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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사태의 책임 소재는 시빗거리가 될 수 없다. 북핵 사태의 책임은 당연히 김정은에게 있다. 안보와 생존의 수단이던 핵을 공격 중심의 무력, 실질적인 위협으로 키운 당사자 아닌가. 그가 핵개발 명분으로 내건 미국의 핵우산과 한·미 합동군사연습은 이전부터 계속돼온 것으로, 결코 새로운 게 아니다. 북핵과 관련해 모두가 인정해야 할 사실이 더 있다. 이제 북핵의 완성을 막기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국제사회가 할 수 있는 일은 핵보유국임을 인정하지 않는 것뿐이다.

말할 것도 없이 북한은 위험한 국가다. 가공할 무기와 적대감으로 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공공연하게 남한을 “쓸어버리고” 미국도 “불바다를 만들겠다”고 협박한다. 북한에서 신적인 존재인 김정은의 발언은 돌이킬 수 없는 지상명령이 된다. 북한이 당장 내일 전쟁을 시작한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다.

일본 도쿄 인근 요코다 공군기지에서 5일 병사들을 상대로 연설하는 트럼프 대통령. 양복 상의 대신 공군점퍼를 걸쳤다. AP연합뉴스

미국은 위험한 나라라고 볼 수 없다. 한국에 안보 우산을 제공하는 나라, 매년 수백억달러의 무역흑자를 안기는 나라를 위험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무엇보다 미국은 높은 수준의 합리성을 갖춘 국가다. 권력을 견제하는 민주적 통제시스템이 구비되어 있고, 세계평화와 인류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양심’들도 많다. 이들 모두 수령 결사옹위의 북한에는 없는 것들이다. 미국을 북한에 견주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미국이 북한보다 덜 위험한 것이지 전혀 위험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다.

더구나 미국에는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있다. 그는 최강국 지도자답지 않게 무책임하고 무모하다. 파리기후협약 탈퇴, 오바마케어 폐기, 멕시코 이민장벽, 한·미 자유무역협정 폐기발언…. 그가 내놓는 정책마다 미국은 물론 세계가 요동친다. 북한과 대화한다고 했다가 다음날 북한 완전 파괴를 거론한다. 그는 총을 가진 아이처럼 위험하다.

미국은 ‘나쁜 대통령’ 재임 시절 외국과 전쟁을 한 기록이 많다. 아들 조지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를 침공하면서 이런 이유를 댔다. “대량살상무기 보유 가능성 등 세계 안보 환경을 위협하고, 독재자 사담 후세인이 쿠르드인 탄압 등 압정을 실시하고 있다. 이라크는 중동의 위협이며 무장해제를 할 필요가 있다.” 이런 논리라면 핵을 가진 북한은 백번 공격해도 문제가 없다.

9·11테러로 이슬람 세계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던 미국을 지금과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미국이 늘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미국이 이라크 바그다드를 향해 미사일 공격을 시작한 2003년 3월 워싱턴의 포토맥공원에서는 벚꽃 축제가 열렸다. 필자도 거기에 있었다. 신문들은 상춘객 30만명이 몰렸다고 보도했다. 만리 밖에서 피가 튀고 살이 찢어지는 전쟁이 벌어지는 와중에 미국인들은 사진을 찍고 구운 소시지를 먹으며 벚꽃을 즐겼다.

미국인들은 감히 미국의 권위에 도전하는 하룻강아지를 혼내주는 전쟁을 벌인들 어떻겠나라고 생각했을 법하다. 물론 전쟁터가 미국이 아니라면 말이다. 이라크는 미국 본토를 위협하지 않았는데도 공격을 당했다. 지금 북한은 본토를 공격하겠다며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을 쏘아대고 있다. 미국에 실질적인 위협이다. 미국 조야에서 북한이 실력을 더 키우기 전에 선제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트럼프와 김정은은 똑같이 핵버튼을 쥐고 있지만 성격은 크게 다르다. 김정은의 핵버튼은 자폭장치나 다름없다. 누르는 순간 미국의 반격으로 만사휴의다. 트럼프는 다르다. 최악의 경우 한반도는 파괴되더라도 대다수 미국 본토는 온전할 것이다. 위기의 순간에 트럼프가 한국인들의 안위를 고려하도록 안전장치를 만들 필요가 있다.

미 NBC는 엊그제 대북 대화 재개를 시도 중인 조셉 윤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백악관이 대북 외교를 불리하게 만들고 있다”며 의회가 트럼프 행정부를 설득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여야 하원의원 62명은 의회 승인 없이 트럼프의 대북공격을 금지하는 법안을 제안했다. 대표발의자인 존 코니어스 의원은 “군 통수권자(트럼프)가 무모한 태도로 한국 주둔 우리 군대와 동맹국들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고 밝혔다. 뭔가 한국인들이 모르는 심각한 상황이 미국에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14년 전 무능한 대통령과 이슬람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결합한 미국은 이라크전쟁을 시작했다. 그렇다면 무모한 대통령에, 본토 공격 위협에 직면한 미국인들의 불안과 모멸감이 결합한 지금은 어떤 일이 벌어질까. 불안하기 이를 데 없다. 트럼프는 오늘 한국에 온다. 누군가는 그를 통제해야 한다.

<조호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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