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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에 젖퉁이라는 단어로 시작되는 문자를 받은 적이 있다. 두 번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지만, 그 문장은 지금도 여전히,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기억이 난다. 조사 하나 빼지 않고 정확히 그대로 옮길 수도 있으나 지면이 더러워지므로 생략. 대략의 전후사정을 추측해보면 이렇다.

그날 아침 모 신문에 모 선배와 함께한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문자를 보낸 그 사람은 모 신문을 너무나 증오했고, 모 선배는 잘나가는 베스트셀러 작가지만 자신이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었으며, 내가 그 신문에 그 작가와 인터뷰를 한 일은 권력에 기대 뭔가 얻고 싶은 이유에서 비롯되었다고 여겼고, 그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믿었으므로, 경고를 보내 따끔하게 혼을 내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저녁에 문자를 보냈다. 뭐 주워 먹겠다고 빨아주고 나대느냐, 너 아직도 젖퉁이 내놓고 술 처먹고 다니느냐, 내가 지켜보고 있다. 대략 이런 내용.  

말 그대로 모골이 송연해지는 문자였다. 그 저열한 단어들의 나열은 차치하고, 언젠가 나를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 어디선가 또 볼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것. 공포영화가 생각났다. 언제 어디라도 방심하지 마라, 지켜보는 눈이 있으니, 나는 네가 지난 일요일에 한 짓을 알고 있다 등등. 문자에 따라온 전화번호를 눌러보았지만, 당연하게도 없는 번호라고 했다. 비겁하게.

이런 짓을 하는 자 누구인가 궁금했다. 다음날 경찰서로 갔다. 적어도 IP 추적은 가능하지 않겠는가. 이러저러 물어물어 앉은 곳은 사이버수사대. 담당자에게 사정을 얘기하고 휴대폰을 건넸다. 그는 다른 문자가 더 없느냐고 물었다. 그거 하나라고 답했다. 그러자 그는 휴대폰을 다시 내게 건네고는 몸을 뒤로 빼며 말했다. 그럼 안돼요, 이게 반복되어야 하거든요, 한 번은 반복이 아니죠, 적어도 두 번 이상 되면 그때 다시 오세요. 그러니까 이런 문자가 한 번 더 오기를 기다리란 말입니까? 원칙이 그래요, 구성요건이 안된다는 뜻이죠, 지속적으로 반복될 때 수사할 수 있어요, 이 정도로는 안돼요. 허탈하게 경찰서를 나왔다. 거기까지 갔으니 어떻게 사정이든 부탁이든 으름장이든 해보고 싶었으나 그러지 않았다.

뭐 이깟 것 가지고 여기까지 왔느냐는 태도.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시선 때문이었다. 문자를 확인하고 고개를 들었을 때 제일 먼저, 문자에 언급된 바로 그 신체부분을 스윽 훑고 지나갔던 것. 도대체 어떻게 하고 다니기에 이런 문자를 받았느냐는 의심의 눈초리. 의도적으로 그런 것은 아니었으리라 생각한다. 저절로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문장은 그렇게나 힘이 세다. 그냥 내 느낌일 뿐이라고 부정한다면 항변할 수도 없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옷깃을 여미고 조용히 그곳을 빠져나오는 것뿐.

그냥 잊자 했다. 치졸하게 숨어서 힘을 과시하는 사람은 그저 긍휼히 여기고 말자,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익명의 비겁한 문자는 다양한 방식으로 힘을 행사했다. 내가 무얼 잘못한 걸까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고, 외출하기 전 스스로 옷차림을 검열하고, 사람들이 많은 곳은 피하기 시작했으며, 나와 친하지 않은 사람은 일단 의심하고,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공간에만 출입했다. 그 문자는 현재뿐 아니라 과거와 미래에까지 작용했다. 그리고 내 사적인 공간과 공적인 공간을 두루 장악했다. 가야 할 곳과 가지 말아야 할 곳, 안전한 곳과 안전하지 않은 곳. 차라리 숨어 있는 게 나았다. 

무엇보다 참을 수 없는 건 내가 내 몸의 일부분을 미워하게 된 것이었다.

나는 내 가슴을 좋아했다. 그러나 그것이 젖퉁이라는 천박한 단어로 바뀌어 익명의 비겁자에 의해 발설된 순간, 그토록 좋아하던 가슴에 모든 탓을 돌렸다. 왜 그렇게 생겨 먹어가지고, 단지 너를 가졌다는 이유로 공격을 받아야 하나, 다 너 때문이야, 없애버리고 싶어. 나는 아주 몸을 숨겼다. 그 사람이 노린 바대로 된 것이었다. 경고와 협박, 힘의 과시, 장악. 그런 날들은 꽤 오래 지속되었다. 내 몸을 미워하고 내 몸을 감추던 날들.

다시 내 몸을 사랑하고 공공의 장소에도 나가게 되었지만, 그 문자의 기억은 결코 지워지지 않았다. 경찰서에서 나오던 순간도 잊히지 않는다. 사이버안전국으로 확장되기 전 이제 막 수사대라는 이름을 달고 있던 오래전, 그들의 업무에 견주면 아무것도 아닌 일. 요즈음의 살벌한 사이버테러들에 비하면 정말 별것도 아닌 일. 요새의 폭격 같은 댓글도 아니고 질병 같은 조리돌림도 아니었는데.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이렇게 완전하게 남아 있는 문장의 기억이라니. 현재로서는 그것이 가장 억울하다. 아름다운 시의 구절도 아니고 인생의 아포리즘도 아닌, 더럽게 추접한 단어들의 조합을 기억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

이제쯤 잊었나 생각했는데, 건강진단을 받다가 무지막지하게 아픈 기계 앞에서, 기어이 다시 기억나고야 말았다. 딱 이런 아픔, 딱 이런 불쾌함이었던 것 같았다.

<천운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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