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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교육개혁관계장관회의에서 서울 소재 대학들의 수능 정시 비율 상향 등을 포함한 교육개혁 방향 전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수능’ 날이다. 1년에 한 차례 잠시 대한민국이 멈춰 서는 날이다. 꼭 1년 전 큰아이 수능 날, 종착점의 설렘은 고작 한 움큼, 두려움과 간절함으로 어깨에 멘 가방을 추스르며 돌아서던 뒷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30여년 전 고3 시절 밤마다 주방 한구석에 물 한 그릇을 떠놓으시던 어머니 모습도 겹쳐졌다.
이처럼 한국에서 입시는 집안의 큰일이다. 모두가 초조해하고 간절해진다. 그 하루에 세상이 결판이라도 날 것처럼….
“아빠! 문재인 아저씨 왜 그래?”
며칠 전 둘째가 불쑥 던진 말이다. 평소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호감을 표시하던 아이였다. 하지만 ‘정시 확대’만큼은 이해할 수 없다는 투였다. 문제의 그 2022학년도 입시생이다. 수시와 정시 갈림길에 선 고1 교실이 꽤나 설왕설래하는 모양이다. 단순히 제도 변화를 불안해하는 게 아니었다. 따라붙은 말은 “강남 학원 애들만 좋은 일이란 걸 몰라”였다.
“많은 학생들은 ‘정시 100% 반영’, ‘학생부종합전형 폐지’를 외친다. (…) 학종을 못 믿겠다는 것과 있는 자에게만 유리하다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온전한 정직함을 담보하지 못할 대안은 없는 편이 낫다.”
지난여름 문 대통령이 청와대 전 직원에게 선물한 책에 나오는 내용이다. 바로 화제의 책 <90년생이 온다> 일부다. 이를 보면 ‘조국사태’ 초입 입시부정 문제가 불거졌을 때 문 대통령의 답은 이미 결정돼 있었을 것 같다.
누구는 말한다. 하루에 실력대로 시험으로 결판내는 게 제일 깔끔한 것 같다고. 그게 기회가 열려 있는 거라고. 정말 ‘실력대로’일까. 혹 운이 끼어들 여지는 없나. 실력이란 건 정말 온전히 자신의 능력이나 노력인 건가.
사실 우리는 ‘과외 금지 세대’였다. 그래서 주말이면 학원을 전전하고, 집밥보다 편의점·분식집이 더 익숙한 유년과 사춘기는 면했다. 공부도 덜 강제적이었다. 선택 의지가 컸다. 물론 나중에 보니 그때도 서울, 소위 강남에선 몰래몰래 사교육을 했더랬다.
하지만 사교육의 모든 고삐를 풀어버린 지금은 사교육이 성적의 바로미터쯤으로 여겨지는 세상이다. 사교육을 뒷받침할 부모의 ‘경제력’과 ‘시간력(돈만으로 안되는 건 이 영역이다)’이 아이 잠재력의 척도쯤으로 치부된다. 그 최전선 욕망들이 만나는 곳이 ‘강남’이고 ‘학원가’인 것은 모두가 안다. 학종이 ‘부모 정보력’에 부패할 수 있는 제도라면, 정시의 단판 승부는 ‘부모 경제력’에 쉽게 포획당할 수 있다.
실상 교육만큼 ‘성찰 없는 목소리’들이 난무하는 곳도 없다. 그게 지금의 교육을 만들었다. 그만큼 교육은 ‘여유 없는 이해들’이 충돌하는 장이다. 지난 대선 당시 한 후보 진영은 ‘대학입시 공약’을 의욕적으로 검토한 적이 있었다. ‘입시 단순화’에 대한 젊은층 호응에 고무돼, 꽤 거금을 들여 포커스 그룹 인터뷰 등을 진행했다. 하지만 결론은 “입시는 답이 없다”였다. 지역과 경제적 배경에 따라 팽팽하게 갈렸다. 결국 공약화는 포기했다.
그나마 이 ‘만인의 투쟁의 장’에 숨통을 틔우는 게 다양성이라 생각한다. 이 공동체가 더 평등하고 다양한 배경과 개성·소망을 가진 이들이 조화를 이루는 곳이길 바란다. 그게 이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부족함은 있어도 그런 관점을 진전시키려 노력해왔다. 학종으로 대표되는 지난 십수년간 진전시켜온 제도 역시 불공정함이 없다고, 경제적 격차와 무관하다고 자신할 수 없다. 그러나 과거와 같은 ‘단판 입시’로 되돌려져 받게 될 사회적 비용과 불평등·부조화보다 크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정시 확대는 지난 세월 노력해온 이 방향을 일거에 무너트리는 일이 될 수 있다. 물론 이 또한 이 무대 위의 한 의견일 뿐이다.
‘공정’의 핵심은 기회의 창을 더 넓게 여는 것이 돼야 한다. 양적·질적 모두에서다. 개인의 능력과 경제적 배경이 다른 상황에서 형식적 기회 균등만으론 ‘결과의 정의’를 이룰 수 없다. ‘정의’는 공동체에 존재하는 차이를 줄이고 평등을 확대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단판 입시’는 운에 맡기는 도박이거나 다른 출발선에 선 이들만의 ‘정의’가 될 것이다. 학종의 다양성 또한 존립의 열쇠인 ‘신뢰’를 확보하는 데 실패할 것이다.
정시냐, 수시냐 선택은 쉽다. 선택들을 모으는 과정이 진정한 본질이다. 그건 긴 호흡과 인내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문 대통령의 ‘정시 확대’ 언급이 아쉬운 것은 이 부분이다. 조금 모자라고 늦더라도 ‘공론’의 길을 여는 게 아니라, 빠른 결론에 기울었던 게 아닌가 하는 우려다. 문재인 정부가 이미 한 차례 ‘입시 공론’을 열었음에도 합의를 못 냈음을 안다. 이는 이 문제의 지난함을 보여준다. 진정한 ‘소통 정부’는 숙의에 숙의를 거듭한 여론과 함께일 때 진짜 힘을 발휘할 것이다.
<김광호 기획에디터·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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