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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땅만 파먹고 사신 어머니가 대처로 나가 배울 만큼 배웠다는 딸에게 “쌀도 못 되고 보리도 못 되는 글로 말로 먹고산다니 그거 참 우습구나!” 하며 혀를 차시더란다. 옛날 노인이 보시기에 일 같지도 않은 일로 먹고사는 인구가 적잖다. 곰곰 경전의 문자 속을 읽고, 오늘을 위한 뜻으로 풀어서 말해야 하는 종교인도 그 가운데 하나다. 쌀도 보리도 못 되는 말과 글 따위로 사는 게 미안하다면 말 한마디, 글 한 토막이라도 밥이 되고 옷이 되게 해야 마땅하리라.

그렇긴 한데 종교인이라면 되도록 사회적 발언을 삼가는 게 이롭다. 아예 현실과 거리를 두고 지내는 것도 그다지 나쁜 선택은 아니다. 여름에 수재의연금, 겨울에 연말성금 이렇게 두어 번의 성의만 표시해도 사람 점잖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자고로 종교인이라면 그 정도를 넘어서지 말아야 한다고 확신하는 자들이 다르게 생각하는 이들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 어떤 지당한 말씀이라도 누군가는 서운하게 만든다는 이치를 감안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든 상관 않겠다는 오불관언이 상책일지 모른다.

원주 사람 장일순(1928~1994)의 일화다. 시골 아낙이 딸 혼수비용으로 모아둔 거금을 기차에서 몽땅 소매치기당했다며 찾아와 울고불고 매달렸다. 선생은 아낙을 돌려보내고, 원주역으로 가서 소주를 시켜놓고 노점상들과 얘기를 나눴다. 그러기를 사나흘, 돈 훔친 작자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를 달래서 도로 받아냈다. 선생은 그 후로 가끔 역에 가서 그 ‘쓰리꾼’에게 밥과 술을 사주며 이렇게 말하곤 했다. “미안하네. 내가 자네 영업을 방해했어. 한 잔 받고 용서하시게나….” 쓴 소주 한 잔을 받고 막대한 영업 손실을 감수해야 했던 소매치기의 심정이 궁금하다. 그런데 한 번으로 그쳤으니 망정이지 사사건건 그래서는 안되느니라 간섭하고 나섰다면 천하의 장일순이라도 별 수 없었을 것이다.

입으로만 사랑타령 자비타령이지 어째서 현실을 외면하느냐는 꾸지람을 흔히 듣는데 종교계라고 고충이 없는 것은 아니다. 2011년 3월 한국천주교 주교회의가 “4대강 사업이 우리나라 전역의 자연환경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힐 것으로 심각하게 우려”한다며 정부의 야심찬 프로젝트를 반대하고 나선 적이 있다. 당시 불교계도 “우리 땅에 대한 무례이고 모독”이니 “지켜보고만 있다가는 우리 모두 씻을 수 없는 범죄자가 될 것”(법정 스님)이라며 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제정신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해야 할 당연한 말씀이었다.


민주평통 종교인도지원위원회 영담 스님과 성타 스님 등 참석자들이 4대강 사업과 대북 지원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_연합뉴스


하지만 교회 안팎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일간지 1면에 광고를 낼 만큼 재력을 갖춘 신도들은 “성당에 나가기가 무섭다”면서 엄포를 놓았고, 그런 광고를 덥석 문 신문들은 “토목 전문가도 아닌 주교가 무슨 근거로 치명적 자연 손상을 운운하는가” 하면서 한껏 꾸짖고 빈정거렸다.

주교들은 당황했다. 평소 이런 푸대접을 받아본 적도 없거니와 “닥치고 일치”를 강조해온 지도자들은 무엇보다 교회의 분열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보다 못한 추기경이 파괴적 개발은 반대하나 발전적 개발은 찬성한다는 요지로 봉합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제 그만 물러나시라는 타박만 듣고 끝났다. 4대강만큼은 아니지만 교회도 깊은 상처를 입었다. 그것 봐라, 공연히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 분란만 일으키지 않았느냐는 비난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모처럼 세상의 아픔에 공명했던 주교회의는 위축되었다.

이듬해 봄 후쿠시마 원전대폭발 1주년을 맞아 “정부의 핵발전 확대정책에 반대하는 입장을 발표하는 문제”를 주요 안건으로 채택해놓고는 아무 결정문도 내지 못한 채 폐막했다. 탈핵선언이 자칫 4대강 반대의 경우처럼 자중지란을 일으킬까봐 조심스러웠던 모양이다. 총선을 앞둔 시점이라서 더욱 그랬다.

말과 글로 연명하는 자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에 이 나라는 ‘지옥 조선’이 되고 말았다. 이제 어디에 대고 “보아라,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구나!”를 외쳐야 할지 모르겠다. 설교자의 직무란 본시 “이러다가는 망하고 말리라!”면서 사회의 안일과 교만의 경각심을 일깨우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생은 망했다고 믿는 젊은이들이 절반에 육박하고 있으니 그럴 일도 별로 없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주축은 너희가 몰라서 그렇지 이만하면 너끈히 새 누리라 할 만하다고 믿는 노인들이다. 그 앞에서 내일은 또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사나운 승냥이 두 마리가 양쪽에서 으르렁거리는 통에 할 말 못하고 끙끙거리는 형세를 그린 글자가 있다. 바로 감옥 ‘옥(獄)’이다. 말씀이 처한 그런 사회적 형편을 일컬어 ‘지옥(地獄)’이라 한다.


김인국 | 청주 성모성심성당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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