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최경환 의원이 대구의 한 출마자 선거사무소 개소식에서 유승민 의원을 격하게 비판했다. ‘대통령의 뒷다리를 잡았다’는 것이다. 그는 종주먹을 들이대며 이 지역 국회의원들을 싸잡아 야단쳤다. ‘대통령이 어려울 때 뭘 하고 있었느냐?’ 유승민 의원이 한 일이 대통령의 뒷다리를 잡은 것인지, 아니면 대통령이 잘되라고 한 것인지는 따져볼 일이지만, 최경환 의원 자신은 이 지역의 민심을 파악하는데 헛다리를 짚은 것 같다. 최 의원은 이 지역 국회의원들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을 부추기려 했던 모양인데, 지역 국회의원들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은 대통령을 왜 잘 모시지 못했느냐는 것이 아니라, 지역 살림살이를 왜 이 꼴로 만들어놓았느냐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을 배출한 이 도시의 지역총생산은 꼴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수도권으로의 인구 유출이 전국에서 최상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수많은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아 이 도시를 떠나고 있다는 사실을 최 의원이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다행히 최근 젊은 시장이 나타나 침체한 도시의 분위기를 바꾸려 하고는 있다. 그러나 이 도시에 드리워진 잿빛 그림자를 걷어내는 일은 만만치 않아 보인다. 사정이 이럴진대 최 의원은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 타령이나 하면서 ‘진박’이 필요하다 외치고 있으니 시민들로서는 그의 말이 고까울 수밖에 없다.

최 의원이 ‘지역 사정이 이렇게 어려운 것에 책임감을 느낀다. 함께 이를 이겨나가자’라고 하면서 ‘마침 대통령과 특별히 가까운 사람들이 있으니 이들이 지역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라고 넌지시 ‘진박’을 추천했더라면 대구시민들은 자존심이라도 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다짜고짜 대통령 이름을 들먹이며 윽박지르듯이 ‘진박’을 추천하니 이런 교만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 지역여론이다.


새누리당 최경환 의원이 지난 30일 대구 북구 복현동 하춘수 예비후보(대구 북구갑) 선거사무소 개소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_연합뉴스


대통령을 보위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말도 믿기 어렵다는 것이 시민들 사이의 중론이다. 정말 박근혜 대통령의 집권 후반기를 걱정하는 것이라면 ‘진박’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은 이른바 험지에 출마하여 새누리당의 의석을 늘리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공천만 받으면 땅 짚고 헤엄쳐도 당선이 되는 곳에 와서 꽃가마를 타려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 ‘진박’의 진의에 대한 의심이다. 과연 대통령을 위한다고 하면서 배지나 달려는 사람들이 아니냐는 질문이다.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을 들먹이며 저렇듯 으름장을 놓는 최경환 의원은 2008년 ‘친박연대’와 2016년 ‘진박연대’의 차이를 간과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헛다리를 짚고 있는 것이다. 2008 친박연대는 소위 공천학살을 당하고 어려운 처지에 있던 정치인 박근혜에 대한 연민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살아서 돌아오세요’라고 한 애절한 메시지는 그래서 힘이 있었다. 그것이 2008 친박연대가 뜻밖의 성과를 거둔 이유다.

그런데 2016 ‘진박연대’는 무시무시한 대통령의 힘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대통령은 자신에게 고분고분하지 않은 유승민 의원을 배신자로 단죄했고, 곧이어 자신에게 충성스러운 사람들을 진실한 사람이라고 호명했다. ‘배신자-진실한 사람’이라는 인지심리학적 틀은 대통령의 위력으로 만들어졌다. 대통령이 대구를 방문하면서 이 지역 국회의원들을 근처에 오지도 못하게 이 틀은 확고해졌다. 그러나 이 틀은 인지심리학적 소구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왜냐하면 ‘배신자-진실한 사람’이라는 프레임은 사실상 ‘공포의 동원’이며, 우격다짐이기 때문이다. 2008 친박연대의 힘이 간절한 호소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면, 2016 진박연대는 대통령의 권력으로 내리누르는 것이다. 2016 진박연대가 성공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누가 진실한 사람인지 대통령이 인증서를 써 줄 수도 없으니 누가 진박인지를 확인할 길도 없는 터라 급기야는 ‘진박 감별사’를 자임하는 사람까지 나타났다. 그 순간 ‘진박연대’는 대구 지역을 넘어 전국적 조롱거리가 되고 말았다. 어떤 지역에서는 특명을 받았다는 ‘진박’이 나중에 나타난 ‘진박’에게 밀려 다른 지역으로 날아간 일도 있었다. 이곳저곳에서 온갖 ‘진박’이 날아든다는 새타령 패러디까지 나돌고 있다. 2016 ‘진박연대’ 소동은 소극(笑劇)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 그리고 이것으로 가장 체면이 구겨질 이는 박 대통령이다. 왜냐하면 이 프레임을 만들고 이 소동을 자초한 분이 박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진박연대’ 소동으로 대통령이 국민의 대통령이 아니라 새누리당의, 아니 새누리당 한 분파의 지도자로 비칠까 걱정이다.


김태일 |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