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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일 아침. 동국대 정각원에서 절박한 심정으로 3000배 기도를 올리던 중 한 통의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동국대 학내 문제의 바른 해결을 촉구하며 단식 50일째를 맞은 부총학생회장 김건중군이 병원에 실려 갔다는 것이다. 기도를 멈추고 단식장을 찾았다. 건중군의 곁을 지키고 있던 학생에게 물어보니 동공이 풀리고 의식을 잃었다고 한다. 사태는 급박했다. 그날 동국대 이사회에서 학내 문제에 대한 납득할 만한 조처가 없으면 투신하겠다는 한 대학원생의 예고까지 겹쳐 있었다. 천만다행으로 이사진 전원 사퇴가 결정돼 최악의 상황만은 면했다.

“바라만 보아도 아픈 자식인데….” 자식이 옳은 일을 한다는데 부모라고 해서 말릴 수 없다며, 단식 중인 아들을 설득해 달라는 학교 측의 권유를 거절한 건중군의 어머니도 병원에서는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그래, 다이어트 좀 했냐”며 의연함을 지킨 아버지도 눈시울을 붉혔다. 부끄러움과 참담함이 가슴을 억눌렀다. 중생의 아픔을 위로하고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종교인이 지녀야 할 지고의 가치다. 그런데 진리와 자비 구현의 건학 이념을 가진 종립대학에서 젊은 생명을 벼랑 끝에 서게 한 것이다.

이번 사태는 동국대의 문제를 넘어 우리나라 대학의 현주소를 깊이 톺아보게 한다. 대학의 존재 이유는 학문 탐구와 진리의 발견이다. 이를 바탕으로 자유와 평등, 정의와 사랑을 배양하는 지성의 산실이다. 그러나 대학의 모습은 이런 가치와 점점 멀어지고 있다. 신자유주의 경제시스템 안에서 대학은 경쟁과 수치적 목표를 최우선으로 삼는 취업 준비장이 되었다.

동국대 사태 막바지 나흘 동안 교정에 머물면서 필자가 생생하게 체감한 대학과 우리 사회의 위기는 공동체 정신의 실종이었다. 공동체 정신은 관계의 보편적인 바른 정립이다. 학생과 학생이 아픔과 기쁨을 나누는 우정의 관계, 곧 친구가 되는 것이 공동체이다. 선생은 학생에게 사랑과 지혜를 주고 학생은 선생에게 존경과 믿음을 주는 사제관계가 공동체이다. 사람과 사람이 함께, 아름답게, 살고자 하는 정신이고 문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곳에는 무관심과 외면이 있었고, 진정성 있는 대화와 설득보다는 이기고 지는 승부의 논리만이 있었다.


동국대 부총학생회장 김건중씨가 총장과 이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단식을 하고 있다._경향DB


대학은 물론 우리 사회 곳곳에서 바람직한 관계가 일탈하는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인가. 다름 아닌 생명 중심의 자리에 돈과 권력을 숭배하는 ‘매머니즘(Mammonism)’이 자리하기 때문이다. 돈을 삶의 최우선 가치로 두는 물질만능주의는 인간의 인격마저 물질적 잣대로 가늠하며,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로 이어졌다. 정치·경제·사회·문화·교육 등 모든 분야에 묶여 있는 해악의 사슬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한다.

특히 종교계에서 운영하는 교육시설을 돌아보면 수행자로서 부끄럽고 안타깝다. 일제강점기부터 이 땅에는 종교계가 많은 학교와 병원, 복지시설을 세웠다. 교육을 통해 민중은 깨어났으며 민족의 미래를 밝혔다.

그러나 오늘날 각 종단이 운영하는 사학의 모습은 비리와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여타 대학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사학법 개정에 무시할 수 없는 압력을 행사하고 있기도 하다.

종교사학의 건학 이념은 각 대학이 추구하는 보편적 이념과 비슷하다. 진리, 평등, 자비를 체득함을 목적으로 한다. 다만 하느님과 부처님의 가르침이라는 전제만이 다를 뿐이다. 배타적 특별함이 아닌, 보편적 가치 실현이 종교사학의 건학 이념이다. 그럼에도 종교사학에서 본래 자리의 종교다움도, 대학다움도 보기 힘들다. 오히려 종교라는 신성의 권능과 법적·제도적 권한으로 특별한 권력을 학교에 행사하고 있다.

대학이 본연의 가치로 거듭날 때 우리 사회의 정의도 바르게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종교사학이 선두에 선다면, 먼저 ‘학교’에 대한 생각을 ‘크게’, 그리고 ‘다르게’ 바꾸어야 한다. 학교는 종단 고위층의 전유물이 아니며, 종교를 강요하는 선교의 도구로 삼아서는 안된다. 대학은 공적 가치를 실현하는 사회의 공공재인 것이다. 재단의 역할은 건학 이념을 실현하도록 지원하되 부당한 간섭은 금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변질되고 뒤틀린 교육 문화에 균열을 내고 울림을 주는 역할이야말로 종교사학의 몫이다.

종교라는 힘을 빌려 일부 성직자가 교육현장에서 ‘누리고’ 있는 권력은, 다수의 선생과 학생의 정당한 목소리를 ‘누르고’ 있다는 사실을 아시는지. “풀 위에 바람이 불 때 풀은 눕는다. 그러나 뉘가 알랴, 바람 속에서 풀은 다시 일어서고 있다는 것을.” <시경>의 한 구절이다. 시끄러운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서 자꾸 되뇌게 된다.


법인 스님 | 대흥사 일지암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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