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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시 원서 접수 기간이라 수험생을 둔 가정에서 고민이 많을 것이다. 나 역시 밀려오는 전화와 상담으로 3주 전부터 사생활이 전혀 없다. 입시 상담은 여러 전형을 고려해 합격 가능성과 경험, 객관적 데이터까지 동원한 지난한 과정이다. 학생의 적성이나 자질, 학과의 특성이나 직업적 전망, 결정적으로 경쟁률 등 현실적인 동기까지 고려해 겨우 가설을 수립한다. 여기서 돌발변수로 등장하는 외적 변인이 가정 내 여론이다.

“저희 아빠가 이 학과 나오셨는데요, 전혀 비전이 없대요.” “저희 엄마가 이 대학 나왔는데, 절대 가지 말래요.”

진화과정에서 인간은 생존을 위해 배신자를 구별하거나, 위험한 음식을 구분하는 등 부정적 사고를 발달시켰다고 한다. 인간이 이익보다 손실에 민감하다는 의미이다. 실제 위험이 우려되는 상황이라면 손실 방지 심리는 비용 편익의 계산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럼에도 위험과 기회가 공존하는 대학 입학에서 부모가 던지는 부정적인 문장들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나는 되묻는다. “네가 보기에 네 부모님은 사회생활을 잘하고 계시니?” 학생들 대부분이 그렇다고 대답한다. 나는 이렇게 정리한다. “그렇다면 너도 그 대학이나 학과에 만족할 거야.” 부모가 자신이 졸업한 대학이나 학과를 폄하하면 안타까운 자가당착이 된다. 실력이든, 적성이든 유전의 인과성을 부인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생물학적 결정론을 거부하겠다는 부모의 바람과 달리, 유전에 환경까지 더해져 자식은 30년 전 부모와 유사한 선택을 하기 쉽다. 또한 자신과 주변 몇 명만으로 대학, 학과의 가치를 판단해버리는 오류도 문제다. 

많은 부모들은 자식을 키우며 부정적 언어로 통제했다. “저녁밥 다 안 먹으면 텔레비전 못 봐.” 이는 효율적 통제수단이다. 그럼에도 부정적 뉘앙스의 통제는 사회적 성취를 극대화하는 데에는 도움되지 않는다. 부모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아이들은 훨씬 부모를 의식한다. 부모에게 멋진 결과를 안기고 싶음에도, 이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의 현실에 죄의식이 내면화된 학생들은 흔하다. 부정적 언어는 이런 심리적 상황의 학생들에게 합리적 선택을 제한할 수 있다. 아이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위해 헌신한 아버지처럼 살고자 그 학과를 고민했고, 어머니 손을 잡고 찾았던 대학 교정이 정겨워 그 대학을 선택했을 것이다. 

부모 마음도 복잡하다. 자식이 자신보다 더 나았으면 하는 바람이 담긴, 사회생활을 하면서 받은 스트레스가 투영된 표현이다. 그러나 원서 지원에서 통제를 받은 학생들 일부는 심각한 문제를 겪기도 한다. 몇 년 전 꼭 가고 싶은 학과를 골랐던 학생이 할머니의 반대에 부딪혀 좌절한 적이 있었다. 종교적 이유였다. 그 학생은 우왕좌왕하다 결국 원치 않는 곳에 원서를 던져버렸다. 일상에서 부모들이 무심코 사용한 언어가 나타나기도 한다. “이 과는 부모님이 싫어할 것 같아요. 평소에 그러셨거든요. 이 대학은 부모님 시절에는 별로였대요.” 9월 모의고사로 인해 위축된 어깨가 더욱 움츠러든다. 많지 않은 선택지마저 줄어든다.

합격의 영광은 모두 자신의 몫이다. 지원 대학이나 학과 역시 학생이 짊어질 운명이며, 부모는 본인과 가장 가까운 타인이다. 자율적이며 긍정적인 언어로 바꾸는 것은 어떨까. “엄마는 ○○과를 나와 이만큼 일할 수 있었단다.” “아빠가 졸업한 대학은 사회에 크게 이바지한 좋은 곳이지.” 대학 입학은 개인의 인생을 여는 가능성의 시간이다. 부모가 전하는 긍정적인 언어가 열린 공간을 더욱 크게 만들어줄 것이다.

<정주현 | 논술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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