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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 검사에서 사회의 거악, 법 미꾸라지로 변신을 거듭하는 우병우 전 민정수석을 보면서 공포와 분노를 느꼈다. ‘나는 모른다’와 ‘대통령 지시였다’를 적절히 섞어가며 법망을 피해가는 우 전 수석에 한국의 사법 시스템은 만신창이가 됐다. 5번의 소환조사, 3번의 구속영장 청구 끝에 우 전 수석이 지난 15일 새벽 구속됐다. 그의 비리 의혹이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한 지 1년 5개월, 검찰이 수사에 나선 지 1년 4개월 만이다. 그의 긴 꼬리가 밟힌 것은 자신의 비리를 파헤치던 이석수 당시 특별감찰관을 불법 사찰한 혐의 때문이다. 직분을 망각하고 권력을 남용한 중대 범죄지만 이번 구속에 적용된 혐의는 그가 받고 있는 비리 의혹 가운데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우 전 수석이 최순실씨를 몰랐다는 게 지금도 이해되지 않는다.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총애하는 청와대 최측근 참모였다. 두뇌 회전이 빠르고 권력 주변 기류에 촉도 남달랐다. 검찰·경찰·국정원·국세청의 공식 문건뿐 아니라 사적 채널을 가동해 우리 사회의 거의 모든 범죄 정보를 보고받았다. 그런 그가 최씨 존재를 모르고 미르·K스포츠 재단 강제 모금 등 최씨의 농단을 알지 못했다고 하니 어처구니가 없다. 그는 문화계 실력자 차은택씨가 대통령을 호가호위하며 정부의 문화융성 사업을 쥐락펴락하고 있었지만 이 역시 낌새조차 채지 못했다고 했다. 장모 김장자씨가 최씨, 차씨와 골프를 같이 쳤다는 정황과 증언이 있는데도 무조건 모른다고 버텼다.

우 전 수석의 효성 사건 처리 과정이 정상적이었는지도 의문이다. 그는 2014년 2월 변호사 시절 ‘효성그룹 형제의 난’에서 차남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을 대리해 장남 조현준 사장 등에 대한 고발 작업을 주도했다. 조 전 부사장 측으로부터 수억원의 수임료를 받았지만 석 달 뒤인 같은 해 5월 청와대 민정비서관에 임명되는 바람에 중도에 사건에서 손을 뗐다. 그런데 그가 청와대에 들어간 뒤 효성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조사부에서 재벌·대기업 비리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특수부로 수사 부서가 바뀐다. 법조계에서는 그가 검찰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설이 분분했다. 그는 청와대 입성 전 수임료 일부를 돌려주는 문제를 조 전 부사장 측과 협의했지만 실제 반환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수임료를 돌려주지 않은 대가로 사건을 특수부에 배당하게 했다면 형사처벌 대상이다.

넥슨이 우 전 수석 처가의 서울 강남 땅을 특혜 매입했다는 의혹도 해소되지 않았다. 검찰은 ‘땅 주인이 우 전 수석 처가라는 사실을 몰랐다’는 넥슨의 주장을 너무 쉽게 인정해줬다. 아파트 전세 계약만 해도 집주인이나 세입자가 누군지 따져보는데 1000억원이 넘는 부동산 계약을 하면서 상대를 알지 못했다는 넥슨의 주장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된다. 투기자본감시센터에 따르면 검찰은 넥슨이 갖고 있던 ‘소유자 인적 사항 정리’ 문서를 확보했다고 한다. 넥슨 실무자들이 부동산 중개업소로부터 받은 이 문서에는 ‘이상달씨 자녀 둘째 이민정, 남편 우병우(서울지검 금융조사2부장)’로 땅 주인이 적혀 있다. 문서 작성 시점은 2010년 9월로 넥슨과 그의 처가가 매매계약을 체결하기 6개월 전이다.

우 전 수석이 변호사 시절 검사장 출신인 홍만표 변호사와 함께 선임계 없이 ‘몰래 변론’을 했다는 의혹도 있다. 양돈 사업으로 높은 수익을 주겠다며 1만여명으로부터 2000억원대 돈을 뜯어낸 ‘도나도나’ 대표 최모씨 사건은 우 전 수석과 홍 변호사가 관여했다는 얘기가 파다했다. 최씨 죄질에 비해 검찰 수사가 무디다는 지적이 있었고, 2심에서 최씨의 주요 혐의인 ‘유사수신행위’에 무죄가 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 대법원은 이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고, 지난 8월 최씨는 징역 9년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8월 윤갑근 당시 대구고검장을 수장으로 하는 특별수사팀을 꾸려 우 전 수석 비리 의혹에 관한 수사를 벌였다. 하지만 검찰은 그의 자택 압수수색이나 계좌 추적은커녕 휴대폰 통화 내역 조회도 하지 않았다. 우병우 수사를 ‘우병우 사단’에 맡겼으니 수사가 제대로 될 리 만무했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국정농단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우 전 수석을 직권남용·직무유기와 특별감찰관법 위반·국회증언감정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지만 최씨와의 유착이나 개인 비리 의혹은 모조리 빠졌다.

구속은 수사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우 전 수석 수사도 이제 시작이다. 최순실 존재조차 몰랐다고 궤변을 늘어놓는 그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한 수사는 의미가 없다. 검찰은 구속 기간 연장 등 최선을 다해 그의 여죄를 밝혀야 한다.

<오창민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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