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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민주국가에서 시민들이 공직자를 뽑는 의사결정 절차인 선거는 민주정치, 나아가 민주주의 그 자체를 떠받치는 핵심적인 장치라고 할 수 있다. 대통령선거나 총선이 있는 날은 법정공휴일로 지정하고, 각급 선거가 있을 때마다 선거관리위원회나 언론매체 등이 투표참여를 적극 독려하는 까닭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시민의 투표권 행사를 장려하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방해하거나 훼손하는 경우가 적잖게 발생하고 있다. 4·11총선을 맞아 민주노총이 접수하고 있는 투표권 침해 e메일 제보의 내용을 보면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대기업들이 선거일 정상근무 방침을 정했는가 하면, 대형마트를 비롯한 유통서비스 업체들과 택배 등 운수업체 등도 선거 당일 출근 지시를 내림으로써 투표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노총이 공개한 제보는 “10년 동안 근무하면서 선거일에 쉬어 본 적이 단 한번도 없다”고 개탄하는 것에서부터 “투표일 전일 근무시키는 나쁜 인간들” 등 사업주들을 비난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생생하고 다양한 현장의 목소리들을 담고 있다.
투표권을 침해하는 곳은 사업체들뿐만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모교로 유명한 경북 포항의 ㄷ고교 2학년생 305명과 교사 10여명은 총선 당일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는가 하면 경기도지역 14개 초·중·고교도 선거일을 끼고 수학여행이나 체험학습을 떠난다고 한다. 또 인천의 몇몇 학교는 교직원들과 전·현직 학교운영위원들이 야유회를 갖거나 학생들을 등교시켜 자율학습을 시키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행사를 갖는 것은 교사들의 투표권을 박탈한다는 점 외에 교육적인 측면에서도 문제가 많다. 즉 학생들에게 ‘선거일은 놀러가는 날’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줌으로써 참정권을 왜곡하고, 민주시민의 소양을 길러준다는 학교의 책무를 저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선 사업장에서 투표권 침해가 근절되지 않는 까닭은 노동자들의 권리에 둔감한 사업주들의 전근대적인 의식과 감독관청의 안이한 자세 등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근로기준법 10조에 따르면 사용자는 근로자가 근로시간 중 선거권이나 그 밖의 공민권 행사를 위해 필요한 시간을 청구할 수 있으며, 이를 위반하면 2년 이하의 징역과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일단 출근한 노동자들이 사업주에게 ‘투표하고 올 테니 시간을 달라’고 하기는 어렵고, 그런 요청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사업주를 고소·고발하기는 더더욱 힘들다. 따라서 사업체들은 가능한 한 선거일은 법정공휴일로 지정한 취지에 따라 휴무를 하고, 불가피하게 정상업무를 할 때는 종업원들의 투표권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 이를 위반한 사업체는 당연히 법에 따라 조처해야 한다. 직장과 학교에서 투표권을 보장하는 것은 일상 속에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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