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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까지 연루된 성완종 리스트, 안보를 해치는 방산비리, 국토 황폐화를 부른 4대강 비리, 스폰서 검사. 그야말로 ‘부패공화국’의 모습이라 할 만하다. 혹자는 학연과 지연 등 비공식적인 연고관계를 중시하는 동양사회의 고질적 문제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세계 청렴국가 상위권에 자리 잡은 싱가포르나 홍콩의 사례를 보면 수긍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는 ‘부패’라는 버스 앞에 몸을 던지느냐, 아니면 같이 올라타느냐 둘 중 하나의 선택밖에 없었다.” 1970년대 부정부패에 찌들어 있던 홍콩의 한 경찰관이 했던 얘기다. 워낙 뇌물수수와 갈취 등의 부패범죄가 경찰 내에 만연하다 보니, 같이 검은돈을 받으며 ‘보호막’ 안으로 들어가든지, 아니면 부패 가담을 거부하는 대가로 언제든 등 뒤에서 총탄이 날아올 각오를 해야 했던 ‘부패사회’ 홍콩의 풍경이었다. 그랬던 홍콩이 지금은 국제투명성기구의 청렴도 조사에서 유럽의 프랑스나 오스트리아보다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싱가포르의 변화는 홍콩보다 더 극적이다. 1940년대까지 마약과 조직범죄, 인신매매와 뇌물의 천국이었던 싱가포르는 지금 뉴질랜드 및 북유럽국가들에 이어 ‘가장 청렴한 국가’로 평가받고 있다.

홍콩과 싱가포르의 두 가지 공통적인 원인을 꼽자면 ‘정치적 의지’와 ‘독립된 강력한 부패수사기구’라고 할 수 있다. 싱가포르는 1952년, 홍콩은 1974년, 식민지였던 두 나라를 통치하던 영국 총독부의 강력한 의지로 독립반부패수사기구를 설립했고, 독립된 후에도 이 두 기구는 존속 및 발전했다. 홍콩의 독립반부패위원회(ICAC)와 싱가포르의 부패행위수사국(CPIB)은 당시 경찰청장 및 고위직 검사와 정치인 등 부패한 고위공직자들을 체포하고 수백명의 뇌물수수 공무원들을 기소하거나 퇴직시키면서 공직사회 자체를 완전히 바꿔버렸다. 사회 전체를 타락시키던 범죄조직 ‘삼합회’의 기세가 꺾인 것도 ICAC와 CPIB의 공이 컸다. 특히 홍콩의 성공사례는 호주에서 똑같은 이름의 반부패수사기구를 신설하면서 국제적인 인정을 받게됐다. 우리나라 역시 2001년 ‘부패방지위원회’를 신설하면서 홍콩이나 싱가포르 같은 강력한 독립 반부패기구를 출범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검찰과 법무부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치면서 ‘수사’ 기능이 빠진 형식적인 정책기구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나마 신고 접수 및 조사에 따른 고발 기능이 부여되면서 고위 검사들의 부패혐의 사건을 파악해 고발했지만,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 불기소 처분에 막히면서 무위로 돌아갔다. 결국 부패방지위원회는 ‘국가청렴위원회’라는 싱거운 명칭으로 바뀌면서 조사기능이 약화되고, 급기야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2008년, 국가청렴위원회마저 폐지되면서 국민고충처리위원회 등과 병합되어 ‘국민권익위원회’라는 모호한 기구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성보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김영란법'과 관련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대한민국의 국가 청렴도는 세계 43위다. 검찰의 청렴도는 국가기관 중 꼴찌다. 김학의 전 법무차관 불기소, 간첩사건 증거조작 등 국민의 신뢰를 잃은 지 오래인 검찰. ‘죽은 권력’은 무참히 짓밟고, ‘살아있는 권력’에는 꼬리를 흔들기로 유명한 검찰. 그런데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자살하면서 남긴 리스트를 포함한 대형 부패 스캔들은 모두 검찰의 손아귀 안에 던져져 있다. 아무리 검찰이 열심히 한다고 한들, 그 결과에 대해 국민과 사회가 얼마나 신뢰할까? 세월호 참사 원인에 대한 검찰 수사에 사회적 신뢰가 있었다면, 1년 넘게 지속되는 사회적 혼란이 벌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번 정부가 못한다면, 다음 정권에서라도 반드시, 독자적 수사권을 가진 기존의 ‘적폐’에 얽히지 않은 독립적 부패수사기구의 신설을 추진해야 한다. 이건 여야나 진보·보수 등 정치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의 운명과 관계된 문제다. 그 스스로가 권력적 적폐의 일부인 검찰에 부패척결 임무를 전담시킨다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생선가게 자체를 망하게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표창원 | 범죄과학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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