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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송년회로 바쁘다던데, 연말 약속을 잡을 때마다 ‘집 보러 가야 한다’는 몇몇 친구의 사정에 자꾸만 약속이 미뤄진다. 또래 친구 무리에서 일주일 동안 3명이나 집을 계약했다. 단체카톡방에 한동안 부동산 관련 정보만 올라왔다. 자취했던 경험을 되살려 주워들은 정보를 나눴다. 유튜브, 블로그를 공유하기도 했다.

알아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청년전세자금 대출은 얼마나 받을 수 있는지, 다세대주택은 무엇이고 다가구주택은 무엇인지, 융자는 또 무엇인지. 글을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끝까지 이해 못한다. 바이럴 광고도 넘쳐나는 시대다. 결국 믿을 것은 내가 만나고 교류해온 ‘믿을 만한’ 사람이다. 어떤 집을 피할지, 우리 법은 얼마나 세입자를 호구로 보는지, 2년 뒤 피눈물 쏟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줄 것은 역시 사람밖에 없다.

그런 ‘믿을 만한’ 사람을 아주 오래도록 갖고 싶었다. 나의 경제능력, 성별 정체성, 정치적 성향 등에 대한 평가 없이 나를 나로서 온전히 알아주는 공동체에 소속되고 싶었다. 대학생 시절 부지런히 여러 동아리나 모임을 기웃거리며 공동체를 찾아다녔지만 쉽지 않았다. 일터도 다르지 않았다. 소속감이라는 열매를 먹기 위해선 약자와 타자에 대한 무시, 혐오라는 독주를 매일 마셔야 했다.

어쩌면 내가 말하는 소속감이라는 것이 모호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동아리든 모임이든, 같이 하는 것만으로 된 것 아니냐고. 나의 경험으로 말하자면 아니었다. 무시와 혐오가 가득한 곳에서 나는 내 안의 당사자성을 끊임없이 죽여야 했다. 동기에게 외모 평가를 당해도 ‘내가 좀 뚱뚱하긴 하니까’, 1년 반째 취업준비를 해도 ‘난 유학도 못 가봤고 스펙도 모자라니까’, 내 이름으로 된 집 한 채 없는 건 ‘돈이 없으니까’. 간헐적으로 올라오는 설움을 개인의 일로 치환하며 한없이 웅크려야 했다. 내 삶이 이상하게만 보이는 곳은 나에게 공동체일 수 없었다.

결국 내가 선택한 것은 삶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었다. 은근한 성희롱에 한목소리로 분노하고, 새로운 가정의 형태를 고민하며, 집 한 채 못 사는 대가의 노동에 소진되지 않으려 어깨동무하는 동료. 사소할지 모르는 나만의 고민이 모두의 주제가 될 때, 그 고민이 나만의 고민이 아님을 알았을 때. 나는 그때 비로소 소속감을 느꼈다. 그 소속감을 안고서야 더 좋은 내일을 희망할 수 있었다.

어쩌다 보니 활동가로 살지만, 사실 세상을 바꾸겠다는 거대한 꿈보다 주변을 안전한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는 목표가 더 크다. 작은 초가 주변을 밝히며 다음 초에 불을 붙이는 ‘촛불 하나’의 기적을 믿어서다. 내가 활동하는 단체인 청년참여연대가 만드는 모든 관계에서 생기는 다음 이야기가 궁금한 이유다. 이 공동체 안에서, 누군가의 불안이 변화의 희망이 되는 순간을 매일 마주하고 있다.

고민을 가능성으로 만들어 낼 동료를 찾고 있으신지. 그 누구보다 연대의 중요성을 가득 느끼며 연말을 맞이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청년참여연대의 ‘청년공익활동가학교’를 추천하고 싶다. 내년 1월, 6주 동안 삶과 사회에 관심 많은 청년들이 참여연대 지하 1층에 모여 강연, 토론, 탐방을 통해 주제를 정하고 캠페인까지 한다. 불안에 흔들리는 겨울, 우리 같이 힘껏 세상을 마주해보자.

<조희원 | 청년참여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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