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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일제히 개막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 가슴이 뭉클한 장면이 있었다. 뉴캐슬 대 맨체스터 시티의 경기가 열린 뉴캐슬의 홈구장 세인트 제임스파크 경기장. 수많은 관중이 운집한 가운데 무거운 침묵의 시간이 먼저 흘렀다. 뉴캐슬의 열혈 팬 두 명을 추모하기 위한 시간이었다.

지난 7월18일, 우크라이나 영공을 지나던 말레이시아항공 여객기가 미사일을 맞고 격추당한 사건이 있었다. 죽음이 일상화된 이 살벌한 세계적 상황에서도 이 사건은 내전 와중에 벌어진 정교한 조준 타격이었다는 점에서 전율을 불러일으켰다. 그 비행기에 뉴캐슬의 팬 두 명이 타고 있었다. 뉴캐슬의 1군 경기는 물론 유스팀 경기까지 찾아다니며 응원해 온 존 알더(63)와 리암 스위니(28)는 뉴캐슬 선수들의 프리시즌 투어를 보기 위해 탑승했다가 사망하고 말았다.

경기장의 팬들은 두 차례에 걸쳐 그들을 추모했다. 우선 경기 전에 슬픔에 잠긴 유족들을 그라운드 중앙으로 초빙하여 추모의 화환을 고이 눕힌 채 침묵의 1분을 가졌다. 그리고 전반전 17분경, 모두가 1분여 동안 추모의 박수를 쳤다. 17분은 항공기가 격추된 7월의 그 비통한 시각이었다.

이 추모에 앞서, 뉴캐슬의 숙적인 선덜랜드 팬들도 두 명을 위한 모금에 적극 나섰다. 우리의 태백산맥처럼, 잉글랜드의 척추로 불리는 페나인산맥의 북쪽에 타인강이 흐르고 남쪽에 위어강이 흐른다. 타인강이 흐르는 곳에 뉴캐슬이 있고 위어강이 흐르는 곳에 선덜랜드가 있다. 영국 산업혁명기를 대표하는 탄광 도시들이다. 이 두 팀이 맞붙는 ‘타인위어 더비’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수많은 더비 매치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충돌로 유명하다.

그랬는데, 뉴캐슬 구단이 홈페이지 등을 통해 두 명의 팬을 추모하기 시작하자 곧장 선덜랜드 팬들이 모금 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선덜랜드와 뉴캐슬은 아주 깊은 라이벌이지만 세상에는 축구 경기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게 선덜랜드 팬들의 호소였다.

고국 독일에서 히틀러 파시즘을 잔혹하게 겪었고 망명지 미국에서 할리우드 상업 문화를 목격한 사상가 아도르노는 <계몽의 변증법>, <프리즘> 등의 저작에서 현대를 ‘총체적 기만’이라고 정의하면서 스포츠에 대해서도 날카롭게 비판했다. 독일의 파시즘이나 미국의 거대한 문화산업이나 대중의 욕망을 통제하여 특정한 감정과 행동을 유발시킨다는 점에서 동일한 원리를 갖는다고 그는 보았다. “스포츠는 파시즘 대중 집회의 모델이다. 잔혹함과 공격성을 권위주의적으로 훈련된 경기 규칙과 결합시켰다”고 아도르노는 비판했다.

아도르노가 날카롭게 비판한 상황은 가난과 독재의 시련을 겪은 제3세계의 현대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었다. 1978년의 아르헨티나 월드컵은 독재자가 축구를 어떻게 효과적인 통치 수단으로 삼을 수 있는가를 잘 보여준 대회였다. 사실 남의 일이 아니다. 전쟁 이후, 가난을 견디고 독재를 이겨내야 했던 우리로서는 축구를 포함한 많은 스포츠 행사에서 ‘욕망의 통제와 특정한 감정 생산’, 즉 국가주의의 섬뜩했던 기억을 갖고 있다.


▲ 프란치스코 교황이 남긴 뚜렷한 가르침을
잉글랜드 축구장서 팬들은 실천했다


그러나 이러한 부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스포츠는, 특히 축구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감정을 가지고 몰입하는 경기에서는 반드시 ‘감정의 파시즘적 통제’만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1950년대 이후 영국의 버밍엄 학파가 스포츠를 적극적으로 연구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리처드 호가트, 레이먼드 윌리엄스, 스튜어트 홀 등은 아도르노의 문화산업론 혹은 프랭크 리비스로 대표되는 전통주의자에 맞서 스포츠를 비롯한 대중문화를 통해 분출되는 하위 계층의 격렬한 감정 표출을 옹호했다. 이를테면 축구장에서 나타나는 남성 팬들의 ‘형제애’는, 훌리건으로 매도될 만한 혐의에도 불구하고, 영국의 근현대사를 지탱해온 억압에 대한 저항과 끈끈한 공동체 정신의 또 다른 표현이라는 분석이다.

영국의 대표적인 사회파 감독 켄 로치의 2009년 작 <에릭을 찾아서>는 이들의 분석과 옹호가 틀리지 않았음을 영상으로 입증한다. 고용 불안과 가족 관계의 파탄에 처한 주인공 에릭이 자신이 열렬히 흠모하는 또 다른 에릭, 즉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빅스타 에릭 칸토나와 정신적으로 만나면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는데, 이때 같은 직장의 동료들이 끈끈한 우애와 연대를 보여준다.

잉글랜드 명문 클럽 아스널의 골수팬이자 소설가로 유명한 닉 혼비는 <피버 피치>에서 이렇게 쓴다. “팬이 된다는 것은 대리만족이 아니다. 축구를 보는 것은 결코 수동적인 활동이 아니며 실제로 뛰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가 느끼는 기쁨은 남의 행운을 축하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행운을 자축하는 것이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슬픔을 함께 나누는 것, 흠모하는 선수가 실수했을 때나 성원하는 팀이 패배했을 때, 그 외로움과 허탈함을 함께 나누는 것도 팬의 일이다.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것, 당신은 혼자 있지 않다고 다정하게 말해주는 것, 잊지 않겠노라고 말해주는 것. 프란치스코 교황이 남긴 뚜렷한 가르침을 저 멀리 잉글랜드의 뉴캐슬과 맨시티와 선덜랜드의 팬들도 축구장에서 실천했다.


정윤수 | 스포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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