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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 준비를 하던 딸이 묻는다. “이동하며 읽을 만한 얇은 책이 있을까?” 책을 권할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책장을 살피지만, 막상 찾으면 눈에 띄지 않는 법이다. 그때 지옥철에 시달리는 회사원처럼 오랜 시간 다른 책 사이에 끼여 있던 책이 눈에 들어왔다. 프랑스 철학자 핑켈크로트의 <사랑의 지혜>라는 책이다. 본문이 200쪽이 안된다. 제목은 말랑말랑해도 깊이 있는 에세이였는데, 좋았다는 느낌 외에 많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레비나스라는 철학자의 사상을 주로 다룬 책이었고, ‘존재, 그것은 갈증을 느끼지 않은 채 물을 마시는 것’이라는 사르트르의 멋진 표현을 처음 알려준 책이기도 했다. 이 책을 집어든 이유는 이 책에 인용된 어느 소설의 줄거리가 준 깊은 인상 때문이었다.

존 마셔라는 남자는 자신이 전대미문의 사건에 선택되었다는 예감에 사로잡혀 있다. 하지만 그 사건이 어떤 것인지는 전혀 알지 못한다. 그 사건이 ‘정글에 웅크린 짐승’처럼 그를 기다리다가 예고 없이 등장하여, 그의 모든 삶을 뒤흔들 거라는 막연한 추측만을 한다. 그는 전력을 다해 사건에 대비한다. 어느 날 존의 범상치 않은 비밀을 알게 된 메리 버트램이라는 여자가 거대한 사건의 대비에 동참한다. 그러나 둘이 특별한 친분을 유지하며 몇 년을 기다려도 사건은 일어나지 않는다. 지친 메리는 마침내 병들어 죽는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메리가 죽고 많은 시간이 흐른 어느 날, 그녀의 무덤을 방문한 존은 근처의 다른 무덤을 찾은 남자와 마주친다. 이때 존은 우연치 않게 남자의 고통에 찬 얼굴을 보다가, 한 여인을 사랑했다가 상실한다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것인가를 알게 된다. 존은 동시에 깨닫는다. 자신이 일생일대의 사건을 메리와 함께 기다렸건만, 실상 그가 기다렸던 사건이라는 것은 ‘그녀를 만나고 사랑하는 것’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이 그것을 깨닫지 못하였기에 그 사건은 끝내 일어나지 않았고, 인생을 낭비하고 말았다는 것을.

다음날 나는 그 중편을 찾아서 직접 읽기로 마음먹었다. 단서는 ‘헨리 제임스’라는 저자의 이름, 존과 메리라는 주인공들의 이름 그리고 줄거리였다. 이름들이 죄다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영수, 경숙 같은 흔한 이름들이라 난감했지만, 인터넷서핑으로 원자폭탄 제조법도 알 수 있는 세상이다.

우선 김영수, 아니 헨리 제임스는 예전에 읽으려다 미룬 소설 <나사의 회전>을 쓴 작가로서 한 세기 전 영문학에 엄청난 족적을 남겼다는 것을 확인했다. 성과 이름이 모두 흔하다 보니 도무지 각인이 안되었던 것이다. 이어진 인터넷서핑 결과, 그의 소설 중 <정글의 짐승>이라는 중편이 내가 찾는 소설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이미 한글로 번역되어 그의 소설집에 수록되어 있었고, 마침 전자책도 있었다. 나는 해 질 녘 소파에 누워 읽기 시작했다. 소설의 존재를 알고 나서 십년 이상 흐른 뒤의 독서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나는 장편 아닌 소설을 보면서는 드물게 눈물 몇 방울을 떨구었다.

직접 읽은 중편은 <사랑의 지혜>에 인용된 것보다 미묘했다. 메리는 병들어 죽기 얼마 전 존과 대화를 한다. 내가 소설을 읽으며 받아들인 바로는, 메리는 일어날 비극의 전모를 눈치채고 있었다. 미지의 사건이라는 예감에 사로잡힌 존이 ‘사랑’이라는 위대한 사건을 회피했다는 것을. 존을 사랑했던 메리는 돌이킬 수 없는 시점에서 존이 그것을 깨닫는 것은 그에게 너무 큰 불행이기에 끝내 말하지 않는다. 나아가 메리는 존이 그것을 끝내 깨닫지 못하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더욱 비극적일 수도 있다는 것조차 느낀 것으로 보였다. 그토록 복잡한 심경을 안고 죽어간 메리는 얼마나 슬펐을까. 메리의 배려에도 불구하고, 존은 낯선 남자의 얼굴에 나타난 사랑의 고통을 통해 자신에게 예정된 전대미문의 ‘사건’, 또는 ‘일어나지 않은 사건’의 실체를 알고 전율한다.

삶에서 중요한 사건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어떤 사건들을 또는 어떤 사람들을 선택하고 포기하는가? 이 소설은 몸과 마음을 다해 앞날을 준비했건만, 결국 지나친 사려와 준비가 비극을 초래하고 말았다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작가는 ‘본의 아니게 회피된 사랑’의 안타까움만을 말한 것일까? 아니,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어떤 것을 어리석음으로 잃어버린 모든 인생에 대해 말했으리라.

우리는 살면서 자주 부름을 받는다. 성공의 야심, 권력의 중력, 유명세의 유혹 따위가 그것이다. 그러한 부름에는 세상 사람들이 앞다퉈 칭송하는 것들도 포함될 수 있다. 역사의 요청, 인민의 요구, 예술적 영감, 사랑의 묘약만큼 강하고 매력적인 부름이 있을까? 하지만 자신이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하는 것이 사실은 덫이다. 당신이 가진 최고의 재능이 당신의 생을 가장 낭비시킨다. 인생의 좌우명이 악마의 주술이고, 신의 목소리가 환청일 뿐이다. 그 아이러니를 어쩔 것인가.

그런데 자신이 기다리는 위대한 사건이 ‘지금 여기의 사랑 또는 그 어떤 무엇’임을 간파하고, 예를 들어 메리와 사랑에 빠지면 문제는 해결되는가? 메리를 사랑하며 살아가는 삶을 선택함으로써 메리의 무덤 앞에서 통곡할 위험은 피했다. 그러나 혹시 그 삶은 안전하고 알뜰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빛이 바래고 씁쓸해지는 것은 아닐까?

레비나스가 말했듯, “진정한 삶은 여기에 부재한다. 그러나 우리는 세계 안에 있다.” 이때 우리는 자신의 상상이 만든 허구에 불과한 진정한 삶을 찾으려 몸부림친다. 그런데 거짓된 ‘진정한 삶’에 현혹되길 거부하며, 지금 여기의 차선인 삶을 정성껏 가꿔 가면 문제가 해결되는가?

어떠한 선택에도 기회와 위험이 있다. 안타깝게도 그사이에서 지혜로운 선택을 할 능력은 대부분의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나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첫걸음은 그러한 선택의 역설과 인생의 아이러니를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조광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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