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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기호 연세대 원주캠퍼스 강사


이번 학기에 학생들과 함께 ‘우리에게 학교란 무엇인가?’를 토론하고 있다. 대다수 학생들의 학교에 대한 기억은 과히 좋지 않다. 학교가 자신들의 성장에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학생들보다는 차라리 방해나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학교를 바꾸기 위해 교단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동료 교사들이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얼마나 절망할까 싶었다. 이때 한 학생이 질문의 방향을 전혀 다르게 바꿨다. 그 학생은 자기에게 교사가 어떤 존재였는지가 궁금한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자신은 어떤 존재였는지를 묻고 싶다고 말했다.


이 학생의 질문 덕분에 이번 총선에서 수많은 정치 담론들이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단박에 파악됐다. 이번 선거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가 아니라 우리가 이 선거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가 거의 질문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선거가 시작되면 우리가 투표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 어느 정당을 지지하는지, 혹은 인물을 보고 투표를 할 것인지 아니면 정당을 보고 투표를 할 것인지 저들은 속사포처럼 질문을 쏟아낸다. 이 모든 질문은 ‘당신에게 이번 선거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로 수렴된다. 그래서 이번 선거는 누군가는 현 정권에 대한 심판이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지역일꾼’을 뽑는 일이라고 답한다.


 질문도 대답도 상투적이다. 자고로 상투어란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현실을 하나도 드러내지 못한다. 아니, 오히려 상투어란 우리를 철저히 현실과 만나지 못하게 하는 그런 언어적 장치이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저들의 질문들에 성실히 대답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저 학생처럼 질문의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우리에게 정치가 무엇인지를 묻는 것이 아니라 정치에게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물어야 한다. 그들은 우리를 무엇으로 취급하고 있는 것일까? 학교에서 학생은 ‘교실 사물함보다도 존재감이 없는 존재’라는 한 학생의 말처럼 이번 선거에서 우리의 현실에 대한 이야기는 어지럽게 걸려 있는 현수막보다도 더 존재감이 없는 것은 아닐까?


우리의 현실을 가리는 상투적인 장치, 그것이 바로 추문이다. 따라서 선거는 추문으로 시작해서 추문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돌아보자. 여당과 야당을 가리지 않고 지금 이 선거에서 생사라도 걸려 있는 것처럼 ‘논쟁’되고 있는 여러 가지 ‘추문’들은 도대체 우리를 무엇으로 취급하고 있는가? 실상 정치적 추문이란 그들이 이번 선거의 의미라고 우리 눈앞에 들이미는 상투적 ‘증거’물에 불과하다. 따라서 저들의 저 생사를 건 ‘추문의 정치’에서 ‘우리’는 배제되고 ‘우리의 현실’은 삭제된다. 오로지 추문이라는 그들의 상투어 안에서만 ‘유권자’로서 존재가치를 가지게 된다.



4월11일, 우리는 절대 추문의 덫에 빠져서는 안 된다. 저들 추문의 정치에 빠지지도 말고 추문 때문에 정치에 냉소적이 되지도 말자. 대신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저들의 추문’에 나의 이야기는 없다는 것을 폭로하여 파문을 일으키는 것이다. 정치란 현재의 정치판에서 배제된 사람들이 자신들의 몫을 주장하며 현재의 구도와 판을 흔드는 것을 말한다. 배제된 자들의 이야기’를 정치에 기입하는 것이 정치의 본래적 의미다. 그렇기에 진보신당의 비례대표 1번이 대학 청소노동자인 것과 녹색당 지역구 후보가 농사짓던 탈핵 운동가인 것이 저들의 저 시끄러운 추문보다 더 중요한 ‘파문’이다.


당신이 아는 것이 청소밖에 없지 않으냐는 비아냥에 대해 내 삶인 그 청소가 한 번도 이야기되지 않았기 때문에 국회에 내가 필요하다는 대답이야말로 정치적 파문이다. 따라서 우리의 투표는 저들의 추문에 동참하는 것이 아니라 파문을 일으키는 정치가 되었을 때 정치로서 진정한 의미를 가지게 될 것이다. 4월11일, 파문을 일으키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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