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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형마트 판매품목 조정을 놓고 찬반 여론이 엇갈리고 있다. 대형마트 등 유통업계들은 매출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고 전통시장상인 등 소상공인들은 크게 반기고 있다. 서울시는 전통시장상권 보호를 위해서는 대형마트 판매품목 조정의 법제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법제화보다는 이해 당사자들이 자율적 협상으로 해결하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 상생 위한 최소 장치… 지역 사정 따라 품목 조정은 가능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그의 저서 <트러스트(Trust)>에서 자유주의 정치·경제 체제가 역동적인 생명력을 얻기 위해서는 윤리·도덕·협동심 같은 사회적 자본이 바탕이 되어야 하며, 이 사회적 자본의 뼈대를 이루는 것이 트러스트(신뢰)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면 우리 사회의 신뢰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불행하게도 우리 사회의 신뢰수준은 그리 높지 못한 것 같다. 우리 사회의 낮은 신뢰성은 각 분야에서 사회적 합의라는 큰 틀의 합의보다는 단기적 이해득실에 따라 갈등과 조정의 형태로 사회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쉽게 유추해 볼 수 있다. 이는 특히 유통분야에서 더욱 심각하게 나타났다. 2009년 7월 이후 대형유통기업과 중소상공인 간 사업조정 건수는 기업형슈퍼마켓(SSM)이 424건, 대형유통점이 57건으로 무려 481건에 달한다. 그간 사업조정에 소요된 사회적 비용과 자원의 낭비가 어느 정도인지는 쉽게 가늠할 수조차 없다.


정기휴무 알리는 대형마트 입간판 (경향신문DB)


최근 대형유통기업의 의무 휴업일을 정하는 과정에서도 사회적 합의보다는 이내 갈등의 과정을 거쳐 법제화라는 형태로 강제되고서야 결말을 보았다. 동일한 상권에서 동일한 소비자를 대상으로 영업하는 대규모점포와 중소점포가 공존하기 위해서는 판매품목의 조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지난달 1년여를 끌던 마포구 합정동 메세나 홈플러스 사업조정 건이 밤, 오징어, 총각무 등 16개 품목의 판매조정으로 합의되었으며, 2012년 11월 코스트코가 광명시에 출점하면서 골목상권 보호와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일부 품목의 판매를 제한하는 ‘중소상인 보호협약’을 광명시와 체결한 사례 등 대규모점포와 중소점포 간 갈등의 상당 부분이 서로 중첩되는 판매품목에 있다는 것은 자명하다.


이러한 사업조정의 경험을 바탕으로 최근 서울시에서는 갈등의 악순환 구조를 끊고 상생의 선순환 구조로 전환하기 위해 대형마트와 SSM에 대한 51개 판매 품목조정안을 발표하였다. 대형유통기업의 판매품목 조정은 국회에서 ‘유통산업발전법’의 개정안으로 입법발의가 되어 있는 사안이며, 서울시에서도 조례를 통해 품목조정의 근거를 마련한 바 있다.


그러나 법적 근거가 있다고 하여 시장 특성을 무시하고 일괄적으로 대형유통기업에 대해 판매품목을 제한하는 것은 상생과 합의라는 동반성장 취지에도 부합하지 않으며, 자칫 또 다른 갈등만을 양산하는 것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이번 서울시에서 제안한 51개 품목은 대형 유통업체에 큰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소상공인의 입장에서는 매출 비중이 크고 관련 사업체가 많은 품목으로써 소비자에게 불편을 최소화하는 품목이다.


현재 일부 언론에서는 판매품목 조정의 이익은 외면한 채, 모든 지역의 대형마트에서 51개 품목의 판매를 전면 금지하는 것으로 오도하고 있다. 그러나 품목조정의 취지는 서울시에 한정하여 지역의 사정에 따라 51개 품목 중에서 대형유통기업과 중소상인이 합의하여 품목을 선정하고 서로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데 있는 것이다.


실제 대형점포의 판매가 제한되는 품목은 그보다 훨씬 적을 수 있다. 이처럼 서로 양보할 수 있는 품목을 명확히 제시하는 것은 중소상인뿐 아니라 대형점포에도 도움이 된다. 단기적인 시각에서 더 많은 품목을 추가하려는 중소상인의 욕심과 하나도 양보하지 않으려는 대형유통기업의 이기심 간의 소모적인 논쟁과 첨예한 갈등을 되풀이하기보다는 서로 함께 더불어 살 수 있는 타협안을 찾는 출발점으로 51개 품목을 활용할 수 있다.


이번 제안된 품목에 대해 법제화하여 강제해야 한다거나 새로운 규제의 신설이라는 부정적 인식보다는 대형유통기업과 중소상인 간 자율적인 합의를 통해 구체적인 품목을 정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으로 받아들이는 게 바람직하다.


향후 대형유통기업과 중소상공인이 지혜를 모아 품목조정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경우 사회경제적 자원의 낭비를 줄이고, 사회 전체의 후생수준을 크게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격언이 있다. 대형유통기업과 중소상공인은 이번 품목조정 권고안을 대중소기업 상생을 위한 동반성장의 계기로 삼는 지혜를 발휘하여 우리 사회의 신뢰수준이 한 단계 도약하는 밑거름이 되기를 소망한다.


<조유현 | 중소기업중앙회 정책개발본부장>


■ 규제한다고 전통상권 살지 않아… 고객선택권 강제 못 해


언젠가부터 많은 사람들이 대형할인점에서 생필품을 사는 데 익숙해져 있다. 대도시나 중소도시는 물론 읍·면 지역에 이르기까지 현대식 판매장을 접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도시의 주택가에서는 예전의 구멍가게보다 대형 기업의 상호를 가지는 편의점이나 소위 SSM이라는 판매점이 눈에 더 많이 띈다. 거기에다 홈쇼핑이며 모바일 쇼핑몰이다 해서 소비자가 접하는 구매방식이 계속해서 새롭게 다양화되고 있고,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인터넷이나 편의점의 판매액이 다른 판매방식의 그것보다 더 많이 증가하고 있다는 통계치도 나오고 있다.


이와 같은 변화와 함께 소매시장에서 공존하고 있는 전통시장이나 골목상권 등의 전통상권은 해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고 한다. 그 이유와 해결방안을 찾기 위해 여러 대안들이 각계에서 제시되고 있다. 최근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것이 서울시에서 제안하고 추진하고자 하는 대형마트와 SSM의 판매품목 제한방식이다. 이 방식은 대형마트와 SSM에 대한 의무휴업을 진행한 데 이어 전통상권을 효과적으로 살리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대형마트와 SSM에서의 판매를 제한할 수 있는 조정가능 품목 51개를 선정한 것이다.


서울시의 판매품목 제한 방식에 대해 이해관계에 따라 찬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이해당사자들이 참가하는 공청회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해 나갈 예정이라고 한다. 한편 행정기관의 정책은 장기적으로 사회의 전반적이고 구조적인 영향력을 가지므로 보다 분석적이며 신중해야 한다. 또한 대중의 참여와 지지가 해당 정책의 성공 여부에 커다란 변수가 된다. 이러한 입장에서 서울시의 판매품목 제한 방식이 보다 합리적이기를 바라며 몇 가지를 지적한다.


먼저 전통상권이나 대형할인점, SSM 등이 속하는 전체 유통산업에 대한 통찰력이 정책의 수립이나 발표에 우선되어야 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러한 면이 전통상권의 보호라는 명분에 미치지 못한 느낌이다. 판매품목의 제한으로 인한 여러 업계의 득실관계, 특히 전통상권의 이득과 대형할인점 및 SSM의 1차, 2차 협력업체에 속하는 보호대상 중소업체의 손실 등이 비교되어 충분히 검토되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이번 조치로 인한 인터넷 쇼핑몰(대형마트의 인터넷 판매 포함), 편의점, 홈쇼핑 등으로의 구매쏠림 여부 등에 대해서도 검토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번 조치에 대해 소비대중에 속하는 일반 시민들이 가지는 참여와 지지를 먼저 확인하는 과정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 자율과 개방의 환경에서 고객의 선택권은 보다 유동적이다. 이와 같은 고객유동성은 정책적 조치로 강제하기도 어렵고, 지속성도 예측하기 어려울 만큼 변화무쌍하다. 그러나 적어도 이러한 정책의 성공 여부에 필수적인 일반 시민들의 선호도와 참여도 등을 미리 조사하고 정책효과의 실현에 대한 기대수준을 확인하였는지 궁금하다.


또한 협력적 문제 해결의 방안을 더 많이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서울시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번 판매품목 제한 방식은 상호경쟁의 제로섬이 아니라 중소상인-대기업-소비자가 서로 번영하는 방안이라고 한다. 그러나 상생의 고려가 부족하다는 비판적 의견이 있다. 즉 딱딱한 정책이나 법률의 추진보다 여러 이해관계자 간의 상생을 위한 자발적 접근방안을 먼저 유도하는 것이 장기적인 측면에서 우선돼야 한다. 중곡 제일시장, 군산 공설시장 등의 사례와 같이 내부의 자발적인 협력 추진 또는 대기업, 인터넷 쇼핑몰 등 외부와의 협업적 협력관계를 조성하는 것은 물론 공공단체가 구매자로서 전통상권을 지원할 수도 있다.


사회발전에 따라 빠르게 변화하는 소비자들의 구매문화는 소비대중들이 접하거나 선택하는 판매방식의 다양한 변화를 유도한다. 대형마트나 인터넷 쇼핑몰의 확대가 현대인의 구매문화 변화에 따라 유통산업이 적응한 결과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서울시의 판매품목 제한 방식이 변화하는 구매문화를 충분히 반영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그러나 전통상권의 보호는 우리 사회가 공감해야 하는 영역에 있기도 하다. 또한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유통산업의 특성에 비추어 처음부터 전통상권의 정책적 보호를 고려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단지, 영업제한이나 판매품목 제한 등과 같이 네거티브한 규제적 정책보다 전통상권의 질적 개선이 자체적으로 또는 다른 이해관계자와 보완적으로 이루어지는 정책들을 통해 시민들이 전통시장에서 가지는 넉넉함과 향수가 계속 존재하고 발전되기를 바란다.


<윤한성 | 경상대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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