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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지역에서 교수 노릇을 하면서 김대중 대통령의 ‘동진’정책과 노무현 대통령의 ‘전국정당화’ 정책을 지켜보았다. 동진정책은 밀라노프로젝트에서 보았듯이, 예산을 내세우면서 이 지역의 상층 토호들을 공략하였다. 그래서 이 지역 민주개혁 세력들이 적잖게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전국정당화 정책은 자리를 많이 만들어서 이 지역 출신 인사들을 국정운영에 적극 등용하였다. 그러나 참여정부가 끝난 후에도 이 지역 정치에 계속 남아 활동하고 있는 지도자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지역주의 극복을 필생의 과업으로 삼았던 두 대통령의 정책은 일정한 성과가 있었으나 이런 한계도 있었다. 두 정책 모두 이 지역에서 ‘정당’ 조직과 인재를 육성하지 않고 청와대의 힘으로 밀어붙이기만 한 전략이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완장을 찬 사람들이 ‘민원해결사’ 노릇을 하면서 ‘특수이해와 충성의 교환’을 통해 지지기반을 만들려고 했는데, 권력을 잃자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갔다.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문제는 지금이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정책에는 한계가 있었으나 나름 ‘전략’을 가진 접근이었다. 그러나 그 이후는 ‘전략’은커녕 문제의식조차 없어 보인다. 가끔씩 이 지역을 다녀가는 정치지도자들이 지역주의 극복을 위한 정치적 비전을 제시하기도 했으나 그것이 ‘전당대회용 사탕’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더불어민주당 홍의락 의원이 25일 국회에서 탈당 선언 기자회견을 하는 도중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있다._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서 지역주의와 힘겹게 대면하고 있던 홍의락을 공천 배제한 것은 ‘아무런 생각이 없는’ 즉 ‘전략이 없는’ 더불어민주당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홍의락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지역주의의 아성을 공략하고 있는 김부겸은 그것이 ‘아군을 쏜 오인사격’이며, ‘뒤에서 얼음 칼을 꽂는 격’이라고 분노했다. 홍의락은 아예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지난 4년 동안 자신의 활동에 대한 ‘아군’의 평가가 ‘집에나 가라’는 말에 다리가 완전히 풀렸다. 그에게는 좌절과 모멸이라는 말조차 사치스러운 것이다. 더 이상 서 있을 힘조차 없기 때문이다. 4년 전, 그는 국회의원 배지를 달자마자 보따리를 싸들고 더불어민주당의 최전선 대구로 내려왔다.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었다. 지역주의 문제에 ‘아무런 생각이 없는’ 정당에서 최전방 소대장을 자임한 것이었다.

그는 아군의 총질이 ‘오인사격’이 아니라 차라리 ‘조준사격’이었으면 더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까지 하는 것 같다. 더불어민주당이 자신을 ‘집으로 보내는’ 결정이 어떤 분명한 전략적 의도와 목표를 가지고 한 일이라면 ‘알았다’ 하고 집으로 가겠는데 그게 아니니 더 갑갑한 노릇이라는 것이다. 어처구니없는 당에 대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사실 걱정은 국회의원의 활동을 계량 평가하여 그것으로 일부를 공천 배제한다는 결정을 할 때부터 있었다. 이 제도를 만든 분들의 최대 관심은 공천제도의 ‘공정성’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계파 패권주의의 아픈 상처를 가지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으로서는 공정한 공천시스템을 만드는 일이 가장 큰 문제의식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적실성이 있느냐에 대한 고민은 깊이 하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더불어민주당이 이 점수를 공천배제 판단의 ‘자료’로 삼았으면 모르겠으나 이 점수를 기계적으로 적용하여 컷오프를 하면서 사고는 예상되었다. 이것 역시 공정성 강박을 가지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의 트라우마가 낳은 결정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치적 판단을 중지해버린 정치집단으로서 직무유기를 면책받을 것 같지는 않다. 홍의락을 컷오프하겠다는 결정을 할 때, 그가 지금 어디에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가를 생각해야 했을 것이다. 홍의락에게 컷오프를 알려준 분의 말씀이 ‘공천배제 결정에 대한 이의제기는 부질없다. 합산은 정확했다’라고 했단다. 이거야말로 세상 물정 모르는 ‘양반집 도련님’의 말씀이 아니고 무엇인가?

더 심각한 걱정거리는 더불어민주당에 대구·경북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가지고 있느냐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에 대구·경북은 사석(捨石)인가, 아니면 사석(死石)인가? 바둑에서 큰 집을 얻기 위해 버리는 돌인가, 의미 없이 죽이는 돌인가? 홍의락을 쓰러뜨리고 김부겸을 망연자실하게 만들어놓은 것이 ‘잘못’이라고 하면서도 지난 두 주일 동안 아무런 조치도 없이 내버려두고 있는 정말 생각 없는 ‘아군’ 더불어민주당에 드리는 질문이다. 김대중의 동진정책, 노무현의 전국정당화 정책의 발끝도 못 따라가는 생각 없는 ‘아군’에게 정중하게 드리는 질문이다.


김태일 |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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