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파슨스 등 사회학자들은 사회의 기본 기능 네 가지 중 하나라도 제 역할을 못할 때 범죄와 무질서의 증가 등 ‘사회적 고장’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사회구성원들이 규범을 받아들이고 규칙에 따르는 습관을 길러 주는 ‘사회화’, 소질에 맞는 분야에서 노력한 만큼 보상을 받아 생활해 나가는 ‘적응’, 미래를 위해 목표를 세우고 성취해 가는 ‘공정한 경쟁’, 그리고 지친 심신을 달래고 회복하는 ‘휴식과 재충전’이 그 네 가지다. 한국사회는 전쟁 등 사회 외적 요인도 없는데 범죄와 무질서, 사회적 갈등으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우리 사회 네 가지 기본 기능 어딘가에 심각한 고장이 발생했음을 의심케 한다. 그런데 지난 수십년간 우리 사회 각 기능의 ‘불량과 고장’에 대한 지적과 경고는 계속되어 왔다. 그 고장들이 사회 붕괴를 가져오지 않으리라는 안일한 인식으로 무시해 왔을 뿐이다. 이대로라면 성수대교, 삼풍백화점처럼 ‘사회적 붕괴’가 대한민국을 무너뜨릴지도 모른다.

여성가족부 주최로 8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가정폭력 및 아동학대 예방 캠페인'에서 시민들이 캠페인 메시지가 적힌 티셔츠을 둘러보고 있다. (출처 : 경향DB)


하나씩 살펴보자. ‘사회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는 것은 가정과 학교다. 가정폭력과 이혼, 아동학대, 대화 단절 현상은 심해지기만 하고 학교폭력과 집단 따돌림, 공존과 존중 및 배려를 가르치지 않는 학교에 대한 지적과 경고는 반복되었다. ‘적응’ 기능 역시 돈과 권력으로 가치가 획일화되면서 직업에 귀천이 뚜렷해지고 ‘갑질’이 횡행하다 보니 개성과 소질에 맞는 길을 찾아 성실하게 살아가는 정상적인 시스템이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 고액 연봉이나 높은 지위를 보장해 주지 않는 직업이나 역할은 외면받고, 그런 일을 행하는 사람들의 소중함은 무시당하기 일쑤다. 각자의 목표를 세우고, 공정한 경쟁을 통해 함께 성장하고 발전하는 ‘목표 성취’ 기능 역시 망가진 지 오래다. 반칙이 원칙이 되고, 연줄이 지배해 소위 ‘돈 없고 빽 없는’ 사람들은 손해 보고 피해 입고 밀려난다는 지적과 경고 역시 오랫동안 반복되어 왔다. 이 모든 문제에도 불구하고, 치유와 휴식과 재충전을 해주는 기능만이라도 제대로 되어 있다면, 마치 사고나 고장으로 멈춰 선 차가 심혈을 기울인 수리와 정비를 거친 뒤 다시 달릴 수 있는 것처럼,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의료, 문화와 오락으로 대표되는 휴식과 재충전 기능마저 빈부 양극화와 일회성 자극 위주로 왜곡되고 병들어 있다. 가족과 함께 독서와 스포츠, 음악과 미술과 영화 등을 즐기며 재충전하고, 병원과 상담 기능을 통해 치료하고 치유하는 여건과 시설은 도시와 부촌에 집중되어 있거나 비용이 많이 든다. 그렇다 보니 주로 영상매체 속 ‘스타’들의 노래와 연기, 경기를 보며 즐기는 ‘구경꾼’ 역할에 그친다.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건강보조 식품이나 무자격자의 유사 치료행위에 의존하기도 한다. 당연히 감흥과 만족이 크지 않고, 효과적인 치료와 치유가 이루어지지 않아 충분한 휴식과 재충전이 될 리 없다. 피로가 쌓이고 부작용이 생기면서 민감하고 공격적·방어적이 된다. 힘들고 불만스러운 현실로부터 잠시라도 도피하기 위해 술과 마약, 음란물, 폭력, 온라인 패악질 등에 의존하는 사람이 증가한다. 사람의 몸과 기계 모두 ‘이상 증상’이 나타나면 철저한 진단을 통해 원인을 밝혀내고 처방을 찾아 치료나 정비, 수리를 해야 한다.

사회 역시 마찬가지다. 그 기본적인 과정과 노력을 게을리할 경우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 무엇보다 정치권력이 바로 서야 한다.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수시로 안보나 경제 등 위기를 과장해 정상적인 사회 기능을 마비시켜서는 안 된다. 자기편을 사회 각 요소에 보내고 심어 운영과 절차를 왜곡시켜서는 안 된다. 비판자를 단속하느라 사회를 얼어붙게 만들어서도 안 된다. 무엇보다 솔직하게 잘못과 문제를 시인하고, 국민의 동의를 구해 사회를 정비해 나가야 한다. 치졸한 반칙 경쟁인 정쟁을 극복하고, 국회의 기능을 정상화해 정치를 복원해야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 사회의 고장을 고치고, 붕괴를 막을 수 있다.


표창원 | 범죄과학연구소 대표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