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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정상회담은 성공했다. 한반도 문제의 한국 주도적 역할 공감, 평화적 방식의 북한 비핵화 추진 등 내용이 풍성하다.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사이의 개인적 친분도 상당한 수준에서 형성된 것 같다. 물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논란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문제 봉합 등 불안 요소도 적지 않다. 하지만 얻은 것이 더 크고 확실해 보인다.

성과보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그것을 만들어낸 과정이다. 문 대통령은 북핵과 남북관계에 대한 생각과 해법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시하고 그것을 공동발표문에 담도록 설득했다. 한국이 주도해 외교안보 현안에 대한 공동대응 방안을 마련하는 형식의 한·미 정상회담은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때는 없던 일이다. 두 보수 대통령의 한반도 문제 대응은 오로지 ‘굳건한 한·미동맹’이라는 매뉴얼을 따르는 것이었다. 후에 ‘대북 제재·압박’이 추가됐다.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0일 오전(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단독 정상회담을 하며 손으로 상대방을 가리키고 있다. 이번 정상회담은 한·미 양국의 새 정부가 출범한 이후 첫 회담이다. 워싱턴 _ 연합뉴스

하지만 한·미동맹으로 한반도 문제를 풀겠다는 것은 ‘나는 해결 의지가 없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북한 핵 개발이 한·미동맹이 엄존하는 상황에서 시작되고 고도화되었다는 사실은 앞으로도 한·미동맹이 북핵 문제 해결에 효과적이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일깨운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은 한·미동맹 질서의 정당성을 부여해주지만 동시에 한·미동맹의 한계가 뚜렷하다는 사실 또한 입증해준다. 북핵 문제가 그나마 해결될 조짐을 보인 것은 북·미 양자접촉이나 6자회담이라는 다자협의체가 가동되던 때다. 한·미동맹은 이들 회의체와 직접적인 연결점이 없다. 물론 북한 도발을 억제하고 연합방위 태세를 유지해온 역할을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북핵 문제는 도발 억제가 아니라 완전 폐기 전에는 결코 해결했다고 할 수 없다.

동맹은 1차적으로 안보를 보장받으려고 맺는 것이다. 한국이 한·미동맹의 대가로 군사기지 제공, 한·미 행정협정, 미사일 협정, 전시작전통제권 등 많은 자율성을 포기한 것도 안보를 얻기 위해서다. 그런 점에서 한·미동맹은 일종의 ‘교환동맹’이다. 미국은 한·미동맹을 통한 안보 증진과 함께 한국을 통제하고 동북아에서 세력을 확장하는 전략적인 이익을 추가로 얻고 있다. 그런데 한·미동맹이 정작 북한 핵·미사일 위협을 해소하는 데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한다면 한국은 숱한 양보에도 불구하고 안보마저 보장받지 못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교환동맹의 취지는 약화될 수밖에 없다.

보수 대통령들이 한·미동맹에 매달리는 것은 그것이 지닌 중요한 정치적 자산가치 때문이다. 한·미동맹에 매달릴수록 이익이 커지는 원리를 그들은 잘 이해하고 있다. 문제는 한·미동맹과 북핵의 악순환적 딜레마다. 대북 적대감을 바탕에 둔 한·미동맹을 강화하면 북한의 핵고도화 동기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현재의 한·미동맹으로 북핵 문제를 푸는 데 한계가 뚜렷한 것이다. 보수 대통령들이 한반도 현안을 풀 의지도 방안도 없다보니 어처구니없는 일이 자주 벌어졌다. 1분1초가 아까운 정상회담 기간에 한복쇼를 벌이고 카트운전을 하는 등 가십 같은 일정에 시간을 허비한 것이다. 참으로 무책임한 일이다.

한국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 주도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맨 먼저 문을 열었고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이 뒤를 이었다. 김·노 전 대통령의 정상회담 주도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디스 맨’(김대중·이 사람이란 말로 비하의 의미가 있음), ‘이지 맨’(노무현·다루기 쉬운 사람이란 말로 역시 비하의 의미가 있음)으로 불린 것이다. 하지만 두 대통령은 남북관계 주도라는 값진 결과를 일궜다.

쇠고기를 내주고 “좋은 친구”란 말을 들은 이 전 대통령이나 기자 질문을 까먹고 ‘이, 그, 저’를 남발하며 어쩔 줄 몰라 하다가 “불쌍한 대통령” 소리를 들은 박 전 대통령과는 차이가 크다. 문 대통령은 이번에 주도권을 주장하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그레이트 케미스트리”(궁합이 아주 잘 맞는다)란 말을 들었다. 수모당하면서 주도권 선례를 남긴 선배 대통령들 덕이다. 한·미관계가 그만큼 진화했다고 볼 수도 있다. 이에 맞춰 한·미동맹도 변모해야 한다.

그간 한·미동맹은 평화를 지키는 동맹이었다.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고 동북아의 균형자 역할을 해왔다. 앞으로는 평화를 만들어가는 동맹으로 거듭나야 한다. 북한의 도발에는 단호하게 대처하되 동시에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어야 한다. 미국과 한국 사이에 상하와 선후 관계가 뚜렷한 비대칭성도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미동맹 시즌 2가 열리기를 기대한다.

조호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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