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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도가 103년 된 진주의료원의 폐업 절차를 밟기 시작하면서 사회적 논쟁이 커지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약속한 공공의료 확대 정책도 첫 분기점을 맞는 셈이다. 경남도는 “적자가 쌓이는 공공의료기관의 존재 의미가 약해졌다”고 주장한다. 이에 맞서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인 공공의료를 수익성만으로 재단할 수 없다는 폐업 반대 목소리도 높다. 경남도 윤성혜 복지보건국장과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이 4일 진단과 처방이 180도 다른 ‘진주의료원 논쟁’에 나섰다. 

■ 공공병원, 최소한 사회안전망… 적자 탓 폐쇄 안돼


2009년 신종플루가 처음 유행해 아직 그 위험성이 밝혀지지 않았을 때 한국에서 어떤 병원이 신종플루 환자를 봤을까? 바로 지방의료원과 시립병원, 보건소, 즉 공공병원들이었다. 당시 사립병원들은 다른 환자들이 떨어져나간다고 신종플루 환자들을 기피했다. 공공병원으로는 모자라 사립병원들을 신종플루 거점병원으로 지정했을 때 처음 모인 사립병원장들의 모임에서는 ‘손실을 보전해달라’는 말이 가장 많이 나왔지만 가장 큰 박수를 받은 발언은 ‘아예 거점병원 지정을 철회해주는 것이 가장 좋겠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10년 주기, 혹은 50년, 100년 주기 홍수에 대비한 댐을 평소에는 쓸 일이 없으니 철거하자고 하지는 않는다. 특히 조류독감과 같은 전 지구적 질병이 언제 유행할지 모르는 시기에 공공병원의 존재는 필수적이다. 이런 환경성 전염병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음압시설을 갖춘 격리병실이 필요하다. 그러나 전혀 돈이 안되는 이 병실을 어떤 사립병원도 갖추려 하지 않는다. 공공병원은 사실상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이다.


이런 이유로 지금 지방의료원 34곳 중 7곳 외에는 모두 적자경영을 하고 있지만 85%가 응급의료센터를 운영한다. 사립병원들은 돈이 안된다는 이유로 32%밖에 운영하지 않는 시설이다. 이윤과 상관없이 필수적인 의료를 제공하는 것이 바로 지방의료원과 같은 공공병원이다. 정부가 투자하지 않는다면 재정적자는 불가피하다.


공공병원들이 돈 안되는 진료를 도맡아 하는 것은 응급의료센터만이 아니다. 지금 진주의료원에는 아직도 40여명의 환자들이 남아있다. 2월 말 폐업선언을 하고 약품 공급까지 끊어진다는 병원에 누가 남아있고 싶겠는가. 그런데도 200여명의 입원환자 중 5분의 1의 환자들이 퇴원하라는 종용과 압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아있다. 갈 곳이 없는 가난한 환자들인 것이다. 바로 사립병원에서 기피하는 ‘돈 안되는’ 환자들이다. 강제폐쇄를 당하고 있는 진주의료원의 입원환자 중 40%가 바로 이런 의료급여 환자들이었다.


지방의료원들은 사립병원들과 비교했을 때 입원환자는 71%, 외래환자는 74%의 진료비밖에 안 받는다. 가난한 환자들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많은 사립병원들이 행하는 과잉진료를 공립병원에서는 안 하기 때문이다.


94%가 사립병원인 한국에서 과잉진료는 이제 커다란 사회적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한국의 갑상선암 환자 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10배다. 어느 나라에서도 하지 않는 갑상선 초음파를 일상적으로 하고 교과서에서 불필요하다고 하는 수술을 시행해서 그렇다. 불필요한 척추수술이나 무릎수술이 너무 많아 의사들 사이에서는 친척이 ‘전문병원’에서 수술을 권유받았다고 하면 대학병원에 가서 다시 진료받으라고 하는 게 일이 될 정도다. 건강검진? 병을 찾아내기도 하겠지만 지금 많은 병원들의 비싼 건강검진은 불필요한 전신 CT 등 오히려 방사선 위험에 노출되는 더 큰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공립병원은 이러한 돈 되는 과잉진료가 없기 때문에 재정적자를 감수해야 하는 아이러니가 있다. OECD의 공공병상 비중은 평균 70%가 넘는다. 상당수 유럽 국가들에서는 거의 모든 병원이 공공병원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OECD 국가들에서 공공병원은 표준적 의료지침을 세우는 병원이고 사립병원들이 이를 따른다. 그러나 공공병원이 6%밖에 안되는 한국에서는 거꾸로다. 과잉진료가 일상화된 사립병원이 표준이 되고 여기서 떠넘기는 돈 안되는 환자들, 돈 안되는 필수의료, 적정진료 때문에 공공병원이 적자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제 이 재정적자 때문에 공공병원 문을 닫으라고? 공공병원을 더 지어도 모자를 판에 이미 산으로 가고 있는 한국의 의료를 아예 끝장내자는 이야기다.


지금 진주의료원의 문제는 더욱더 황당하다. 시내 한복판에 있던 병원을 경상남도가 혁신도시가 생긴다고 허허벌판인 시 외곽으로 옮겼다. 그러고는 병원을 새로 지은 지 5년 만에 적자로 문을 닫겠다고 한다. 또 입원환자를 강압적으로 쫓아내다시피 한다. 이 과정에서 민주적인 논의절차는 아예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민주주의와 인권은 찾아볼 수 없다. 


홍준표 경남지사는 이제 진주의료원을 ‘강성 귀족노조의 해방구’라고 부른다. 몇 년째 임금동결에 임금체불까지 일상화된 병원의 노조가 무슨 귀족노조일까. 또 박근혜 대통령도 지방 공공의료의 확충을 공약했다. 보건복지부도 진주의료원을 폐원하지 말라고 권고했다. 그런데도 집권여당이 공천한 도지사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경남도는 그야말로 ‘홍준표 도지사의 해방구’가 됐다. 홍준표 지사는 “어떤 잡음이 있어도 기차는 달린다”고 말했다고 한다. 언제부터 이 나라가 ‘이 병원에서 나가면 죽을 수밖에 없다’는 갈 곳 없는 가난한 환자들의 호소가 ‘잡음’으로 들리는 나라가 된 것인가.


<우석균 |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의사>


진주의료원 폐업 (경향DB)


■ 의료기관의 기능 약화·도덕적 해이… 구조조정 필요


진주의료원의 모태는 1910년 자혜의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조선총독부에 의해 전국에 10개의 병원이 설치됐다가 이후 운영권이 시·도로 이관됐으며 1930년대를 전후해서는 전국에 약 30개까지 늘어났다. 의료시설이 불충분했던 당시 도립병원은 국민보건을 위해 지대한 역할을 담당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민간의료기관의 급증으로 도립병원의 의료기관으로서 기능은 점차 약화되어 왔으며 진주의료원 역시 이러한 쇠퇴 흐름을 따라 존재의미가 옅어져 왔다고 봐야 한다. 진주의료원은 여기에 더해 강성노조원들의 도덕적 해이와 무사안일이 겹쳐지면서 문을 닫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봐야 한다. 진주의료원의 노조가 어떤 행태를 보여 왔는지 살펴보자.


먼저 구조조정과 관련한 부분이다. 2008년 이후 경남도에서 36번, 도의회에서 11번, 경영진단 2번, 언론보도 등을 통해 의료원 측에 경영개선을 요구했다. 그러나 노조 측에서는 노동자의 노동권을 이유로 단 한번도 이에 응하지 않았고 오히려 비정규직을 정원 외로 채용했다가 훗날 정규직화시키는 등의 방법으로 직원수를 148명에서 250명까지 증가시켜 버렸다. 


또 기존의 경영진단은 경남도가 주관한 것이므로 믿을 수 없다고 해서 노조 주관으로 경영진단을 하고 그 결과를 따른다면 진단용역비는 물론 부채탕감을 위한 예산 110억원도 지원하겠다고 했다. 그런데도 노조는 경영진단을 하면 필연적으로 구조조정과 연결될 것이므로 노조원들의 투표를 통해 경영진단도 거부해 버렸다. 


그러면 왜 경남도와 도의회 경영진단 등에서는 그렇게 구조조정을 요구했을까? 2012년 기준 진주의료원의 순수의료수익, 즉 장례식장이나 건강검진을 통한 수입을 제외한 환자 치료를 통해서만 얻는 수입은 136억원이었다. 이에 비해 인건비는 135억원이었다. 즉 진주의료원은 환자를 치료해서 벌어들이는 수입으로 환자들의 주사기나 약도 살 수 없고 환자들의 위생을 위한 청소용역도 할 수 없다. 그 수입은 전부 노조원들의 인건비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구조조정 요구는 당연하지 않은가?


두 번째로 단체협약 부분이다. 진료비 감면 관련 협약 중에는 직원과 부모, 자녀, 배우자의 부모에게 입원진료 시 상급병실료 차액을 100% 감면하게 돼 있다. 이 규정에 따라 직원들은 9만원의 1인실을 8000원에 사용할 수 있게 된다. 파견공무원의 증언에 따르면 1인실의 상당수를 직원 가족이 차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또 기타 진료비 감면 협약조항에 따라 어떤 직원은 2010년에 1470만원의 병원비가 나왔지만 1257만원을 감면받아 213만원만 지불한 경우도 있었다. 10년을 진주의료원에 근무하고 퇴직해도 동일한 혜택이 평생 부여된다. 이러한 단체협약이 법과 규정을 뛰어넘는 것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세 번째로 도가 임명한 원장을 10~30년간 근무한 강성노조가 인사권, 경영권에까지 관여하면서 방해했기 때문에 두 명의 원장이 임기 3년도 채우지 못하고 중도사퇴했다. 의료원의 실질적인 운영권이 원장에게 있었는지, 노조에게 있었는지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마지막으로, 노조 측에 따르면 지난해 외래 환자 수는 하루 평균 200여명이었다고 한다. 도가 폐업방침을 발표할 당시 의사 수가 18명이었으므로 환자 수를 250명으로 추정해도 진료과 하나당 환자 수는 14명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244명의 직원이 있던 진주의료원에서 하루 평균 200여명의 외래환자만 진료하고 있었던 것이다. 노조원들은 대체 무엇을 하며 하루를 보냈을까. 진주지역에서 의료원이 가히 신의 직장으로 불릴 만했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2012년 말 기준 진주의료원의 누적부채는 279억원이고 손실은 70억원 가까이 발생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의료수입은 거의 직원들의 인건비로 들어가는 비정상적인 경영구조를 띠고 있다. 이대로 방치한다면 파산은 불 보듯 뻔한 것이다. 노조 측에서는 감가상각이 포함된 당기손실은 과장된 것이고, 의료원의 자산가치도 평가절하되었다고 경남도를 비판한다. 따라서 경영위기설은 조작이라는 것이다. 파산이 눈에 보이긴 하지만 좀 더 시간을 두고 벌어질 일이니 가만 내버려둬 달라는 의미인가.


경남도는 민간을 포함한 공공의료 수행기관의 하나에 불과한 진주의료원은 폐업을 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노조원들의 인건비로 들어갈 70억원의 손실을 도민에게 직접 혜택 드리는 방향으로 지원하는 것이 더 공공성을 살리는 길이라고 보았다. 서부 경남의 의료낙후지역 의료서비스를 강화하기로 한 것이다. 그것이 도민들의 귀한 세금을 제대로 사용하고 진정한 공공의료를 살리는 길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도민들의 혜량을 부탁해본다.


<윤성혜 | 경남도 복지보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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