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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후보자 추천이 끝났다. 복기해 보자. 각 당의 공천전략 목표는 무엇이었고 그것을 얼마나 달성했는가?

새누리당의 목표는 ‘안정’이었다. 야당이 분열되어 있는 상황에서, 여당은 절차 관리를 안정적으로 잘하면 승리는 따놓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상향식 국민경선은 그러한 목표를 실현해 줄 수 있는 좋은 수단이었다. 더민주의 목표는 과감한 ‘교체’였다. 선거마다 패배를 거듭한 정당으로서 뭔가 변화를 보여주어야 할 절실한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물갈이를 할 수 있는 컷오프 시스템을 제도화했다. 국민의당의 목표는 무엇보다 ‘혁신’이었다. 양대 정당의 기득권과 싸우겠다는 세력으로서 기존 정치에 물들지 않은 새로운 인물들을 내세워야 했다.

이런 목표를 가지고 추진되었던 세 당의 공천과정은 어떻게 되었나? 모두 웃음거리로 마무리되었다. 새누리당의 공천과정은 찍어내기, 꽂아 넣기 등으로 처음부터 어수선하더니 끝내는 옥새 파동이라는 전대미문의 자해 소동으로 정리되었다. 새누리당의 공천은 박 대통령의, 박 대통령에 의한, 박 대통령을 위한 것이었다. 집권 초기 당내 분파 투쟁의 실패를 뒤집기 위한 박 대통령의 자기 사람 심기가 공천 과정의 처음과 끝이었다. 그 결과 박 대통령의 사람들이 승리는 했으나 적어도 공천이 진행되는 과정에서만큼은 새누리당은 온전한 정당이 아니었다.

더민주도 시스템 공천을 한다고 자랑했으나 공천과정은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정무적 판단으로 얼룩이 졌다. 공천과정에서 더민주는 정당의 역사에 길이 남을 일을 했다. 선출되지 않은 사람에게 정당의 가장 중요한 결정 권력인 공천권을 아무 조건 없이, 전부 주었다. 그뿐 아니다. 그 선출되지 않은 사람은 정당의 정체성을 정의하는 권한까지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실로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믿기 어려운 일들이 정통야당을 자처하는 더민주에 일어나고 있었다.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된 사연이야 다 아는 일이지만 이 상황에서만큼은 더민주 역시 이것을 과연 정당이라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게 했다.


더민주 비례대표 선정 결과_경향DB


국민의당은 새누리당과 더민주의 이분법적 대결 구도를 넘어서는 제3세력이 되겠다고 하였으므로 당연히 새로운 인물들로 국민들을 감동시킬 것 같았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국민의당은 실제로는 혁신이 아니라 세력화를 추구했다. 이런저런 명망가들을 모으는 데 급급했고 현역 국회의원이면 뛰어나와 환영했다. 새로 만들어진 정당이니 책임감이나 안정감을 보여주어야 했기 때문에 그런 일들이 어쩔 수 없었다 하더라도 국민의당의 공천과정이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했던 것은 분명했다. 공천을 받은 사람들 사이의 동질성도 문제가 있어 보였기 때문에 이 당 역시 온전해 보이지 않았다.

정당이란 비슷한 이념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집단이고 공천과 같은 당내 의사결정은 민주적이어야 한다는 헌법의 가치가 이번 공천과정에서는 무색해져 버렸다. 이런 정당들이 다수당이 되고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여 집권하게 되면 나라가 어떻게 될까 걱정이 든다. 권력자로부터 자율성을 가지고 있지 못한 정당, 내부적으로 민주적 의사결정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정당, 정체성이 분명하지 않은 정당이 국가권력을 가지게 된다면 그것은 재앙이 아니겠는가?

공천과정이 이렇게 되었으므로 앞으로 진행될 선거운동 과정도 불을 보듯 뻔하다. 비전 대결은 사라지고 밑도 끝도 없이 치고받는 선거가 될 가능성이 많다. 이런 혼란들은 과도기적인 것이고 선거가 끝나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까? 새누리당은 대통령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어 국민들에게 귀를 기울이고, 더민주는 의사결정을 민주화하여 패권적 당 운영이 없어지고, 국민의당은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서 정당구도를 재편할 수 있을까? 비관적이다. 이번 공천과정에서 우리나라 정당정치는 십여년 전으로 되돌아갔다고 한다. 제왕적 총재가 지배하고, 패권적 분파들이 의사결정을 좌지우지하고, 구성원들의 가치는 잡탕이던 시절로 되돌아간 것 같다는 평가다. 이것이 제자리로 돌아가려면 얼마나 긴 세월이 필요할지 모른다.

상황이 이 지경까지 이르렀는데 또 이런 말을 해야 하는 현실이 부끄럽다. “유권자 여러분, 그래도 우리가 투표에 참가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믿을 것은 유권자의 힘입니다. 선거란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덜 나쁜 것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투표에 참가해서 정치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우리가 투표장에 가지 않으면 가장 나쁜 것에 의해 지배를 받습니다.” 여당도 야당도 보기가 싫어서 투표장에 가지 않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자신의 한 표가 어떤 변화의 힘이 될 것이라고 하는 믿음, 즉 정치적 효능감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


김태일 |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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