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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미국프로농구(NBA)에 데뷔하여 15년, 신인 때부터 지금까지 받을 만한 상은 다 받았고 2012 런던 올림픽 금메달에도 기여한 르브론 제임스. 203㎝의 거구로 강력한 파워와 현묘한 기술로 코트를 지배했지만, 그가 가장 잘 다스린 것은 그 자신이었다. 데뷔 14년차 되던 2017년 11월, 무려 1082경기 만에 처음으로 퇴장을 당했을 정도로 그는 자신의 육체만이 아니라 정신까지 최고 수준으로 관리했다.

그러나 지금 그는 코트 바깥의 경기에서는 거칠게 몰아붙이고 있다. 고향 오하이오주 애크런에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학교 ‘아이 프로미스(I Promise)’를 개교한 뒤 가진 CNN과의 인터뷰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인종주의적 행태를 비판한 것이다. 올 초에도 “인종주의가 우리를 정복하고 우리를 분열시키도록 둬선 안된다”고 트럼프를 비판한 제임스는 “트럼프가 스포츠를 이용해 우리를 분열시키려 한다”고 말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트럼프도 제임스를 비아냥거리며 마이클 조던을 존경한다고 언급했다. 아차, SNS는 하등 필요 없는 것이라고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그랬던가. 트럼프는 실수했다. 마이클 조던만은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20세기 스포츠의 최고 영웅인 마이클 조던은 “난 르브론 제임스를 지지한다”고 즉각 대응했다. 조던은, 자신이 백인 주류 사회로부터 ‘성공한 흑인’으로 선택받는 것을 불편해하고 그런 ‘호의’를 거절해온 사람이다. 조던처럼 열심히만 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는 곳이 미국이라는, 이른바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을 조던은 거부해왔다. 그랬는데, 트럼프가 제임스를 비난하기 위해 자기 이름을 들먹거린 것을 조던은 불쾌해한 것이다. 조던은 덧붙였다. “제임스는 지역사회를 위해 엄청난 일을 하고 있다.”

이 부분이 더 중요하다. 르브론 제임스가 설립한 학교 말이다. 그는 오랫동안 새로운 개념의 학교를 준비해왔다. 단지 억만장자 스포츠 스타가 기부하여 설립하는 자선 학교가 아니라 수업의 체계와 방식,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교사의 관계가 ‘전혀 다른’ 학교를 제임스는 상상해왔다. 그의 어머니는 16살 때 제임스를 낳아 남편 없이 혼자 키웠다. 극심한 가난과 인종차별을 견뎌야 했다. 그래서 제임스는 생각했다. 단순한 학교가 아니라 ‘다른 학교’가 필요하다고. 개교를 하면서, 제임스는 울었다. 브라질의 축구 스타 호나우지뉴도 그랬다. ‘파벨라’, 즉 판자촌에서 성장한 호나우지뉴는 2006년 12월, 고향 포르투 알레그리에 3만6000여평 규모의 국제 규격 축구장과 다목적 연습장, 2개의 수영장과 4000석 규모의 실내경기장이 있는 학교, 아니 학교라기보다는 하나의 공동체 마을을 설립했다. 학교 안에 병원까지 있고 그 밖의 공동체 시설이 들어섰다. 이 ‘학교’를 개교하면서 호나우지뉴는 기념 슛을 했는데, 자기 평생 가장 의미 있는 킥이라고 말하면서, 울었다.

두 경우를 보면서, 생각해본다. 우리의 스포츠 문화와 교육 말이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다양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의 스포츠 교육은 제자리걸음이다. 일반 학생들은 스포츠를 즐기기가 쉽지 않고 장차 프로 선수를 꿈꾸는 학생들은 일반 교육을 받기가 쉽지 않다. 진학, 병역, 취업 등과 관련하여 모든 학생들, 지도자들, 학부모들의 입장이 뒤엉켜 있어서 실타래를 풀기가 어렵다. 엉킨 실타래를 칼로 내리쳐서 끊어야 할 텐데,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나 각 종목의 협회에서 몇 차례 그런 시도를 했으나 무딘 칼날이었고, 그 후의 대안도 마땅치 않아서 실타래는 더 엉키고 말았다.

그런 현실 때문인지, 스포츠를 교육한다는 것 그리고 스포츠를 통해 다른 분야를 공부한다는 것, 그 내용 자체가 여전히 20세기를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 스포츠의 교과목은 대체로 기능적이고 도구적이다. 신체적 능력에 집중되어 있어서 스포츠에 내재된 역사와 미학과 정서의 가치를 제대로 배우기가 어렵다. 스포츠를 사회 전체와 떼어놓음으로써, 이 의미 있는 행위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수많은 가치가 발현되지 못하고 있다.

당장 최근의 일만 복기해보자. 21세기의 다문화와 이민, 난민의 상황들. 이를 프랑스 축구대표팀을 통해 공부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프랑스 대표팀이 ‘성공’했다는 게 아니다. 그 ‘성공 신화’와 실제 유럽의 상황을 파악하는 데 있어 생생한 교육 자료라는 얘기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를 비롯하여 베켄바워, 루메니게, 비어호프, 히츠펠트 같은 독일 축구계의 리더들 그리고 보아텡이나 뮐러 같은 현역 스타들이 저마다의 입장에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있는 외질 선수의 독일 대표팀 은퇴 사례 역시 의미 있는 공부가 된다. 국가 부르기가 강요된다면 차라리 부르지 않겠다고 했던 지네딘 지단의 사례처럼, 외질의 대표팀 은퇴는 국가와 스포츠, 개인의 신념과 공동체의 관계, 이민과 다문화 등 우리가 이미 겪고 있거나 곧 중요한 사회적 의제로 될 상황을 숙의하게 해준다.

말하자면 ‘스포츠 하기’도 중요하지만 ‘스포츠 읽기’도 중요하다는 얘기다. 스포츠를 통해서 복잡한 역사도 배우고 다양한 가치와 상충되는 윤리적 난제도 배울 수 있다. 그런데 누가? 이 중요한 사안들을 스포츠 연구자나 전공자가 아니라 무엇보다 선수들이 배우고 익혀야 한다. 이미 몸속에 이러한 난제들이 뒤엉켜 있는 그들에게 이를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스스로 겪는 수많은 문제들을 스스로 설명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그럴 때에, 우리의 선수들이, 스포츠로 큰돈을 벌었다거나 방송까지 진출해서 유명해지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의제에 참여하고 함께 해결해나가는 ‘진짜 스타’가 되는 것이다. 가난과 차별에 맞서 지단이 싸웠고 호나우지뉴가 눈물을 흘렸으며 제임스가 연대를 하고 있다. 그런 행렬에 우리 선수들, 우리의 스타들도 함께하는 풍경을 상상한다.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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