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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는 집권세력이 드물게 ‘날것’ 그대로의 민심을 만나는 통로다. 민심과 거리를 두고 싶어 하는 권력도 선거만큼은 피해갈 수 없다.

4·3 보궐선거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여권 지지층의 마음이다. 단순히 선거 결과로 나타난 패배가 아니다. 경남 통영·고성에서 자유한국당 후보가 받은 표는 4만7000여표다. 지난해 지방선거 지지 표심(4만6000여표)이 고스란히 투표장을 다시 찾은 것이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득표는 지방선거(4만6700여표)의 반토막에 가까운 2만8400여표(60.8%)에 그쳤다. 여권 지지자들은 표심을 포기하는 것으로 정치적 평가를 한 것이다. 국정 실패는 지지자들을 부끄럽게 한다.

집권 3년차 봄을 지나고 있는 청와대 주변에선 “어렵다”는 말이 들린다. 4·3 보선 결과만큼 침울한 공기가 주변을 감돈다. 그간 국정 지지율 하락에도 하지 않던 토로다. “좀 도와달라”는 호소도 함께라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일 인천 연수구 경원루에서 열린 확대 국가관광전략회의에 앞서 이낙연 국무총리, 박남춘 인천시장과 함께 센트럴파크 전망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의 현 상태는 5개 정도의 이상증상으로 요약될 듯하다. 무엇보다 ‘민생경제 성적표’가 국정 전체를 짓누르고, 한반도 비핵화의 교착, 검찰·재벌 등 적폐 개혁 부진, 이로 인한 지지율 저하와 국정 자신감 하락이다. 그 결과는 ‘3년차 증후군’으로 이야기되는 조급함과 무기력의 교차다.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 퇴진을 이끌어낸 스튜어드십 코드 등 작은 ‘변화’들은 눈에 띄지 않는다. 개혁정부의 숙명인 도덕성의 부메랑도 가시화하고 있다. 한마디로 ‘일모도원’(日暮途遠·갈 길은 먼데 날은 저문다)의 형국이다.

하지만 위기를 곱씹어 보면 본질은 북·미 대화의 궤도 이탈도, 경제의 어려움 때문도 아니다. 무엇보다 권력 내부의 ‘기능부전’ 징후가 심각하다.

당장 ‘용인(用人)’에서 이상징후가 도드라진다. 지난 주말 청와대 대변인과 두 명의 장관 후보자가 낙마했다. 모두 부동산 투기 의혹 등 도덕성이 발목을 잡았다. 집 3채로 수십억원의 차익을 올린 부동산 정책 주무장관, 아들에게 스포츠카를 사주려 전세금을 올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 등 인사의 원칙과 검증이 작동하는지 의심받고 있다.

촛불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이기에 실망감은 더 크다. “혁명이란 게 뭐야? 기껏해야 관청 이름이 바뀔 뿐”이라는 미도리(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의 항변처럼 지지난 겨울의 진통이 그저 몇몇 자리 얼굴이 바뀌는 것으로 끝나는 허탈감이다. 이 경우 민심은 문재인 정부 탄생의 근원을 의심할 수밖에 없게 된다. 한 여권 관계자는 “대통령이 사람 하나 마음대로 쓰는 것도 사실 쉽지 않다. 문 대통령은 대선 후보만 5년이었다. 이런저런 신세와 인연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모든 정부에서 3년차는 ‘시련’이다. ‘흔들림’의 시작이었다. 집권의 자신감과 참신한 기상은 사라지고 안일이 스며들며, 남은 시간들을 헤아리기 시작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부동산과의 전쟁’에 이율배반이었던 김의겸 전 대변인의 고액 부동산 거래는 이미 정권 이후 각자도생의 번뇌가 청와대 공기를 짓누르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여기에 정부 초반 국정의 발목을 잡은 ‘트라우마’들도 자리 잡기 시작하는 때다. 노무현 정부의 ‘분열 정치’ 논란, 이명박 정부의 ‘쇠고기 촛불’, 박근혜 정부의 ‘세월호 무능’이 그런 예들이다. 권력은 위기 본능에 깜짝 조치를 내놓지만 ‘신박’한 결과보다는 처참한 실패로 이어지는 게 통상이다. 권력이 이상조짐을 보이면 그 앞에서 풀처럼 가지런히 눕던 ‘관료 정치’의 독성도 머리를 삐죽삐죽 내밀 것이다. 권력 획득을 권위의 획득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지지율’의 껍데기가 걷힐 때 남는 것은 이처럼 스산하다.

실상 모든 개혁은 ‘톱다운’이다. 혁명과 달리 개혁은 리더십에 의해 ‘통제되는 혁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리더십은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이다. 개혁 리더십의 구성요소는 ‘도덕성·실력·용기’다. 도덕성은 반개혁의 저항을 무력화하는 출발점이고, 실력은 성과를 통해 개혁의 지지를 유지하는 힘이며, 변화를 위한 소통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바로 개혁 권력의 정체성이다.

문재인 정부가 시련에 위축되지 않고 용감하게 도전하던 ‘집권 초 100일’로 돌아갔으면 한다. 그 시작점은 실패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하는 용기일 터다. 당장 일그러진 인사의 책임은 오롯이 인사권자에게 있다. 선출직 권력인 대통령은 참모를 대신 벌하는 것으로 자신의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참모를 감싸는 것은 곧 스스로의 허물을 덮는 것이다. 제갈량은 울면서 분신과도 같았던 마속을 베었음(읍참마속·泣斬馬謖)을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1년 뒤 4월(21대 총선)’은 개혁정부 지지층에게 전혀 다른 시간이었으면 한다.

<김광호 정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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