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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정부가 2년차 끝에서 ‘혹독한 겨울’을 맞고 있다. 끝 모르던 고공지지율은 어느새 50% 선도 무너졌다. 원인이 된 경제 부진은 좀체 반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속도를 내던 한반도 평화 바퀴도 멈칫거리며 위태하다. 바람은 사납고, 하늘엔 눈폭풍을 머금은 먹구름마저 보인다.

지지율보다 심각한 변화는 문재인 정부를 향한 태도들이다. 지난 1일 3년 만에 열린 대규모 민중대회에선 “문재인 정부의 개혁 역주행”을 질타하는 목소리들이 쏟아졌다. 진보 성향 야당은 물론 자유한국당조차 “개혁의 의지도, 능력도 없다”고 조소한다. 한국당부터 민주노총 등까지 ‘개포(개혁 포기) 정부’로 비판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지금 문재인 정부는 약점을 보인 맹수와도 같다.

 ‘청와대는 무능하고, 정부는 일하지 않는다’고들 한다. 문재인 대통령 개인기로 버텨온 시간들이 종착점에 다다랐다고도 한다.

 물론 다 동의하긴 어렵다. 국정은 한두 가지 관점만으로 재단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청와대 권력에 대한 판단도 상이하다. 청와대 의지가 모든 일의 관건으로 보는 게 통념이지만, 한국정치 구조에서 국회 뒷받침 없이는 ‘고립된 권력’일 뿐이란 반론도 만만찮다. 당장 ‘재판 거래’ 의혹 등 선을 넘은 농단에도 사법개혁은 한걸음을 제대로 떼지 못하고 있다. “개혁 포기 비판은 재벌·관료·법조·언론 등 이 나라 상부 권력의 강고함을 모르고 쉽게 하는 순진한 이야기”(여권 관계자)라는 항변도 나온다.

 ‘개포 정부’ 비판이 일정 부분 정치적 수사라 하더라도 께름칙함은 남는다. 인사·노동 정책 등의 ‘무능’ 진단을 전면 부정키 어렵거니와 무엇보다 지금 문재인 정부의 무력함 때문이다. 취임 초기 ‘100일 작전’처럼 관료들을 몰아치고, 포퓰리즘 소리를 듣더라도 현장으로 달려가 가려운 곳을 긁어주던 청신한 기상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누적된 피로와 그 부산물인 ‘현실과 타협’이란 불온함이 배회한다.

 어떤 정부든 미래세대와 국가·사회의 전진을 위해 뚫고 나가야 할 몫이 있다. 그것을 두고 ‘개혁’이라고 한다. 보수·진보와 무관하다. 다만 개혁에도 방법상 층위는 있다. 혁명이든 개혁이든 ‘현실과의 조응’이란 거대한 숙제 앞에 서 있기 때문이다.

 개혁은 현실의 제도를 바꾸든가, 아니면 그런 제도 변화를 ‘당연한 미래’로 우리 사회 지향점을 고정시키든가, 그도 아니면 그 방향으로 의식 변화를 이끌어 내는 일이다. 건설 중인 원전 중단에는 실패했지만 공론화위 방식을 통해 탈원전 원칙을 합의해낸 것은 두번째 단계 어름은 될 것이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당장 사회제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일이 선한 명분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결국 세 가지 층위는 개혁이 현실과 조응하는 과정이다. 타협은 이 세 범주에 미치지 못하고 멈춰서는 것이다. 그것이 ‘개포 정부’의 길이다.

 그 점에서 지금 문재인 정부는 과연 충분한 일을 하고 있는가. 지금 문재인 정부의 실패는 현실에 대한 조응과 타협이 구분되지 않는 것으로 비치는 부분이다. 소득주도 성장은 ‘포용적 성장론’으로 강하게 붙들고 있지만,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등 ‘준비 부족’ 의혹에 전체가 공격받는 상황에 몰렸다. 실수에 대해선 솔직히 성찰하고 보완책과 함께 우리 사회 미래로 설득해야 했지만, 조치는 불협화음을 낸 경제 투톱을 교체한 것뿐 어떤 실패에 대한 교정인지도 명확지 않다. 공론화위로 미뤘던 대입제도 개편안은 결론 없이 되돌아오면서 교육 무능의 상징이 됐다. 재벌 개혁은 ‘실종’인지 아닌지조차 설명이 없다. 모두 정부가 어려움을 설득하기보다 우회하는 것으로 비친다. 그 점에서 지금 위기는 ‘실력과 용기의 위기’이기도 하다.

 ‘위기의 겨울’에 맞닥뜨려 문재인 정부는 국정 전열의 정비를 요구받고 있다. 어떤 정부든 개혁이 체계적이기 위해선 권력의 공고화가 필수적이다. 권력을 더 움켜지는 것이 아니라 폭을 넓혀야만 이룰 수 있다. 국회 다수 확보를 위한 협치·연정과 같은 현실적·정치적 수단을 적극 추구해야 한다는 의미다. 구체적으론 선거제 개편부터 개헌까지 현재의 정치구조를 변화시키는 일이다. 그리고 적폐청산으로부터 시작된 우리사회 개혁 과제들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각 과제들의 현실적 목표도 분명히 해야 한다. 그것을 민심과 지지층을 향해 설명하고 끊임없는 소통으로 공고히 해야 한다.

 현실과의 조응에 실패한 ‘정치권력’이 갈 길은 두 가지뿐이다. 역대 정권의 3년차 현상들처럼 ‘역사와 대화하는 대통령’으로 현실의 소통과 더욱 멀어지거나, 아니면 온전히 현실에 매몰되는 것뿐이다. 어느 쪽이든 촛불이 이룬 이 역사적 시점을 “그저 관청의 이름이 바뀔 뿐”(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과 같은 회의감으로 이어지게 하는 길이다.

 문재인 정부는 ‘진보는 진보했는가’라는 질문을 숙명처럼 진 정부다. 촛불 민심으로 탄생한 점도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 진보의 가치를 대의했던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잇고 넘어서야 할 운명적 과제 때문이다. ‘개포 정부’의 주홍글씨를 꼭 지워내야 하는 이유다.

<김광호 정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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