 되고 울트라스가 되는 것은, 적어도 유럽에서는 어렵지 않은 행로다. 모든 축구팬이 울트라스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대개의 울트라스는 처음 축구장에 들어설 때는 축구팬이었다.
그렇다면 공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는가, 정녕 승패의 결과 때문에 그가 폭력배가 되었는가. 아니다. 그 사이에 스며든 사회적 공기를 맡아봐야 한다. 그가 숨쉬고 있는 곳의 사회적 공기, 그것의 성격과 방향에 의해 그는 축구장으로 들어가 열렬히 응원하기도 하고 축구장 밖에서 상대편 팬들에게 악행을 하려고 서성대기도 하는 것이다.
이는 급속한 사회적 퇴행과 경제 불안에 따라 언제든지 우리 사회에서도 발생할 수 있는 문제다. 처음에 그것은 일부 팬의 극성맞은 행동이요, 일부 ‘축빠’나 ‘야빠’들의 치기어린 팬심으로 불린다. 그러다가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의 ‘넘쳐 흐름’이 발생하고 나면, 그 이후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사회적 불만을 스포츠 현장이나 문화적 장소에서 거침없이 내뱉는 흉포한 행동이 될 것이다.
이미 그러한 일들이 다양한 문화적 장소에서 전국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제 실질적 의미의 “왜?”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정윤수 스포츠평론가·한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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