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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옹호가 무슨 뜻인가?’ 장애여성 자조모임 구성원들이 권익옹호 활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누군가 묻는다. 지지하는 것, 이야기 들어주는 것, 방법을 찾는 것, 맞서는 것, 공감하는 것, 함께 분노하는 것…. ‘옹호: 편을 들어 지킨다’는 뜻에 말들이 보태지며 의미가 살아난다. 고민을 처음으로 되돌려 놓는 듯한 이런 질문은 서로가 서 있는 다른 위치를 보이게 하며 결국엔 새로운 방향을 열어주기도 한다. 내가 기본이라고 생각했던 위치와 자리가 누군가에겐 치열한 한복판일 수도 있으니까. 나의 경험을 말함으로써 우리의 말을 재구성해 가며 비로소 나와 우리의 말이 될 때 자조모임의 권리옹호 운동은 제 방향을 만들어 갈 거다.

인권운동이란 무엇인가? 얼핏 ‘인간의 권리를 위한 활동’이라는 명확해 보이는 답에 작정하고 진지한 이들이 있다. “권리 언어의 힘과 영향력이 배제와 폭력의 언어들과 뒤섞여 요동치는 이때, 우리의 언어를 돌아”보며 “몸과 마음을 다잡고 다시 말 걸기를 시작”하는 ‘인권운동’ 창간호가 작년 12월에 출판된 것이다. 2월21일 ‘인권운동’ 좌담회에서 밝힌 대로 ‘길게 고민해야 할 관점’을 인권활동가들이 모여 함께 써냈다. 좌담을 포함한 5편의 글들은 고통과 피해를 경험한 이들 곁에서 인권운동과 인권활동가들이 겪어나가야 할 고민을 톺아낸다.

류은숙은 “차이를 드러냄으로써 새로운 공통을 만들고, 또 차이를 새로 해석하고 공통을 거듭 또다시 만드는 과정이 인권 언어의 숙명일 것”이라며 자신의 글 제목처럼 이야기에 기대어 말을 이어갈 것을 제안한다. 나영정은 “국가가 구조적인 차별과 불평등을 해소하기보단 검증된 피해자를 보호하는 역할을 자처하고 강화할수록 낙인은 피해자에게 더욱 덧씌워지고 이러한 구조가 유지되는 결과를 낳는 데 일조한다. 어떤 피해가 더 중요한지를 경쟁함으로써 이 피해를 만들어내는 힘을 놓치는 늪에 빠지지 않기”를 말하며 소수자의 위치에서 다시 쓰는 인권의 보편성을 주장한다. 미류는 “고통에 응답할 줄 아는 사람들의 관계 속에서 정체성은 저항의 근거로 변환한다. 함께 실패하는 시간을 견디며 답을 찾아가야 할 때”라며 인권운동의 위치 이동을 고민한다. 좌담은 고통을 경쟁할 수밖에 없는 시대에 고통과 고통 받는 이들에 대한 깊은 사유를 들려준다. 정정훈은 인권운동의 이념, 방식 자체를 연구하는 작업을 지속해 왔다. 이 지면에선 과거, 현재 인권운동이 놓여 있는 지평을 분석하고 앞으로의 길을 탐색한다.

여혐엔 남혐, 차별금지법엔 역차별로 받아치거나, 모든 해결책을 국가에 의지하는 방법으로는 서로가 처한 고통의 원인을 제대로 찾기 어렵다. 인권운동은 차별이 개인의 몫이 되지 않고 불평등한 구조를 반대하며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는 보편적 토대를 고민한다. ‘보편’에서 누락된 이들의 경험과 고통 곁에서 ‘보편’을 의심해야 우리가 사는 인권의 토대가 단단해진다. 누락된 소리를 들으려면 소란을 거칠 수밖에 없다. 어쩌면 인권은 정박과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돛과 닻이 아닐까 싶다. 권리화라는 닻으로 나의 경험을 말하고 싸우되, 피해자화를 넘어선 평등한 자유란 돛으로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어야 한다. 돛의 방향을 향하게 하는 것은 소란이 일으키는 바람일 것이다. 언제나 순항일 수 없는 이 길에 대해 거듭 고민하자고 인권활동가들이 제안한다. 피해·피해자에 대해 쉽게 동정하거나 심판하는 위치에서 동료의 자리로 이동해 소란한 토론으로 응답해 보는 건 어떨까.

<이진희 장애여성공감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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