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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에 붙는 각종 세금과 부담금을 올려 현재 2500원인 담뱃값을 4500원으로 인상하자는 안에 대한 찬반 양론이 거세지고 있다. 인상론자는 담뱃값 인상이 흡연율을 낮추고 재원도 확보할 수 있는 일거양득 효과가 있다고 주장한다. 반대론자들은 담뱃값 인상은 결국 담배세 인상이며, 결국 서민에게 더욱 큰 타격을 줄 뿐이라고 맞선다. 2500원짜리 담배 한 갑의 세금·부담금 비중은 63%다. 


■ 흡연율 감소 주장 설득력 없고, ‘증세 없는 복지’ 노린 꼼수


나는 흡연이 건강에 상당히 해롭다고 믿는다.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으며, 주위의 흡연자들에게 금연을 권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나는 흡연율을 떨어트리기 위해 담뱃값을 인상하자는 방안에는 강력히 반대한다. 이는 과학적 근거와 정치적 정당성을 결여한 잘못된 정책이기 때문이다.


담뱃값 인상이 과연 흡연율을 낮출 것인가? 무릇 가격이 오르면 수요가 감소한다는 것은 시장경제의 기본 원리임에 틀림없다. 담배도 예외가 아니어서 가격인상이 수요 감소를 초래한다는 연구결과도 많다. 그러나 소비행태를 결정하는 데는 많은 요인이 작용하기 때문에 정확하게 수요 변동의 원인을 찾아내는 일이 쉬운 것만은 아니다. 담배의 가격뿐만 아니라 담배 관련 규제, 소득수준, 그리고 담배의 해악에 관한 정보 등이 중요한 결정요인으로 추정된다. 또한 담배의 경우 중독성이 강해서 좀처럼 끊기가 쉽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엊그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우리나라 및 외국의 담배가격정책 비교분석’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비교 가능한 25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에 대해 담배가격과 규제를 기준으로 금연정책을 평가한 결과 우리나라가 꼴찌에서 두 번째인 24위로 나타났다고 한다. 그리고 OECD 흡연율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가 OECD 34개국 중 그리스에 이어 두 번째로 흡연율이 높다고 한다. 결론은 담뱃값이 싸서 흡연율이 높으니, 값을 올리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주장에는 많은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먼저 우리나라의 흡연율이 OECD 최고 수준이라는 것은 남성들에 한해 해당되는 말이다. 2012년 기준 최신 통계에 의하면 남성흡연율은 40.8%로서 OECD 최고였다. 그러나 여성흡연율은 5.2%에 불과해서 압도적인 최하였으며, 성인 전체 기준으로는 22.9%로서 OECD 평균 21.1%보다 조금 높을 따름이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흡연율 감소 추세다. 지난 20년간 모든 OECD 국가들에서 흡연율이 감소하였는데, 덴마크처럼 흡연율이 반 이상 감소한 나라도 있고 아일랜드처럼 불과 3% 감소에 그친 경우도 있다. 한국은 34%가 감소하여 비교적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담뱃값은 싸지만 흡연율 감소 성과는 매우 컸다는 말이다.


담뱃값과 흡연율의 관계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하는가? 더욱 흥미로운 것은 흡연율 저하가 가장 미흡했던 아일랜드가 위에서 언급한 보건사회연구원의 금연정책 평가에서는 1등을 차지했다는 것이다. 또한 꼴찌에서 두 번째인 23위를 차지한 미국에서는 흡연율 감소나 현재의 흡연율 수준에서 모두 양호한 성적을 보이고 있다. 한두 나라의 예외적인 사례가 아니다. 전반적으로 담배가격과 흡연율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희박하다.


(경향신문DB)


하버드 대학의 데이비드 커틀러와 에드워드 글레이저 교수는 “왜 유럽인들이 미국인들보다 흡연을 많이 하는가?”라는 논문에서 미국이 유럽보다 담뱃값이 싸고 규제도 적은데 왜 흡연율이 더 낮은지 논하고 있다. 그들은 담배소비에 가격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을 밝히고, 미국의 낮은 흡연율은 흡연반대론자들과 정부의 효과적인 캠페인에 의해 담배의 해악에 관한 정보가 더 잘 알려져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정부가 진정으로 국민건강을 위해서 흡연율을 낮추고자 한다면 담뱃값 인상이 아니라 효과적인 금연교육과 캠페인을 실시할 일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OECD 국가들의 흡연율이 감소추세를 보이고 있는 중요한 이유는 소득의 증가다. 소득이 어느 수준을 넘으면 소득의 증가가 소비여력을 증가시키는 효과보다 흡연으로 인한 건강악화의 기회비용을 증가시키는 효과가 커져서 담배소비를 감소시킨다. 그러니 계층별로 흡연율이 달라진다. 서민층은 건강을 챙겨봤자 별 볼일이 없으니 건강에 상대적으로 무심한 반면, 부유층일수록 건강을 더 챙긴다는 얘기다. 실제로 보건사회연구원의 ‘우리나라 흡연율의 사회 계층별 불평등과 변화 추이’ 보고서에 따르면 2005년 기준으로 소득수준 1분위(상위 20%)의 흡연율은 47.8%였으나 소득이 최하위인 5분위는 무려 64.6%나 됐다.


계층별 흡연율이 동일해도 담뱃값 인상은 서민에게 더욱 큰 타격일 텐데 이렇게 서민층일수록 흡연율이 높으니 그 역진적 효과는 정말 심각하다. 안 그래도 지금 서민경제가 무너지고 있다. ‘증세 없는 복지’라는 불가능한 목표를 담뱃값 인상이라는 꼼수로 이루려는 것은 서민들 가슴에 못을 박는 일이다. 부자증세만이 해답이다.


<유종일 |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 ‘찔끔 인상’ 효과 적고, 대폭 올리면 청소년 흡연율 급감


흡연은 우리 국민 사망원인의 1, 2, 3위인 암, 뇌혈관질환, 심혈관질환의 공통적인 위험인자다. 흡연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연간 3만명으로 교통사고 사망자 수(5229명)보다 6배나 많다. 2007년 기준 흡연으로 인한 직접 의료비용은 연간 1조6000억원이나 조기 사망과 간접흡연으로 인한 피해까지 합하면 5조6000억원에 달하며, 2012년은 연간 1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흡연자들 역시 흡연이 건강에 해롭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 흡연율 감소를 위한 담뱃값 인상 자체에 대해서는 이론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흡연자단체 ‘아이러브스모킹’조차 흡연자가 수용 가능한 담뱃값 인상이어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이니 말이다.


담뱃값을 올리면 흡연율은 분명 떨어진다. 문제는 담뱃값 인상폭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우리나라는 담뱃값이 가장 낮은 반면 흡연율은 가장 높아서 담뱃값을 대폭 올려야 한다는 주장과 물가상승률에 연동하여 올리는 방안 또는 1차로 500원을 인상한 뒤 단계별로 올리자는 방안이 제기되고 있다.


담뱃값을 조금씩 지속적으로 올리는 정책은 흡연자들에게 흡연을 포기할 유인을 제공하지 못한다. 흡연자들의 담배 의존성을 유지시켜 흡연율도 줄이지 못하고 흡연으로 인한 재정손실만 더욱 증대시킬 것이다. 한편 담배 제조·유통 관련자들의 이윤 증대에만 기여할 공산이 높다. 따라서 정말 국민건강을 위해 담뱃값을 인상하고자 한다면, 최소 2000원은 인상해야 담배를 끊는 유인이 될 수 있다.


담뱃값 인상 효과는 이미 검증된 사실이다. 세계은행 조사 결과 담뱃값이 10% 오를 때 담배소비가 4∼8%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에선 담뱃값 인상으로 1995년 36%였던 고교생 흡연율이 2001년 25%까지 줄었고, 캐나다는 1971년부터 1991년까지 청소년 흡연율을 47%에서 16%로 줄였다. 우리나라도 2004년 말 담뱃값을 500원 인상하여 흡연율이 6개월 후 7% 정도 감소한 바 있다.


담뱃값 인상은 국가 미래인 청소년들을 위해 꼭 필요하고 효과적인 금연수단이다. 세계은행의 2000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청소년은 성인에 비해 담뱃값에 3배나 더 민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청소년 때 흡연을 시작하면 성인이 돼서도 담배를 피울 확률이 높기 때문에, 흡연율 감소를 위해서는 청소년의 흡연율을 낮추는 것이 필수적이다.


저소득층일수록 흡연을 더 많이 하고, 담배 제세부담금은 소득 수준에 상관없이 부과되는 종량세이므로, 담뱃값을 많이 올리면 서민 부담만 가중된다는 우려가 있다. 하지만 담뱃값 부담 때문에 금연을 하게 되면 담배지출액은 물론 흡연으로 발생하는 의료비 지출도 줄어들어 오히려 가계에 도움이 된다. 담배가격을 100% 올리면 고소득 흡연가구는 담배소비량을 20% 정도만 줄이지만 저소득 흡연가구는 절반으로 줄인다는 최근 연구 결과도 있다.


담뱃값을 인상하는 가격정책만이 흡연으로 인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이번 담뱃값 인상 법안에는 금연사업비 규모를 200억원에서 3600억원 규모로 증가시키는 내용도 있다. 추가로 담뱃갑 포장지에 경고 사진 표기를 도입하고, ‘마일드’ ‘라이트’ ‘순’ 등 소비자를 오인시키는 문구를 금지하는 한편 흡연을 질병으로 보고 금연치료 비용을 보험급여화하는 내용을 법제화할 예정이다. 선진국들의 경우 금연치료를 보험급여화해 흡연율을 낮춘 사례가 많다.


일부 흡연자들은 흡연에 대한 규제가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고 한다. 이도 일면 일리가 있다.


하지만 흡연권보다는 헌법상 권리인 보건권이 우선되어야 하고, 국가는 국민의 보건권을 보장해야 한다. 솔직히 그동안은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해치는 담배장사로 재정수입을 올리면서 흡연을 조장한 측면이 있다. 흡연을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니코틴 의존성 질병으로 규정하고 치료비용을 지원하는 것이 흡연권 보장보다 우선해야 할 국가의 책무다.


이제 오피니언 리더들이 금연운동에 앞장서야 한다. 특히 우리의 미래인 청소년들을 위해 학부모단체, 교원단체를 비롯해 건강한 사회를 만들자고 목소리를 높여온 시민단체나 노동계에서도 금연운동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담뱃값을 제대로 올리고 청소년을 포함한 흡연자들이 금연에 나설 수 있도록 다양한 금연정책을 추진해야 할 때라고 믿는다.


<김재원 | 새누리당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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