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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1990년대 젊은 변호사 시절에는 ‘표현의 자유’를 적극적으로 옹호할 일이 자주 있었다. 권위주의 국가의 잔재가 짙게 남아 있었고, ‘정치적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악법과 관행이 넘쳐났다. 리버럴한 성향의 변호사라면 정부에 의해 탄압당하는 ‘표현의 자유’를 방어하는 것을 당연한 의무로 받아들였다. 많은 진보성향의 서적이 정체 모를 적을 이롭게 하는 표현물로 처벌받았으며, 정부를 비판하는 예술가들도 자주 탄압을 받았다. 그 와중에 성적 표현 수위가 높은 표현물도 그 예술적 가치와 무관하게 법정에 서야 했다. 오랜 기간 계속된 그러한 ‘표현의 자유’에 대한 탄압은 여러 차례의 헌법재판, 정부의 민주화 그리고 사회의식의 변화와 함께 시들해졌다. 그 시기는 인터넷이 세상에 등장해 소통의 방식을 혁명적으로 바꾸던 시기와 겹친다.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매체를 둘러싸고 ‘표현의 자유’ 논쟁이 뜨거워졌을 때, ‘인터넷실명제’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의 비범죄화’ 등이 논란이 되었다. ‘표현의 자유’가 ‘정치적 자유’의 초석이고, ‘자유주의’의 핵심적 가치라고 공부했던 리버럴한 변호사들은 ‘인터넷실명제’에 반대하고, ‘명예훼손죄의 비범죄화’에 찬성하는 경향을 보였다. 나 또한 그러했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이 시대 온라인 공간에서는 어떤 무참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가. 민주주의의 ‘절대반지’로 기대되던 온라인이 아이러니하게도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전쟁터’로 전락했다. 악플러가 문제된 것은 오래전 일이나, 여전히 해결될 기미가 없다. 익명에 숨은 악플러만이 문제가 아니다. 이름이 널리 알려진 사람들도 명예훼손의 경계를 넘나들며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대가로 경제적 이익을 챙긴다. 도저히 정상적인 언론으로 보기 어려운 유사 언론이 ‘언론의 자유’ 아래 기생하며 음습한 돈벌이를 한다. ‘표현의 자유’를 빙자한 숱한 모욕과 명예훼손 그리고 프라이버시의 침해가 대중의 표피적 관심과 화학작용을 일으키며 광속으로 전파되는데, 막상 피해자들은 유효한 방어의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일반인에게도 명예와 프라이버시는 소중하지만, 직업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대중에게 노출되어 사는 게 운명인 사람들은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다. 그들이 공공연히 비판받아 마땅한 경우가 있고, 그 비판이 사회규범을 확립하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는 것은 인정된다. 대중의 지지와 환호를 자신의 자산으로 삼아 살아가기 때문에 스스로 감수해야 하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근거 없는 명예훼손을 당하는 것이나 개인적 프라이버시가 침해되는 것이 언제까지 방치되어야 하는가.

현재 마련된 구제절차는 명예훼손이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각종 기사나 온라인 글들을 처리하기에는 너무 느리고 충분하지 못해 피해자들을 다시 절망하게 만든다. 언론중재위원회에 조정신청을 할 수도 있고 법원에 가처분신청을 할 수도 있지만 피해자의 마음같이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포털사이트에 임시의 게시중단조치를 신청할 수 있으나, 상대방이 이의를 제기하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다시 지루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영향력 높은 유튜브는 피해구제에 대해 소극적이고 게으른 절차만을 제공하고 있다. 형사상 고소를 하면 동종의 사건이 너무 많아 수사기관도 인간인지라 귀찮아한다. 가해자의 실명을 모르는 때에는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신원을 확인해야 하는데, 그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그나마 사회적 경험이 풍부하거나 전문가를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이 있는 사람은 나은 편인데,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피해의 구제가 요원하다.

직업상 그런 모습을 자주 보다 보니, 이제는 인터넷실명제나 그에 준하는 제도에 점점 우호적이 된다. 명예훼손죄의 비형사화에 대해서는 조심스럽게 된다. 고소를 하면 그나마 벌금형이라도 받게 해서 이른바 전과자로 만들 수 있는데, 겨우 몇 백 만원을 받는 것에 그칠 민사소송을 피해자에게 권유하기는 난처하다.

‘표현의 자유’는 소중하다. 언제 이 사회의 ‘정치적 자유’가 뒷걸음칠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정치적 자유’를 위해 투쟁하던 인쇄매체 시대의 고전적 ‘표현의 자유’론으로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넘어 인공지능(AI)이 현실화되는 혁명적 변화의 시대를 헤쳐 나갈 수 없다. 근거 없는 명예훼손과 프라이버시 침해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좌절하고 사회생활을 포기했는가. 더러는 그에게 일부 잘못이 있더라도, 잘못에 비해 매우 비대칭적인 불이익을 받음으로써 세상을 버린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모두가 그 문제점을 아는데, 왜 시스템은 이토록 느리게 진화되는가.

이제는 정치인이든, 유명인이든, 세상에 자신을 다소라도 드러내고 싶은 개인이든, 악의적인 명예훼손과 프라이버시 침해에 대한 대응 전략과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그것이 없으면 순식간에 퇴장을 당하거나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부터 각오해야 한다. 이 말은 제도가 이들을 충분히 보호해주지 못하기 때문에 스스로 위기관리체계와 법률적 중무장이라는 자구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뜻이다. 다른 말로 하면, 그러한 시스템을 스스로 갖출 역량과 자원이 없는 사람이 공적인 영역에 나선다는 것은 심한 경우 자살행위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유능한 인물들이 알게 모르게 공적인 활동을 기피하고 개인적 삶을 추구하고 있다. 그것은 이 사회의 큰 손실이다.

우리 사회가 올해 보여준 모습이 바로 그런 것이 아니었는가. 새로운 미디어와 신기술에 맞는 법률이론을 정비하고 해결책을 강구해야 하며, 그것을 신속하고 강력하게 입법과 행정에 반영해야 한다. 그것을 정치와 행정이 아니면 누가 할 것인가. 이미 많이 늦었다. 이 순간에도 익명에 숨어 추악한 욕망을 채우는 사람들과 악명을 떨치며 돈벌이에 나서는 사람들의 저열한 공격에 수많은 사람들이 괴로워하고 있다.

<조광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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