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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면서 생긴 미스터리급 의문을 대라면 셀 수 없이 많다. 가령 유치원 버스가 9시에 다니면 직장맘은 도대체 어떻게 출근하나, 6시 종일반에 아이를 데리러 갈 수 있는 엄마들의 직장은 어떤 곳이고, 그렇게 관대한 회사에서 그녀들은 어떤 업무를 하고 있나. 지난달 태풍 때처럼 급작스러운 휴원, 혹은 아이가 감기나 결막염 같은 전염성 질환을 앓게 되어 며칠이고 집에 있어야 할 경우 직장맘들은 어떻게 하나. 1시에 하교하는 초등 저학년의 직장맘들은 도대체 애를 어떻게 키우나. 원하는 때에 자유롭게, 잦은 휴가를 낼 수 있고 오후에 자신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오너가 아닌 경우 중요 회의와 업무에서 제외된 엄마일 터이다. 그러나 그마저도 불완전한 지위에 있는 비정규직이라면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그렇다고 전업주부가 우대받기는커녕 행복한 세상도 아니다. 하루 24시간이 업무시간인 엄마들은 출산을 하는 순간부터 회사는 물론 친구와 일체의 문화적인 것과 멀어지게 된다. 한 달이 멀다 하고 만나던 친구들은 애 키운다고 바빠서 집에서 나오지 않고 그렇게 10~20년을 보내다보면 주변에 사람도, 책과 음악 같은 취미도, 사회도 사라지고 없다. 그러니까 육아는 경력단절녀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가족을 제외한 일체의 관계-친구와 각종 공동체와 사회 등등- 단절을 가져오는 ‘장시간 지속되는, 고되고 고독한 노동’인 것이다.

그뿐인가. 여성들이 종종 꿈꾸는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소망은 또 다른 사랑에 대한 꿈이 아니다. 밥하고 빨래하는 비경제적 노동인 가사를 해주고, 각종 공과금과 쇼핑 등의 집안일과 생일 같은 집안 대소사 챙기기, 늙은 부모 병원 모셔가기, 아이 학원 알아보기, 아이 일상은 물론 교우관계 챙기기 등의 물리적 정신적 노동과 관리를 할 수 있는 ‘집사’ 같은 아내를 원하는 것이다.

육아와 돌봄에는 정부관료가 생각하듯 얼마의 아동수당, 출산장려금, 1억원의 지원금과 같이 자본이나 임금노동으로 환산할 수 없는 비가시적 노동과 노고들이 따른다. 기술이 발달해서 돌봄로봇이 등장한다고 해도 그 기계적 돌봄에는 반드시 공백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지는 여성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엄마’를 떠올려보면 알 수 있다.

저출산과 육아 문제를 놓고 지금 한국은 몸살을 앓고 있다. 초등 저학년 돌봄 공백을 위한 ‘더 놀이학교’를 둘러싼 논란, 그리고 최근 ‘출산주도성장론’까지 인구절벽 앞에서 많은 모색들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저출산이 여성만의 문제도, 돌봄 공백만의 문제도 아니라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것은 어느 국회의원이 질타했듯 ‘자기 행복하려 출산을 기피하는 청년들’의 이기적인 가치관 때문만은 더더욱 아니다. 아이를 낳는 순간 부모는 ‘나만 잘 먹고살면 되지’라는 생각에서 탈피하게 된다. 아이가 살아갈 세상을 생각하다보면 이 나라의 교육과 경제, 정치는 물론 지구온난화까지, 인류를 걱정하는 공동체적 인간으로 거듭나게 된다. 청년들이 아이 낳기를 기피하는 것은, 그 아이로 인해 갖게 되는 자신의 행복보다는 그 아이가 짊어지게 될 세상살이의 고달픔과 불행감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기 먹을 복은 타고난다’는 말은 그것을 경험했던 자의 것이지 최저임금으로 허덕이는 불안한 청춘의 것은 아니다. 불행한 이들에게 탄생은 비극이다.

명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남자주인공 레트 버틀러는 자유분방하고 냉소적인 개인이지만 스칼렛과 결혼하고 딸아이를 낳고부터는 삶의 방식을 바꾼다. 거들떠보지도 않던 이웃에게 상냥하게 인사하고 그들과 관계를 맺고 또 공동체의 일에 개입한다. 그것은 레트 버틀러가 아이를 통해 ‘가족, 안전, 뿌리’와 같은 가치를 새롭게 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한 아이를 위해서는 생물학적 과정뿐 아니라 돌봄, 안전, 교육, 경제적 심리적 안정 등의 일체가 담긴 마을공동체가 필요하다. 열악했을지라도 과거 대가족, 마을공동체가 함께 키웠던 아이에 대한 모든 책임은 이제 취약한 개인인 젊은 엄마 아빠에게 넘겨졌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그들 부모가 살고 있는 마을, 미래의 희망이 사라진 이 사회구조를 다시 재건하지 않으면 안된다.

<정은경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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