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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봄, 그러니까 5월31일 한국야구위원회(KBO)는 법무부와 업무 협약을 맺고 양 기관의 책임자들, 즉 구본능 KBO 총재, 김현웅 법무부 장관, LG 트윈스 신문범 사장, KIA 타이거즈 박한우 사장 등이 등장하는 행사를 잠실야구장에서 진행했다. 이 행사와 그에 따른 여러 자료들을 보면서, 나는 피할 수 없는 자괴와 냉소에 사로잡힌 적 있다.

 

이름하여 ‘법질서 실천운동과 클린 베이스볼 문화 확산’이 그것인데, 이 얼마나 관변적이고 비스포츠적인가. 답답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짜릿한 감각의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프로 스포츠인데 그 대표 종목인 프로 야구의 신성한 그라운드에, ‘법질서 확립’의 국가 대변자인 법무부 장관이 들어서고 야구의 수장들이 그 옆에 서서 ‘클린 베이스볼’을 외치는 모습이란 실로 제 얼굴에 침 뱉는 격이었다.

 

‘법질서 확립’, ‘준법 문화 확산’ 같은 구시대의 관제 용어 앞에서 진행된 행사가 과연 KBO가 스스로 내켜서 한 일인가. 지금도 의심스럽다. 프로 야구뿐만 아니라 웬만한 인기 스포츠마다 이런 행사를 진행했는데, 이것이 각 경기 단체의 자발적인 의욕인지 아니면 ‘박근혜-최순실-김종’으로 이어지는 ‘스포츠 커넥션’이 요란하게 내건 이른바 ‘4대악 근절’ 프로젝트의 어두운 협잡의 결과인지 의심스러운 것이다. 설령 스포츠 내부의 부정이나 비리를 청산한다 해도 우선 KBO가 내켜서 자구해야 하고 자정해야 하며 그 결과를 팬들에게 자명하게 밝히는 방식으로 실천했어야 할 일이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어쨌거나 그렇게 업무 협약을 맺고 나서 프로 야구를 포함한 한국 스포츠 전체가 ‘클린’해졌는가. 무릇 이런 강압적이고 용어와 관변적인 행사를 통해 그 무슨 ‘문화 확산’이 이뤄지는 경우를 못 봤는데, 아니나 다를까, 올해는 유난히도 스포츠 전체적으로 ‘법질서’가 파괴되고 야구를 비롯한 주요 종목들에도 ‘더티’한 문화가 확산되었다.

 

박근혜, 최순실, 김종으로 이어지는 국가 스포츠 정책의 파괴적인 양상이야 더 말할 것도 없지만, 이 게이트와 전혀 무관한 지점에서도 올해 한국 스포츠는 최악이라고 해도 될 만한 사건의 연속이었다. 뿌리 깊은 승부 조작과 몇몇 선수들의 도박과 음주 등으로 얼룩진 한 해였거니와 특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구단 차원에서 사건을 도모했거나 적어도 구단이 높은 수준의 책임을 져야만 하는 사건이 종목마다 발생했다는 점이다.

 

먼저 프로야구의 NC 다이노스 구단. 이 구단은 이성민 선수가 승부조작에 연루된 것을 알고도 KBO에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 보고를 지체하면서 시간을 번 끝에 이 구단은 이성민 선수를 신생 구단 KT 위즈에 트레이드했다. ‘야구에 대한 진지함이 없고 코치진과 사이가 좋지 않다’는 인격 훼손까지 하면서 말이다. 구단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승부조작을 은폐한 점, 이 정보를 숨긴 채 타 구단으로 거액을 받고 트레이드하여 수익을 올린 점, 결국 경찰의 조사 끝에 구단 단장과 운영본부장이 불구속 입건되었으나 구단 차원에서는 진지한 사과와 통절한 반성 없이 형식적인 사과를 한 후 유야무야 시켰다는 점 등은 가히 올해 최악의 ‘더티’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은 프로축구의 전북 현대. 2013년에 팀 스카우터가 심판들에게 수백만원을 건넨 사실이 올해 밝혀져 구속되고 팀은 한국프로축구연맹으로부터 승점 9점 감점과 벌금 1억원의 징계를 받았다. 아시아 최고 명문 구단의 하나로 자존심이 높고 팬심도 뜨거운 곳이지만 구단 직원이 심판 매수를 했다는 점만으로도 충격일 수밖에 없는데, 더 문제는 이 징계가 사실상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점이다. 지난해에도 경남FC가 심판을 매수한 것이 밝혀져 승점 10점 감점과 7000만원의 제재금을 낸 적 있는데, 이때에는 그나마 경남FC가 챌린지 리그(2부) 소속이라 하위 리그 강등 조치를 할 수 없다는 제약이라도 있었다. 더 문제는 과연 스카우터 혼자서 심판을 매수하려고 했을까 하는 점이다. 아무리 팀에 대한 충정이 있다 해도 일개 직원이 자신의 업무도 아닌데 사비를 들여 심판을 매수하려고 했을까. 이해하기 어렵다.

 

이 두 구단은 개인의 일탈로 축소하면서 형식적으로 사과하는, 부정과 비리가 판치는 한국 사회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이뿐이 아니다. 한국여자농구연맹(WKBL)의 KEB하나은행 구단은 외국인 선수 첼시 리의 서류를 위·변조 하다가 발각된 바 있는데, 이와 관련하여 구단은 물론 신선우 WKBL 총재의 책임 있는 사과도 없었고 심지어 박종천 전 KEB하나은행 감독은 사임 3개월 만에 해설위원으로 등장했다. 게다가 신선우 총재가 연맹 운영과 관련하여 숱한 잡음과 의혹을 야기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모든 부정을 최순실에게 덮어씌울 수도 없다. 모든 비리를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때문이라고 변명할 수도 없다. 올해는 한국 스포츠가, 특히 팬과 언론이 일상적으로 지켜보고 있는 프로 스포츠마저 최순실, 김종 못지않은 부정의 온상임을 뼈아프게 확인한 해다. 자정과 자성 없이 이대로 방치했다가는 정말 스포츠 현장이 검경의 합동 작전이 펼쳐지는 활극의 그라운드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한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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