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사고전서>는 만리장성 같은 책이라, 도서관이 아니면 소장할 수 없다. 그런데 도서관에 소장된 것이라 해도 이용하기는 무척 어렵다. 왜냐? 어떤 작가의 어떤 책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색인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이 색인은 한자의 배열 방법이 한국과 달라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이용하기가 너무나 어렵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가? 이런 어려움을 겪는 사람은 나 하나만이 아니다.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많으면 어떤 사람이 해결책을 낸다.

김쟁원이란 분은 지루하고 힘든 과정을 거쳐 <사고전서 한글색인집>을 엮는다. 이 책을 나침반 삼아 저 만리장성에서 특정한 벽돌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다만 <사고전서>가 디지털화되고 나서는 이 색인집의 위력도 사실 거의 사라졌지만 말이다. 그런데 정조 이후 즉 18세기 후기 이후 조선 사람들은 <사고전서>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 수입이 되지 않았으니, 아예 몰랐던 것인가? 이 물음은 <사고전서>의 이용에 편의를 제공하는 책과 또 관계가 있다.

정조 때 그 존재가 알려진 <사고전서>는 조선조 말까지 수입되지 않았다. 물론 <사고전서> 중 활자화된 극히 일부의 책은 수입되었지만, 그것으로 <사고전서> 전체를 논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서울의 유수한 지식인들은 <사고전서>에 어떤 책이 실려 있는지는 알았다. <사고전서>가 워낙 거질의 책이다 보니, 그 책을 소개한 책이 또 있었던 것이다. <사고전서총목제요(四庫全書總目提要)>와 <사고전서간명목록(四庫全書簡明目錄)>이란 책이다.

<사고전서>에 실린 책은 맨 앞부분에 ‘제요(提要)’가 있다. 곧 <사고전서>의 편찬자가 그 책의 저자, 의의, 가치, 이본 등에 대해서 해설한 것이다. 이를테면 요즘의 해제다. 이 제요만을 모은 책이 곧 <사고전서총목제요>다. 그런데 이 책 자체도 200권의 거질이다. 이것을 영인한 책도 있는데, 책은 불과 2권이지만 모두 1800페이지쯤 된다. 그런데 한 면에 원본의 10면 정도를 축소해서 집어넣었으니, 원본의 면수는 약 1만8000면쯤 될 것이다. 어마어마한 책이 아닐 수 없다.

<총목제요>조차 쉽게 볼 수 있는 책이 아니고 또 보기도 불편하다. 어디에 어떤 책의 ‘제요’가 실려 있는지도 쉽게 알 수 없다(현재 이 책의 영인본 뒤에는 검색할 수 있는, 한국인의 입장에서 불편하기 짝이 없는 색인이 붙어 있다). 이런 문제로 인해 따로 만든 것이 <사고전서간명목록>이다. 이것은 <총목제요>보다 훨씬 간략한 정보만을 담고 있다.



<총목제요>는 18세기 말 이후 조선에 아주 드문 책이었다. <총목제요>는 19세기의 실학자 서유구(1764~1845)가 숙부인 서형수에게 보내는 편지에 한 번 이름이 보일 뿐이다. 아마도 이 거질의 책을 소장한 사람은 아주 드물었을 것이다. <간명목록>은 상당히 많이 수입된 것 같다. 이규경의 <사고전서변증설(四庫全書辨證說)>에 의하면, 자신이 아는 것만으로도 서너 집은 된다는 것이었다. 정조가 총애했던 윤행임(尹行恁, 1762~1801)은 <서사고전서간명목록후(書四庫全書簡明目錄後)>라는 글에서 <간명목록>을 읽고 <사고전서>에 실린 저작들이 주자학에 반하는 성격을 띤다고 거친 목소리로 성토했으니, 그는 <사고전서>를 편찬한 주축들이 무언가 문제 있는 지식인임을 눈치챘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강남의 고증학자였음은 몰랐을 것이다.

<사고전서>는 한국학이나 동양학을 하는 사람에게 엄청난 축복이다. 과학사 분야를 보면, 마테오 리치 이후 서양인 선교사들이 북경에 와서 서양의 천문학과 수학, 지리학, 천주교 등의 서적을 한문으로 번역하는데, 이 책들이 조선후기 특히 18세기에 조선으로 들어왔다. 이 한역서학서(漢譯西學書)들이 조선후기 지식계와 사상계에 끼친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천주교 신자들이 자생적으로 생겨난 것도 결국 이 서적들 때문이고, 신유사옥도 이 책들의 연장에 있다. 홍대용(洪大容)이 <의산문답(醫山問答)>에서 주장한 지전설(地轉說)도 모두 서양한역서와 유관한 것이다. 좀 더 나가자면 최한기(崔漢綺)의 온갖 저작도 한역서학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 분야를 연구하는 사람의 처지로서는 상당히 곤란한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쉽게 말해 홍대용이 읽었던 서양한역서, 특히 그중 천문학서를 읽어보아야 홍대용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짐작할 것이 아닌가. 과거에는 이런 책들을 보기가 몹시도 어려웠다. 중국 대륙은 ‘중공’이었으니 오갈 수 없었고, 대만으로는 갈 수는 있었지만 해외여행 자체가 쉽지 않았다. 더욱이 알아주지도 않는 희귀한 분야의 연구에 필요한 서양한역서를 구하기 위해(그것이 대만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대만을 간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던 것이다. <사고전서>는 그런 불편을 덜어주었다. <사고전서>에는 중요한 한역서학서가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젠 자료를 구하기 어려워서 볼 수가 없었다는 소리를 하지는 못하게 되었다.

나 역시 근래에 <사고전서>의 서양과학서를 볼 기회가 있었다. 사실 피하고 싶었지만, 볼 수밖에 없었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수리정온(數理精蘊)>이란 책이다. 이것은 청나라 강희제(康熙帝)의 명으로 엮은 수학책이다. 마테오 리치 이후로 서양의 수학서가 한문으로 꽤 많이 번역되었는데, 그 최종판이 곧 <수리정온>이다. 이 책은 유클리드의 기하학과 삼각비(삼각함수) 방정식 등을 소개하고 있다. 더 이상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전문적인 것이니까 말이다. 어쨌거나 이 책을 검토해서 특정한 부분을 이해할 필요가 있었는데, 이거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강산이 세 번 정도 바뀌었다. 한문으로 쓴 기하학이라니, 눈앞이 캄캄했다. 수포자(수학포기자)는 아니었지만, 원래 오수자(수학증오자)였던 나로서는 고통이 아닐 수 없었다.


강명관 |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