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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박지성이 대표팀 은퇴를 발표했을 때 나는 그 이유와 소신을 지지하는 글을 몇 차례 썼다. 왜 몇 번이나 썼느냐 하면 축구협회 일각에서 ‘너의 몸은 국가의 것’이라거나 ‘그쪽에서 다른 생각이 있나 알아보겠다’는 식의 반응이 있었기 때문이다.

유력한 축구인사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차범근 해설위원이 박지성의 몸 상태와 정신적 고통을 깊이 공감하며 은퇴 의사를 존중한 것으로 기억한다. 그로부터 3년이나 지난 지금 박지성은 ‘은퇴 복귀’ 논란의 중심에 있다.

사실 시간이 별로 없다. 6월13일에 브라질 월드컵 개막식이 열린다. 한국팀의 첫 경기는 18일이다. 역산을 해보면 6월2일까지 국제축구연맹(FIFA)에 23명의 최종 엔트리를 제출해야 한다. 30명의 예비 엔트리는 5월13일까지 제출해야 한다. 검산해보면, 실질적으로 브라질 월드컵은 4개월도 채 남지 않았다.

지금 홍명보호는 불안정하다. 브라질 이구아수로 훈련을 떠난 선수단은 일주일 정도 현지 적응 훈련을 한 후 미국으로 가서 평가전을 갖는다. 이 평가전에는 유럽에서 뛰는 선수들은 불참한다. 국내와 아시아에서 뛰는 선수들이 주축이다. 분파주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냉혹하고도 실질적인 의미에서, 이른바 ‘유럽파’가 대부분 엔트리에 포함되고 주전으로 활약하리라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그들은 지금 유럽 리그를 뛰고 있다. 가능한 자원 모두가 함께 훈련할 시간은 3월 초순와 5월 중순, 두 번뿐이다.

대표팀은 아직 완전체에 이르지 못했다. 축구를 약분하면 개인기다. 기성용에서 손흥민까지 각 포지션마다 탈아시아급 선수들이 포진해 있다. 다행이다. 그러나 축구를 통분하면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완전체다. 이 점이 더 중요하다.

11명은 정해진 위치에 고정되어 있지 않다. 심판의 휘슬이 울리자마자 바람이 적당히 들어간 풍선처럼 의미 있는 공간으로 일제히 수렴되었다가 순식간에 확산된다. 이때 그라운드 안에서 전체적인 전략 판단을 이끌어내는 선수가 필요하다. 실전에서는 감독의 작전 지시가 거의 들리지 않을 지경이다. 직접 잔디를 밟으면서 팀을 조율하는 선수가 반드시 필요하다. 개활지의 전략적 상태를 일순간에 판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저 어깨를 한번 툭 쳐주는 것만으로도 갑자기 힘이 솟게 만드는 소대장 말이다.

홍명보 감독이 박지성의 대표팀 복귀 가능성을 내비친 것은 이 때문이다. 매우 현실적인 판단이다. ‘유종의 미’라든가 ‘화려한 은퇴식’ 같은 것은 다 수사일 뿐이다. 지난 6개월여의 기간 동안 홍명보 감독은 그라운드 안의 독전관이 부재한 상황을 거듭 확인했다. 몇 차례의 평가전에서 주목할 만한 선수를 점검했고 믿을 만한 선수를 확인했다. 그러나 10여년 전, 그 자신이 그라운드 안에서 했던, 11명의 선수를 유기적인 완전체로 결합시키는 ‘보이지 않는 역할’을 해줄 선수는 얻지 못했다. 전역한 소대장이라도 다시 불러와야 할 상황이다.

 


▲ 그라운드 조율할 선수 부재에 홍명보 감독의 ‘현실적 판단’
합류 여부 지체되면 혼란만 지속… 자칫 ‘중심’ 없이 브라질 갈 수도

일각에서는 박주영의 부재 때문에 박지성의 복귀를 검토한 게 아니냐고 분석한다. 그러나 별개 사안이다. 박주영은 박주영대로 필요하다. 안타깝게도 지금 박주영은 아스널의 연습구장 잔디만 밟고 있다. 그가 만약 실전에 복귀한다 해도 90분 내내 골을 노려야 하는 최전방의 공격수다. 팀 전체의 물러섬과 나아감을 맡길 수는 없다. 10여년 전, 그 화룡점정의 위치에 황선홍이 있었는데, 홍명보가 뒤에서 받쳐줬기 때문에 오직 골문을 응시할 수 있었다. 박지성 카드는, 박주영의 실전 복귀와 무관한, 완전히 독립된 과제다.

문제는 이미 박지성이 대표팀 은퇴 의사를 여러 차례 밝혔다는 점이다. 조광래, 최강희, 홍명보 감독 등이 박지성을 고려할 수 없는 상태에서 대표팀을 운영해왔다. 예비 엔트리에 이름을 올릴 만한 선수들도 박지성이라는 그림자를 의식하지 않고 달려왔다. 박지성이 복귀한다면 최소한 1명은 브라질로 가지 못한다. 그 경우, 관계자 전원에게 매우 인간적인 고뇌가 따르겠지만 그라운드의 온도는 언제나 냉정하다.

중요한 것은 박지성의 복귀가 당장의 월드컵 대비와 향후 한국 축구의 발전에 전략적으로 반드시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축구 100년사 동안 그 누구도 겪어보지 못한 그의 경험과 경기력이 온전히 그라운드를 적시고 그 피를 젊은 선수들이 나눠 마시는 일이 되어야 한다. 몇 경기 뛰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를 넘는 사안이다.


그러니 복귀에 관한 결론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박지성은 거칠고 빠른 네덜란드 리그를 온전히 소화할 수 있는 경기력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 20일 새벽, 아약스와의 원정경기에 선발출전해 80분 넘게 뛰었다. 홍 감독은 그를 2월 중에 만날 예정이라고 했다. 바로 그 자리에서 결론이 나고 공인되어야 한다.

박지성이 복귀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 자신의 치명적인 무릎 부상과 후배 선수들에 대한 배려 그리고 이제까지 박지성 없는 대표팀을 조련해온 과정을 검토해 고사할 수도 있다. 우리는 3년 전처럼 그의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 그러나 일단 점화된 얘기이니만치 박지성도 가급적 일찍 그리고 분명하게 의사를 표시해야 한다. 그가 합류해도 4개월은 부족하다. 합류 여부가 지체되다가 무위로 그치면 문제는 더 커진다. ‘중심 없는 팀’이라는 혼란만 지속되고 급기야 ‘중심’ 없이 브라질에 가는 팀처럼 된다. 이는 홍 감독이나 박지성 모두 원치 않는 일이다.

 

정윤수 | 스포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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