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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은 무능하고, 안철수는 이기적이어서 헤어졌다. 두 사람의 지도력이 신통치 않아서 야권이 분열됐다.” 틀린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이런 행위론적 설명보다는 “지지자 지형의 구조적 특성이 변화해 그들을 하나의 그릇에 담기 힘들어서 나누어진 것이다”라는 구조론적 설명이 더 그럴듯하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역사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나라의 야당은 자신이 대표하고자 하는 가치의 범위가 너무 넓어서 어려움을 겪었다. 오른쪽으로 보수여당이 대표하는 가치를 제외하고, 왼쪽으로 진보정당이 대표하는 가치를 제외한 나머지 모두를 대표하는 형국이었다. 그래서 ‘나머지 정당’이라는 별명도 얻고 있었다.

이렇게 넓은 범위의 가치를 하나의 그릇에 담으려고 하다 보니 내부는 항상 시끄러웠다. 정체성을 어떻게 정의하느냐를 두고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당이 방향을 오른쪽으로 틀면 왼쪽 지지자들이 떨어져 나가고, 왼쪽으로 돌면 오른쪽 지지자들이 이탈했다. 그래서 지지율은 항상 초라했다. 이럴 경우는 헤어지는 것이 더 행복하다는 설명이 구조론의 주장이었다. 문재인과 안철수가 헤어진 직후, 지지율이 동반 상승하고 각각의 지지기반이 다시 활성화돼 이런 설명을 뒷받침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두 지도자가 각자자신의 지지기반을 동원하고 필요할 때 손을 잡는 것이 야권 전체를 위해서도 좋을 것이라는 전망과 제언이 나오기도 했다. 문재인은 진보적 지지자들을 동원해내고, 안철수는 중도적 기반을 이끌어내면서 야권 전체를 역동적으로 만들자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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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지금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하는 일을 보면 걱정이 조금씩 생긴다. 이럴 거면 왜 헤어졌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북한체제 궤멸과 전통야당의 정체성이라고 할 햇볕정책의 한계를 거침없이 천명하는 반면, 국민의당은 개성공단 전면 폐쇄와 사드 배치에 반대 입장을 결연히 밝히고 있다. 입장이 단단히 뒤바뀐 느낌이다. 그뿐 아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은 참여정부 시절 한·미 FTA 추진 책임을 맡았던 김현종 본부장을 영입했다. 문득 2007년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해 3월이었던 것 같다.열린우리당 원내대표와 법무부 장관을 지냈던 천정배 의원, 열린우리당 의장과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냈던 김근태 의원, 그리고 열정의 초선 임종인 의원이 국회의사당 건물 안팎에서 단식 농성을 하던 장면이 생각났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김현종 본부장을 앞세워 추진하던 한·미 FTA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그것이 가져올 양극화와 서민생활 파탄을 걱정해 단식을 시작한 것이었다. 임종인 의원은 며칠 후 단식으로 인한 장출혈로 쓰러져 구급차에 실려 갔고, 천정배 의원은 무려 25일간의 단식을 계속해 보는 이의 마음을 졸였다.

세 사람의 단식이 한·미 FTA 체결을 저지하지는 못했지만, 그 후 2011년 가을, 야당 국회의원들은 국회 본관 계단에서 규탄대회를 열고 한·미 FTA 반대를 당론으로 채택했다.

목숨을 건 단식을 했던 천정배 의원과 임종인 전 의원은 지금 국민의당으로 가 있고 한·미 FTA 추진의 선봉이었던 김현종 본부장은 더불어민주당으로 들어갔다. 야당의 기존 당론도 한·미 FTA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고, 그것이 가져올 심각한 문제들을 차단하자는 것이므로 천정배 의원과 김현종 본부장과의 차이는 심각한 게 아니라고 할 수도 있으나 그렇다고 무시할 수 있는 차이는 아닌 것 같다. 따라서 양쪽의 엇갈린 행보는 자연스럽지 못하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의 엇갈린 행보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 것 같아 걱정이다. 이런 식으로 가면 뒤죽박죽 정당이 될 가능성이 많다. 그렇게 되면 ‘이럴 거면 왜 헤어졌나?’라는 비판에 직면할 것이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해야 할 일은 각자의 다른 지지자와 정당이 적절한 정체성을 기초로 재정렬(realignment)하는 것이다. 그래서 잡탕정당이라는 오명을 벗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문재인과 안철수의 이별이 정치발전의 역사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다. 지금 두 당의 모습을 보면, 선거 승리를 위한 전술적 필요 때문에 마구잡이로 영입을 하고 그 결과 정당의 가치와 비전이 모호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두 정당은 자신이 대표하고자 하는 가치를 분명히 하고 거기에 맞는 정치인들과 지지자들이 서로 결합하도록 틀을 짜기 바란다. 두 정당은 이별을 ‘재정렬’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왜 헤어졌느냐는 조롱을 받게 될 것이다.


김태일 |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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