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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가 이른바 ‘박용진 3법’에 “아이 교육을 정부가 하겠다는 건 사회주의적 발상”이라며 색깔론을 입혔을 때부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한유총은 자유한국당으로 달려갔다. 한국당과 한유총, ‘한·한 연대’의 유치원 적폐 생존법은 지금까지는 성공적이다. 한국당이 물타기, 시간끌기로 법안 심의를 지연시켰기 때문이다. 법안이 법이 되려면 상임위 법안소위→상임위→본회의 과정을 거치는데, 박용진 3법은 첫 관문인 교육위원회 법안소위에서부터 발목이 잡혔다. 지난 9일과 19일에는 회의를 열지 못했고, 12일에는 회의가 열렸지만 법안 열람만 하고 끝났다.

한·한 연대의 ‘덫’에 걸린 이 법안의 미래는 비관적이다. 잘해야 누더기 법이요, 그렇지 않으면 입법 무산이다. 그 결과는 유치원 적폐’의 되풀이이다. 사립유치원 원장들은 계속 나랏돈으로 명품백 사고 성인용품을 구입할 것이다. 초등학교 취학 준비를 위한 주입식 교육과 아이들이 수박 한 통으로 100명이 먹는 풍경도 재연될 것이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8년11월16일 (출처:경향신문DB)

박용진 3법은 정부로부터 매년 2조원을 지원받는 사립유치원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겠다는 내용이다. 한·한 연대는 이 법안이 사립유치원에 정부의 회계시스템을 도입하도록 한 것은 사유재산 침해라고 주장한다. 정부 지원금을 공적 책임을 부여하는 보조금으로 명목 전환하고, 위반 시 형사책임을 지도록 한 것에도 반대한다. 하지만 사립학교법상 사립유치원은 사립학교로 분류돼 시·도 교육감의 감사를 받아야 한다. 정부가 사립유치원 원장 임명권이나 시설 처분권을 갖겠다는 것도 아닌데 왜 사유재산 침해라고 주장하는지 이해가 안된다.

그럼에도 한유총은 막무가내다. 비리가 불거지면 사과하고 단체 차원의 자정 노력을 보이는 게 통상적인 반응이다. 한유총은 사과는 했지만 곧바로 전체를 비리로 몰고 갈 경우 집단 휴원하겠다고 경고했다. 고위관계자는 유치원 비리에 대해 “국회의원이 월급을 받아 부인 명품백을 사주는 것과 뭐가 다른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어처구니가 없다. 사립유치원 지원금은 유치원 원아교육에만 쓰도록 목적이 정해져 있다. 국회의원 월급과 동일시하는 것은 억지 논리다. 이들이 유치원 개혁에 반대하는 것은 지원금을 쌈짓돈처럼 사용하고, 상속세 등을 적게 내기 위해서일 것이다. 교육기관 명의로 정부 돈을 타낸 뒤 감독은 사유재산임을 내세워 피해가려는 이중적 행태다. 물론 사립유치원이 50년 한국 유아교육을 담당해온 역사적 역할을 부인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그런 공로가 현재의 비리를 정당화하지 못한다.

유치원 교육의 중요성은 학술적으로 입증돼 있다. 해외연구에 따르면 유아교육에 1달러를 투자하면 16.14달러의 사회적 편익이 발생한다. 미국 시카고대 플라비오 쿤하 교수는 인적 자원에 대한 투자수익률이 영·유아기에 가장 높으며, 그 이후 취학기나 성인기에는 급격히 감소한다고 밝혔다. 지금은 4차 산업혁명 시대로 유아교육의 전면적인 패러다임 변화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를 논의하기도 시간이 모자랄 판에 사유재산 논란이나 벌이고 있으니 한심한 일이다.

사립유치원 적폐 생존전략의 미래는 밝지 않다. 유치원 학부모를 비롯한 사회 전반의 거센 반발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보수언론들도 유치원 개혁의 정당성을 옹호한다. 가뜩이나 바닥을 기는 지지율 때문에 비상이 걸린 한국당으로서는 한·한 연대가 자해 행위가 될 수 있다. 저출산시대에 대비하자며 아동수당 선별지급에서 일괄지급으로 입장을 바꾼 한국당이 저출산을 부추기는 유치원 개혁 반대 목소리를 내는 것도 부담스러울 것이다. 한유총 역시 최대 고객인 학부모와 언제까지 맞설 수는 없다.

한유총은 이번에도 고비만 넘기면 다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 예상대로 박용진 3법은 폐기되고 정부의 유치원 개혁도 주춤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하지만 진짜 위기는 머지않은 미래에서 한국 사회를 기다리고 있다. 저출산이 그것이다. 전문가들은 향후 5년 안에 사립유치원의 절반은 문을 닫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실제로 2016년 42만여명이던 한 해 출생아 수가 지난해 35만여명으로 뚝 떨어졌으며 올해는 20만명대로 추락할 것이란 전망이 대세다. 2017년 유치원 취학 아동 가운데 5세는 27만명이지만 4세 25만명, 3세 16만명으로 하락세가 가팔라지는 것도 그 전조일 터이다. 이는 휴원이나 정부에 대한 몽니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전문가들의 전망이 과장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한·한 연대가 사유재산 침해나 주장할 때가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조호연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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