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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팀을 떠난 선수의 옛 유니폼이 다시 팔린다. 이례적인 일이다. 그것도 제 나라로 훌쩍 떠난 선수다. 미국 메이저리그 밀워키 브루어스에서 뛰고 있는, 그러니까 NC 다이노스에서 뛰는 동안 홈런 47개, 도루 40개로 KBO 사상 최초의 ‘40-40’ 대기록을 세운 에릭 테임즈 이야기다.
한국에서의 놀라운 기록으로 야구의 본향 미국에 ‘역진출’하여 큰 성과를 이루고 있는 테임즈. 그가 밀러파크의 타석에 등장할 때 울려퍼진 응원가는 1900년대 초 영국 군가를 NC 응원단이 개사한 곡이다. 그러니까 우리말로 ‘에릭~ 테임즈 날려라~’라는 응원가가 현지에서 울려 퍼졌고 테임즈와 동료들은 이를 같이 불렀다. 5년 만에 메이저리그에 복귀한 테임즈는 내셔널리그 홈런 공동 1위로 활약하고 있다. 타율은 0.405로 3위이며 출루와 장타 등 타자의 능력을 종합적으로 말해주는 OPS 기록은 전체 1위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여기까지는 훈훈한 이야기다. 조금 과장하여 말한다면 ‘코리안 드림’을 성취한 뛰어난 선수가 지체없이 야구의 최고 격전장에 가서 ‘아메리칸 드림’을 성취하고 있으니, 그가 국내에서 활약하던 시기의 다양한 제스처와 익살까지도 두 번 세 번 상기하게 된다.
그러나 지난 4월17일, 테임즈가 미국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와 가진 인터뷰가 ‘메이저리그 월드’ 유튜브 채널로 소개되면서, 국내에서는 한순간 싸늘한 반응이 나온 적 있다. 연예흥행 산업이 발달한 미국의 스포츠 채널 인터뷰답게, 테임즈는 웃음과 농담을 섞어가며 한국에서의 경기 외적인 경험들을 말했다. 진행자들이 한국에 여행 갈 때 어떤 말을 해야 하냐고 묻자 “나, 변태”라는 단어를 말하기도 했다. 사뭇 진지하게 이를 받아적자 테임즈는 곧장 “이런 말은 절대 하면 안된다”고 웃었다. 진행자들도 웃었다.
이것이 국내의 일부 언론과 팬들은 못마땅했는지, 한국 야구를 비하했다는 식으로 확대됐다. 심야에 애인과 있는데 팬이 사인을 해달라고 하는 등 사생활이 방해됐다는 얘기도 했다. 이 역시, 2016년 10월, 음주 운전으로 정규시즌 잔여경기와 포스트시즌 1경기 출장 정지 등의 징계를 받았던 사실과 맞물리면서 테임즈의 ‘자질 시비’로 확대됐다.
이런 얘기는, 반큰술 정도의 의미밖에 없다. 농담이 지나쳤다는 정도? 일부 팬들이 선수들의 일상에 지나치게 개입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정도? 그 정도로 마무리될 얘기다. 그가 언급한 ‘집단 흡연 문화’도 약간의 소동 정도다. 메이저리그는 7회 종료 후 간단하게 몸을 푸는 시간이 있다. 길지 않다. 우리는 5회가 끝나면 클리닝 타임이 있다. 테임즈에 의하면 이때 “선수와 코칭스태프가 모두 사라진다. 담배를 피우는 공간이 있는데, 선수들은 담배를 피우거나 이야기를 나눈다. 심판도 뛰어 들어가고 코치도 들어간다”. 선수들이, 경기 중에, 유니폼을 입은 채 단체로 모여서 흡연을 하는 것은, 흡연자의 입장에서 봐도, 볼썽사납다.
다만 그뿐이다. 이것이 한국 야구를 ‘비하’했다고 확대할 필요는 없다. 흡사 조국 전쟁에 나서는 듯한 표정으로 과묵하게 인터뷰를 하는 우리와 달리 떠들썩하게 웃어가며 ‘토크쇼’에 가깝게 인터뷰하는 미국의 미디어 문화의 차이 정도다.
바란다면, 우리 선수들도 인터뷰를 좀 더 다채롭고 활기차게 했으면 하는 것이고 팬들도 프로 선수들의 사생활을 존중해야 하며 담배도 가급적 줄였으면 하는 것이다. 테임즈는, 밀워키 유니폼을 입고 있으면서도 팔꿈치에는 자기 이름을 한글로 새긴 보호대를 차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한국 야구와 팬들에게 대한 애정을 알 수 있다.
여기 또 한 명의 선수가 있다. 프로축구 K리그 광주FC의 히카르도 바로스. 시즌 개막을 코앞에 두고 입단한 바로스는 안타깝게도 단 한 경기만 뛰고 큰 부상을 입어 4주간 재활 치료를 받았다. 그러는 중에 포르투갈 언론과 인터뷰를 했고 이것이 국내에 알려지면서 파문이 확산됐다.
인터뷰의 핵심은, 한국 축구 문화의 고질적인 문제들과 연관되어 있다. 예컨대 바로스는 ‘합숙 문화’를 언급하면서 “프로들이지만 어린아이들처럼 다 같이 살고 있다. 심지어 코치들도 그렇다”고 말했다. 신기하다거나 함께하고 싶다거나 하는 뜻은 아니다. 이해할 수 없으며 함께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또한 바로스는 “9시에 훈련장에 들어가서 7시에 훈련을 마친다. 심지어 훈련 시작 전 이른 아침 시간에도 몇몇 선수들은 운동을 한다”며 강도 높은 장시간의 훈련 효과를 의심했다. 그는 “한국 사람들은 일하기 위해 살고, 토요일엔 술을 마신다. 돈이 많지만, 쓸 줄 모르는 것 같다”고도 말했는데, 불과 한두 달 지내면서 알면 얼마나 안다고 그러느냐 하고 핀잔을 주고 싶지만, 어떤 점에서 그는 날카로운 직관으로 한국의 스포츠 문화와 한국 사회의 일상을 정확히 짚었다고 할 수 있다.
경기 속으로 들어가면 바로스의 시선은 더욱 날카로워진다. 그의 인터뷰에 따르면, 적어도 광주FC에서 토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감독이 “틀린 말을 해도, 반박의 기회”는 없다. 감독이 지시하면 “네, 감독님”이라는 말만 해야 한다. 실수라도 하면 혼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게 되고 심지어 “부모님에게 연락하겠다”는 말도 들어야 하며 그런 순간에 어린 선수는 “마치 아이처럼” 벌벌 떨었다고 말한다. 최연장자가 숟가락을 들기 전에는 절대 먼저 밥을 먹어선 안된다는 정도는 차라리 애교에 가깝다. 바로스는 “그저 뛰고, 뛰고, 뛰느라 죽을 뻔”했으며 결국 첫 경기 중에 부상을 입고 말았다.
그 후 어떻게 되었는가. 구단 입장에서는, 거액을 들여 영입한 선수가 제 기량을 못 펼치고 겨우 한 경기 뛰고 부상을 입은 것이 맘에 차지 않을 수도 있다. 바로스는 겨우 50분 남짓 뛰고 끝이었다. 그런 후에는, 포르투갈 언론에 구단과 감독에 대한 ‘불만’을 여과 없이 내보였다. 이 점이 아마도 구단이 결정을 내린 원인이었을 것이다. 광주FC는 유례없이 신속하게 계약을 해지했고, 그는 포르투갈로 돌아갔다. 다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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